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윤주상)은 침몰하는 배의 선장 같다. 바닷마을을 떠날 수는 없는 채로, 무너져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박이웅 감독의 신작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제작한 안병래 고집스튜디오 대표는 작품의 근간이 된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령화된 어촌 마을에서 나이 든 선장과 젊은 선원 사이에 공모된 보험 사기극으로 문을 여는 이 영화는, 얼핏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보다는 곡진하고 물컹한 인간적 감정으로 향한다. 고집스튜디오의 첫 작품이자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불도저를 탄 소녀>를 제작한 안병래 대표는 3년간의 프로젝트를 완수한 뒤, 박이웅 감독이 학생 시절부터 구상한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되돌아갔다. “10년도 더 된 시나리오였다. 지금이야말로 이 런 다양성이 담긴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제작을 결심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항해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1.5개월여간 27회차 촬영. 70대의 두 주연배우. 감독의 요청으로 꾸린 전원 60대 이상의 보조출연진들. 포구는 강원도에서, 인물들의 집은 여수와 충남 등지에서 제각기 찢어져 촬영해야 하는 여건을 아우르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체력적으로 힘든 환경이다보니 배우들의 안전이나 컨디션 문제를 염려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분들이 책임감을 갖고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줬다.”
박이웅 감독의 영화들과 더불어 <아이를 위한 아이> <미혹> <최소한의 선의> 등을 꾸준히 제작해온 안병래 대표지만, 펀딩의 어려움을 겪으며 사비까지 털어 쓴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개봉 과정에서 얼어붙은 시장 현실도 새삼 체감 중이다. “한국 독립영화 ‘8주간의 약속’ 상영 캠페인만 해도 만약 앞으로 관객이 적을 경우 극장에 어떻게 8주를 고집할 수 있을지 제작자로서 고민이 된다.” 수익성을 논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안병래 대표는 “영화제의 환대,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관객의 반응 덕에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생겨왔다”고 자부한다. ‘고집’이라는 회사 이름에 담긴 의미도 여전하다. “한번은 투자사에서 ‘너무 고집스럽게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는 명함에 ‘적당한 고집’이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웃음) 내게 고집이란 정말로 마음이 동하는 영화, 하고 싶은 영화를 최선을 다해 제작하겠다는 의미다.” 그에게 영화 프로덕션은 여전히 도전의 영역이다. “독립영화가 왜 독립영화처럼 보일까 고민하면서 미술 파트가 핵심이란 생각을 했다. 최근 작업한 두편의 신작에선 프로덕션디자인의 예산 배분을 확 높여보는 시도를 했다.” 한편은 배우 송지효가 여성 교도관으로 출연하는 차정윤 감독의 <만남의 집>(가제), 다른 한편은 2000년대 초반 배경의 퀴어 장르 영화다. 안 대표는 프랑스 감독, 배우와의 협업도 예고했다. “10편을 만들면 하나쯤은 성공작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고집스러운 프로듀서에게 10편의 고지는 머지않아 보인다. “다들 힘들어서 빠져나갈 때일수록 버티면서 준비해야 관객이 영화관에 돌아왔을 때 기회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