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분노를 동력 삼아, 복수를 염원하며, <브로큰>
2025-02-05
글 : 조현나

배우 하정우, 김남길이 <클로젯> 이후 5년 만에 합을 맞췄다. 하정우가 연기한 민태는 과거 조직폭력배였으나 현재는 공사장 인부로 생활한다. 반면 그의 동생 석태(박종환)가 민태가 속해 있던 폭력조직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 날부턴가 석태와 연락이 잘 닿지 않자 민태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결국 석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동생이 죽은 이유를 명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민태와 민태의 주변인들은 돌연 자취를 감춘 석태의 아내 문영(유다인)을 의심한다. 민태는 어떻게든 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찾아 복수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단서를 찾던 중, 민태는 베스트셀러 작가 호령(김남길)이 쓴 소설 <야행>에 관해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야행>에는 석태의 죽음이 일찍이 예견되어 있었고, 과거 문영이 호령이 진행하던 수업의 수강생이었으며 남편 석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음이 밝혀진다. 이후 민태는 조용히 문영의 뒤를 밟기 시작하고 민태를 따르는 부하 병규(임성재), 폭력조직의 보스 창모(정만식), 급기야 경찰까지 상황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브로큰>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형의 분노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영화다. 장편 데뷔작 <양치기들>로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22회 춘사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진황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춘천을 중심으로 서울, 인천, 해남으로 이야기를 파생시킨다. 로케이션의 변화는 대체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한 민태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극의 중반부부터 민태의 목적은 석태가 사망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아닌 문영을 찾아내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민태와 마찬가지로 호령 역시 문영을 좇는데, 문영을 찾으려는 두 사람의 목적과 추격의 스타일이 상반된다. 민태는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상대의 반응을 본능적으로 감지해 상황을 파악하는 유형이다. 주변의 사물을 사용해 액션을 펼칠 때가 많고 특히 파이프를 시그니처 무기로 활용해 상대를 거침없이 가격한다. 한편 호령은 문영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좇는 인물이다. 문영과 석태의 관계를 거의 유일하게 파악하는 인물이지만 시종 의뭉스러운 행보로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골목길, 다방, 부둣가, 횟집 등 민태의 액션은 그의 발길이 닿는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진다. 마찰이 과격할지언정 영화는 인물들과 카메라의 거리를 벌려 의도적으로 잔인한 묘사를 피하고자 한다. 그만큼 액션신들이 정제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그토록 처절하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아마도 마음 깊숙한 곳에 슬픔이 내재되어 있을 민태의 감정이다. 민태라는 인물의 내외면을 살피는 맛은 있지만 복수를 위해 관련된 이들을 차례로 찾아간다는 주인공의 목적, 소설책의 내용과 실제 사건의 연관성 등은 기시감이 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하정우의 본격적인 액션이 <브로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close-up

<브로큰>의 오프닝 시퀀스이자 민태의 첫 등장 신. 극 중 유일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나는 이 장면에서 민태는 한쪽 팔과 얼굴에 피를 묻힌 채 유유히 부둣가를 걸어간다. 그런 그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 있다. 좀체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민태에게선 동생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진득이 묻어난다.

check this movie

<추격자> 감독 나홍진, 2008

추격하는 자(민태)와 추격 당하는 자(영민). 인물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하정우가 보여준 에너지는 일정 부분 닮아 있다. 17년의 세월 차를 두고 배우 하정우가 그려낸 두 인물의 집념을 비교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상법일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