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ULTURE BOOK] 먼 산의 기억
2024-12-13
글 : 이다혜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민음사 펴냄

<내 이름은 빨강> <새로운 인생> 등을 쓴,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독특한 에세이. 14년간 매일 일상의 생각과 관찰을 기록한 몰스킨 다이어리 중에서 집약한 페이지를 담은 책인데, 수첩에 손으로 쓰고 그린 내용이 담겼다. 수첩의 크기는 8.5x14cm지만 수첩의 그림과 손글씨를 그대로 살려 실으면서 여백에 번역문을 실었기 때문에 책의 판형은 16x26cm로 큰 편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페이지에는 스케치가 있고 메모도 적지 않은데 눈을 끌지 않는 페이지가 없다. 여러 컬러의 펜으로 그린 드로잉과 문장들이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메모들. “소설을 쓰면서 혼자 있으면 행복하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 끝없는 욕망에는 절망이 깃들어 있다.”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글을 쓴다-밤의 정적.” 눈앞의 풍경을 늘어놓기. “아침에 부두에 있는 시립 카페에서 달걀프라이, 토마토, 뵈렉. 나는 뷔윅아다섬 부두의 풍경과 아침에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기에 대하여. “일곱살부터 스물두살까지 나는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물두살에 내 안의 화가를 죽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업과 관련된 메모들. “나는 <뉴요커>에 파샤바흐체 관련 글을 쓸 예정이었다.” 자기가 쓴 책(<내 마음의 낯섦>)의 주인공과 관련한 코멘트. “나는 사미하가 페르하트에게 도망치는 부분을 읽었다, 정말 마음에 들고 행복하다. 등장인물들이 사미하처럼 고집이 세고, 예상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분노에 차 있고, 대담하면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사람들과 도시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기억할 만한 순간들이 수기로 기록된 이 작은 수첩에서 오르한 파묵은 소설책 서문 제목을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노벨문학상 수상 결과를 두고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했다는 말(“여기 우리 테러리스트에게도 노벨상을 주었다!”)과 관련된 해프닝을 적기도 했다. 소로에 대한 코멘트도 기억할 만하다. 왜냐하면 소로가 매력적인 이유를 일기장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일기장을 썼던 날로 돌아가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식으로 완성된 <월든>에 대하여. “소로가 월든을 위해 했던 것을 나는 이스탄불을 위해 하고 있다.” 이 책의 존재 이유. 신기하게도, 이 책은 오르한 파묵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연구자들에게만큼이나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의 소설을 읽게 만드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