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 <러브레터>에 부치는 4가지 답신
2025-01-07
글 : 김소미

<러브레터>의 대중문화사적 의미

1990년대 일본 멜로드라마, 추억 속의 사랑 이야기, 이와이 슌지 스타일, 오타루를 꿈꾸게 하는 영화. 어떤 의미로든 <러브레터>는 하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상징적으로 통용되는 <러브레터>에 관해 구전되는 전설은 이러하다. 극장에 개봉하거나 정식 비디오로 출시도 안된 영화를 모두가 알고, 봤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러브레터>를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명대사 “오겡키데스카?”만큼은 남게 되었다는 것.

<러브레터>의 감수성이 전파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외화의 흥행 양상과 다른 지점이 많다. 1995년 제작된 <러브레터>는 1999년 11월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1998년 CGV강변, 2000년 코엑스 메가박스가 막 문을 열면서 국내에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 무렵이다.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도입 이전에 대형 극장 위주로 서울 관객만을 겨우 집계하던 때, <러브레터>는 약 115만명의 서울 관객을 기록했다. 1998년 2월 개봉한 <타이타닉>이 197만명 관객을 기록했으니 그 화력을 짐작해보게 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러브레터>는 1998년 일본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 약 30만개로 추산되는 불법 비디오들이 유통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릴레이 상영회가 이어지는 등 정식 개봉 전에 이미 ‘볼 만큼 봤다’는 업계의 평가 속에서 공개된 경우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1995년 당시 일본 흥행에 성공하고 <키네마준보>를 비롯한 평단이 이와이 슌지의 도약에 호평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러브레터>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욱 아이코닉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엔 금기시된 일본영화에서 당대의 정서를 발견한 X세대의 결집과 IMF 외환위기 전후의 사회 분위기, 영화가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차지하던 시대의 특정한 조건들이 얽혀 있다. 오늘날 <러브레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한편의 흥행작이라기보다 특정한 시기의 문화적 현상을 응축한 기억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다.

관성적 재개봉을 벗어난다는 것

굳건한 지지에 힘입어 <러브레터>는 2013년 밸런타인데이를 시작으로 지금껏 8차례나 재개봉했다. 2016년 리마스터링 재개봉에선 전국 관객 약 7만5천명을 기록해, 2017년 정재은 감독의 <나비잠>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감사 인사를 전할 정도였다. 달리 말하면 재개봉의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다. 왜, 또다시? 워터홀컴퍼니는 그동안 <위플래쉬> <가을의 전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소셜 네트워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의 영화를 재개봉으로 수입 또는 배급한 이력을 지닌 회사다. 탄생 3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판권을 가져온 수입사 왓챠가 워터홀컴퍼니에 배급을 제안하고 메가박스가 개봉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협력이 성사됐다. 지난해부터 더욱 부각된 재개봉 트렌드 속에서 워터홀컴퍼니의 주현 대표는 “이번 <러브레터> 30주년 에디션 극장 상영본(DCP)이 지금까지의 상영본과 다른 버전”임을 강조한다. 우선 세로 자막을 복원했다. “관람의 형태부터 처음 영화가 관객들에게 도착했던 그 시기와 가까운 느낌을 전한다”는 취지다. “누군가의 불편함을 초래할 것을 알았지만 이 형태의 시도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목표였다. 왜 다시 이 영화를 개봉하는지, 아직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두었던 부분이다.” ‘30주년 에디션’으로 재명명해 영상물등급심의를 다시 받고, 이츠키가 조난사한 설산을 향해 소리치는 히로코의 뒷모습을 담은 이미지로 디자인된 리더필름(상영 전 배급사 마크와 함께 송출된다)도 제작했다.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재개봉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주현 대표는 “관성적 재개봉이 아니라, 산업의 변곡점에서 차별성과 생산성을 담아 작품을 선보이는 배급사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랐다”고 밝혔다.

달라진 자막과 각자의 해석

미망에서 깨어나 사랑과 대면하는 모든 서사는 아름답다.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은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완벽히 조응해 뒤늦은 첫사랑의 자각을 한 장면의 이미지로 남겨둔다.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도서카드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는 이때, 사실상 그동안 영화를 견인하던 두 여성의 서신 교환은 이미 종결된 상태다. 그러나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보이스오버의 영화적 확장력을 적소에 도입한 이와이 슌지는 이츠키의 목소리로 실은 그가 한장의 편지를 더 쓰고 있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츠키가 도서카드를 숨겨보려고 주머니 없는 옷의 이곳저곳을 눈물 차오른 얼굴로 헤집는 순간에 결정적 대사가 흘러나온다.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수의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대로, 외화 번역의 유명한 오역 사례 중 하나다. 30주년 에디션 이전까지는 여러 차례의 재개봉 과정에서 꾸준히 “가슴이 아파서”로 번역되었지만 이번에는 “역시 부끄러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겠습니다”로 바뀌었다. 원문에 충실한 내용으로 자막을 보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본으로 이입한 관객이 많았던 탓에 워터홀컴퍼니는 “기존의 자막이 오히려 더 주인공의 감정이 느껴진다거나 가슴 아픈 멜로의 결말로 느껴진다는 상당수의 반응을”(주현) 고려해야 했다. “조금 가슴이 덜 아픈 번역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의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결과적으로 번역을 수정했다.” 하나의 원본에 다른 번역과 여러 해석이 중첩되는 과정 또한 영화 관객에게 허락된 또 하나의 문화임을 <러브레터>는 잘 알려준다. 기존의 오역이 엇갈린 시간의 애수와 부재하는 대상을 향한 상실감, 나아가 와타나베 히로코를 배려하는 후지이 이츠키의 감정을 비춘다면, 바로잡은 번역은 긴 시간을 통과하고도 여전한 모습으로도 당도한 첫사랑의 설렘과 환희를 엿보게 한다.

나카야마 미호, 기억의 설원에 잠들다

홋카이도의 설원, 레메디오스의 음악,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를 각인시키는 힘 한가운데 25살의 나카야마 미호가 있었다. 그가 지난해 12월6일, 54살로 기억의 공간에 영원히 잠들었다. 1985년 아이돌로 먼저 데뷔한 후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나카야마 미호에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고 연기 스펙트럼을 인정받게 해준 작품이다. 밴드 완즈(WANDS)와 함께 부른 노래 <세상 누구보다 분명>(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 국내에서는 <사랑의 바보>로 리메이크됐다)이 180만장의 판매고와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가수로서는 최정상급에 올랐지만 배우로서는 이렇다 할 대표작을 만들지 못한 시점이었다. <후지TV> 단막극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1993)로 좋은 평가를 받은 후 영화감독으로서 초석을 다질 필요성을 느낀 쪽은 이와이 슌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던 작품은, 지금봐도 꽤나 컬트적인 대작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였고 제작이 쉽지 않은 건 당연했다. <러브레터>는 투자자와 방송국에 우선 연출적 역량을 선보이는 관문을 거쳐야 했던 이와이 슌지가 당대 최고의 스타인 나카야마 미호의 엄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조용히 살아가는 도시 여성 와타나베 히로코와 다소 엉뚱하고 명랑한 오타루 지역 도서관의 사서 후지이 이츠키. 비슷한 생김새에 헤어스타일까지 같지만 전혀 다른 성격과 인생을 살아온 두 여성을 소화한 것은 배우, 아이돌, 그리고 곧 아이콘이었던 나카야마 미호의 페르소나적 역량이다. 다수의 우려를 샀던 1인2역 컨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증명으로서, <러브레터>에서 손꼽히는 두개의 명장면을 히로코-이츠키가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고 있음을 짚을 필요가 있다. 순백의 설원에서 “잘 지내시나요?”를 거듭 외치다 자신의 상실과 대면하고 마는 히로코의 처연한 슬픔은, 감기가 끝날 무렵에 그제야 첫사랑을 깨닫고 슬며시 미소 짓는 이츠키의 애달픔으로 화답받는다. 두 편지의 송신인은 모두 나카야마 미호. 세기말에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향한 거대한 그리움의 송가를 띄웠던 일본 문화의 정점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배우이다. 대중문화사에서 회자되는 어떤 명장면들은 때로 그 순간만으로 충분하다. 한 장면에 각인된 얼굴과 정서 위로 관객은 자신의 기억을 편집해 다음 순간을 이어간다. 청춘의 정점에서 자신의 대표작을 갈망했던 나카야마 미호의 바람은 매우 선명히 성취되었고, <러브레터>는 이제 그의 부재에 띄우는 모두의 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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