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의 아들이자 최연소 대통령실 대변인인 백사언(유연석)과 유력한 언론사 청운일보 회장 딸이자 수어통역사인 홍희주(채수빈). 두 사람은 집안의 필요에 의해 결혼했지만, 남보다 못한 관계다. 희주는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로 스스로 말문을 닫은 채 ‘수어’ 통역사가 된다. 인질 협상 전문가에 공영방송 간판 앵커를 거쳐 대통령실 대변인까지 오른 사언은 ‘입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의 언어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어느 날 납치를 당한 희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납치범의 전화기를 통해 변조된 목소리로 사언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이 협박은 일종의 ‘비틀린 말 걸기’에 가깝다. 사언은 희주를 사랑하면서도 수어가 아닌 입말로만 대화하는 등 자기중심적 소통으로 일관한다. 두 사람의 ‘언어’가 이토록 다르기에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거신 전화는>은 극적 사건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이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인질극’이기도 하다. 희주가 납치된다는 설정은 단순한 물리적 구속을 넘어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다. 사언은 자신에게 방해가 될까봐 손자마저 죽인 비정한 권력자 아버지에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인질처럼 죽은 ‘백사언’의 이름으로 가짜 인생을 산다. 제목인 “지금 거신 전화는”의 다음 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없는 번호입니다.” 이 ‘없는 번호’와도 같은 소통 불능의 상태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각자의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인질로 삼는 관계들, 자신의 언어에 갇혀 소통 부재의 상태로 사는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드라마.
check point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전화로 남편을 협박한다는 소재가 참신하다. 그러나 특정 직업군을 희화화하거나 수동적 여성상을 보여준 점은 진부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게다가 오글거리는 대사 때문에 초반에 시청을 포기한 이들도 많다. 결국 나를 포함하여 이걸 꿋꿋하게 보는 시청자들은 도파민의 ‘인질’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