[디스토피아로부터]
[김수민의 클로징] 무간도
2024-12-05
글 : 김수민 (시사평론가)

“자기가 첩자라는 건가?” 2021년 10월 윤석열과 이재명 때문에 빵 터지고 말았다. 윤석열의 망언 퍼레이드가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묘한 맥락에 주목했다. 발단은 고발 사주 의혹이었다. 당내 경쟁자들까지 추궁에 나서자 그는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화를 냈고, 이는 정체성 논란으로 번졌다. “스파이 노릇 그만하자.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려고 우리 당에 온 거 아니냐.”(유승민) 전두환 옹호는 5일 뒤 부산에서 나왔다. ‘멤버 유지’를 위한 안간힘? (그러더니 당 후보가 된 다음 순천에 가서는 “부득이하게 입당했다”.)

그즈음 이재명은 대장동 게이트를 ‘국민의힘 게이트’라 했다. 친박근혜 정치인 곽상도의 아들이 퇴직금 50억원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재명과 곽상도는 (최소한 결과적으로는) 한통속이다. 곽상도 전 국회의원의 가족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사기업의 초과이익 환수 규정을 빼놓은 판에서 이권을 챙겼다. 이런 새빨간 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라고 푸르게 포장했으니 ‘수박 게이트’다. 백현동 자연녹지를 단박에 준주거지로 바꿔놓고 박근혜 정부를 따랐다고 우긴 것은 어떤가.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면 ‘진박’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3년이 흘렀다. 윤석열은 국민의힘 역사에서도 최고 수준의 친일과 친재벌로 일관하며 오른쪽 골짜기에 박혔다. 그것도 모자라 이 당은 대통령 부부 문제로 또다시 국정농단 사태에 빠졌다. 덕분에(!) 대자본과 ‘보수’ 진영의 정책 추진 동력은 떨어졌다. 민주당은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에 휘말려 ‘이재명 퇴출·선거 보조금 434억원 반환’으로 몰렸다. 더 거대한 혐의의 재판들이 남았는데, 유무죄 이전에 두드러지는 것은 문제가 된 사업들에 ‘진보’는 물론 ‘민주’도 없다는 것이다. 국제 망신도 겹쳤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경고를 받고 있고, 한국은 기후 악당 국가로 꼽히며 기후행동네트워크로부터 ‘오늘의 화석상’을 받았다. 민주당이 저지른 검찰 수사권 축소와 반부패 역량 약화를 비판해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에 실사단을 파견했다.

첩자를 심어도 수십만명은 심어야 한국 거대쌍당처럼 망가질 것이다. 그렇다. 이 ‘무간도’에서 진영인(양조위)과 유건명(유덕화)은 윤석열과 이재명이 아니다. 극성 지지층의 욕망이다.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은 10년 전 민주당 극성 지지층처럼 피해 의식과 원한에 찌들었다. 민자당 시절의 수권 능력은 사라졌고 ‘좌파 적폐 청산’의 환상만 남아 윤석열을 호출했다. 민주당 극성 지지층은 10년 전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처럼 오만과 특권 의식에 잠겼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길을 배반한 결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는 이재명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한 쌍당의 폭탄이 아군 안에서 터지고 있다.

극성 지지층은 단지 속아 넘어간 이들이 아니다. 일상이나 일터에서 누릴 수 없는 허위 선동의 자유를 정치에서 만끽한다. 이게 집단지성이라며 “대중은 옳다”고 아첨하는 ‘21세기판 남산의 부장들’도 퇴출당하기는커녕 수익을 타먹는다. 그래도 되는 세계에 침투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성 지지층은 대중 다수가 아니다. “난 너와 달라. 빛을 두려워하지 않지.” 보통 사람의 세계는 진상을 규명하고 죄는 처벌하고 부도덕은 (사법적 무죄일지라도) 심판하는 세계다. 평론가이자 운동가로서 여기에 양심과 진퇴를 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