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열린 제작보고회 일정을 시작으로 종일 홍보 활동에 박차를 가한 세 사람이 오후 5시 무렵 너무도 정다운 모습으로 성큼성큼 인터뷰룸에 걸어들어왔다. 나란히 앉은 김혜수, 정성일, 주종혁은 약속이나 한 듯 눈앞의 마들렌과 컵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맞은편 기자에게도 접시를 내민다. “같이 먹어요!” 탐사 PD들의 활극인 <트리거> 현장에서도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틈틈이 삼삼오오 모여 먹기 바빴다는 트리오 중 정성일의 고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리즈 후반부에 보면 살이 쪄서 화면에서도 티가 나요. (웃음)” 오피스물의 매력은 관계성에서 결정된다. 팀장과 팀원의 역학, 때로는 직급과 나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끈끈하게 뒤섞이는 현장 동료의 호흡. 작품 바깥에서도 이를 이어가기로 한 듯한 세 사람은 각자의 대답이 아니라 상대의 심경에 주의를 기울이며 총총한 안광을 빛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잘할 수 있도록 서로를 이끌어줄 때, 비로소 작품도 잘되는 시너지효과를 점점 더 절감한다”는 김혜수가 이 관계를 이끄는 중심이란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풍경일 것이다. “서로를 독려하는 ‘트리거’가 되어”(김혜수) 움직인 성실한 3인의 팀워크를 소개한다.
- “힘들 때 달려오라고 있는 사람이 팀장”이라는 대사가 팀원을 대하는 오소룡(김혜수)의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시그널>의 차수현도 좋은 리더였는데, 열혈 PD이자 팀장으로서 <트리거>의 오소룡은 어떤 유형의 연장자로 보이길 바랐는지 궁금하다.
김혜수 리더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정말 제대로 일하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분야는 직업윤리와 소명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직업군 중 하나다. 다만 인물의 그런 면모가 비장한 톤으로 과시되기보다는 자신이 당면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길 바랐다. 실제로 일선에 계신 베테랑들을 살펴보면 인간적으로는 실수할 때도 많고 허술할 때도 있지만 자기 일 앞에서는 놀랍도록 명확한 관점과 확고한 태도를 고수한다. 이 팩트를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실질적인 표현으로 전하는 게 관건이었다. 내가 염두에 둬도 대본이 그렇지 않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트리거>는 기본적으로 이런 지점이 잘 내재된 대본이었다.
- 워커홀릭 드라마의 매력 중엔 이처럼 일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주인공의 사적 영역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어떤 결핍이나 트리거가 있기에 이토록 일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김혜수 후반부로 갈수록 바로 그 지점이 서사적으로 접목된 각자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소룡에게 중요한 대사가 있는데 “내가 일을 하는 건 착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대사다.
주종혁 기호(주종혁)가 정규직이 되려고 애쓰는 이유 중엔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더 떳떳해지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서러운 순간이 많았다. (웃음)
김혜수 극 중 대사 가운데 “아무도 기호를 못 따라간다”는 대사가 있을 정도로 기호는 실력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만연한 학벌주의와 그로 인한 차별 때문에 울분이 아주 많이 쌓인 캐릭터다.
정성일 한도(정성일)는 오히려 자기 일에 의심을 품는다는 점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월급쟁이면서 대체 다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하는 식이다. 그 지점에서 출발해 조금씩 열어볼까, 열어보자 하면서 숨겨진 내면의 요소들도 드러난다.
- 마치 하나의 직업 선상에서 한 사람이 생애주기를 따라 겪는 세 가지 다른 시절을 보여주는 캐릭터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년생 시절엔 더 좋은 기회를 얻고 싶어서 조급해지고(기호), 일하는 가운데 상처받고 회의하는 시간도 있고(한도), 시간이 쌓인 만큼 차차 원숙해지고 때론 무게감을 덜어내 가벼워진다(소룡).
김혜수 정말 그렇다. 오소룡은 이제 ‘그냥’ 하는 상태다. 아주 비장하지도, 대단히 구구절절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지만 소룡의 일 안에 이미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때로 스스로 명분을 내세워서 자신을 위로하거나 무언가 회피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잖나. 다행인 것은 오소룡처럼 버티고 나면 그동안 내가 일을 해온 시간, 쌓여 있는 그 시간 자체가 나 자신을 증명하고 지탱해주게 된다. 겉보기엔 짐짓 무성의해 보이는 순간에도 당면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 주변에 대한 신뢰, 동료와 팀에 대한 믿음을 담아서 행동한다. 정말이지 그냥,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탐사보도 PD, 배우뿐 아니라 자기 일을 오래 해온 누구에게나 관통되는 상징적인 상태라고 봤다.
정성일 탐사프로 PD들이 눈앞의 현상에 대해 자꾸만 ‘왜?’라고 질문하는 직업이라는 게 좋았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걸리는 부분, 궁금한 부분에 대해 계속 의문의 의문을 거듭하며 파고들어간다.
주종혁 기호가 느끼는 감정 중에 열심히 했는데 전혀 인정받지 못할 때 오는 착잡함이나 서러움에 공감한 순간도 있었다. 굉장히 현실적인 감정 아닌가.
- 소룡이 한도와 기호를 각기 다른 이유로 아끼고 보듬는 관계성이 인상적이다. 낙하산 PD에다 말은 듣지 않고 엇나가는 한도에게 “나는 너 마음에 든다”고 꿰뚫어보듯 이해해주고, 기호에 대해선 그가 지닌 일을 향한 야심을 최대한 지원해주려 한다.
김혜수 아마 이런 포인트도 실제 일선에서 나타나는 관계성 아닐까? 숙련자와 초심자, 혹은 선후배 관계에서 발생되는 아주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역학일 것 같다. 일단 소룡 입장에서 기호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후배다.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하고 정말 혹사할 만큼 열심히 하는데 실력도 있는. 그러니 얘가 잘됐으면 좋겠는데 학벌이라는 벽에 막혀 있으니 티 안 나게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은 거다. 다만 스스로 굳건하게 설 만큼 때론 매운 소리도 마다 않으면서 강하게 키우려고 한다. 한도는 사실 팀장으로서 보기엔 오해할 여지도 있고 의심할 만한 정황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앞서서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알아보는 게 아닐까. 네가 귀를 닫고 살건, 낙하산이건, ‘닥터 트리거’건, 어쨌든 천생 PD라는 걸. 내가 가진 불꽃을 너도 가졌구나, 하고 알아볼 때의 끈끈함 같은 게 작동하는 거겠지.
- 지난해 김혜수 배우가 진행 실력만큼 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드레스 문화를 정착시켰던 청룡영화제 MC 자리에서 내려왔다. 화려한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도 있는 배우인데 <트리거>는 지금껏 수수하게 나온 작품들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가장 후줄근하고 리얼한 현장 사람의 자태를 재현한 듯싶다.
김혜수 초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사이비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심인 1화는 컨셉적인 측면이 강하다. 종교집단 묘사만 그러한 게 아니라 패러글라이딩을 해서 적진에 진입하는 등 보는 분들에 따라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컨셉을 설득력 있게 끌고 가야 했다. 김혜수가 신선한 배우도 아니고 오래 봤던 배우인데, 정말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탐사프로그램 PD라는 게 일단 수긍이 가야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을 거란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PD인 척’ 하고 나온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실패일 거라고 말이다. 취재하면서 힌트를 얻은 건 여성 PD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거였다. 왜, 보통 헤어스타일에 신경 안 쓰고 편하게 다니는 여성 PD들이라면 쇼트커트를 많이 할 것 같지 않은가. 실상은 오히려 쇼트커트 PD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거다. 머리 자를 시간도 없고, 애초에 머리에 신경을 안 쓰니까 적당히 기른 머리를 그냥 대충 묶거나 위로 틀어 올린다는 거지. 명품은 절대 안 입을 것 같다는 것 역시 편견이다. 따뜻한 패딩, 편안한 운동화, 수납력 좋은 배낭은 그들에게 전투복이기 때문에 검소한 사람도 투자하는 영역이다. 안 그러면 버티지를 못하니까. 실제로 의상을 고르는 과정에서 명품이 실제로 화면에 보여지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서 배제한 부분이 있다. 어찌 됐든 초반의 장르적 컨셉이 셀수록 캐릭터는 더욱 핍진한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단히 주의 깊게 접근했다.
- 정성일 배우는 <더 글로리>의 슈트, <전,란>의 왜군 장수 코스튬을 벗어나 한결 편안한 옷을 입게 됐다. 주종혁 배우의 기호는 <파묘>의 MZ 무당처럼 트리거팀의 MZ PD인 셈인데.
정성일 평소에 정말로 ‘추리닝’만 입는다. 아주 캐주얼한 스타일이다. 그동안 일하면서 공연 무대, 매체에서의 스타일링이 유독 잘 갖춰진 옷들, 정장이나 슈트 위주로 입게 됐다. 말하자면 <트리거>의 한도를 통해 평소 내가 편하게 입는 스타일을 원 없이 펼친 것 같다. 의상은 캐릭터성을 표현하는 좋은 장치인 동시에 배우의 연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가만히 서 있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걷는 것, 앉는 법 등 의상으로부터 몸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그동안 옷에 갇혀 있던 어떤 면을 완전히 열어젖혀서 내가 움직이고 싶은 반경만큼 시원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작업이었다. 또 한도가 늘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인물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는 설정이다. 한도는 자신을 숨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시야를 가려서 남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디테일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주종혁 기호는 사무실이 시끄러울 때면 헤드폰으로 힙합을 듣는 Z세대다. 촬영 때 다 쓰지는 않았지만 헤드폰도 10개 가까이 준비하고 실제로도 현장에서 내가 듣고 싶은 힙합 음악을 연결해서 들었다. (웃음)
서로에게 기대면서
- 앞서 <경이로운 소문>을 성공시킨 바 있는 유선동 감독 신작이다. 활력 있는 전문가의 드라마라는 첫인상이 강한데, 각자 대본을 받고 합류를 결심하게 만든 요소가 어떤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김혜수 한동안 무거운 이야기들 중심으로 대본이 들어왔다. 최근작 <슈룹>이 어두운 작품은 아니지만 어쨌든 9개월 이상 끌고가야 하는 호흡이어서 약간의 번아웃이 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글이 잘 안 읽히더라. 좋은 작품인 줄 머리로는 알겠는데 엄두가 안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트리거>는 말 그대로 잘 읽혔고 해보고 싶었다. 작품이 가진 장점과 배우로서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기가 잘 맞물려서 운명처럼 조우한 셈이다. 캐릭터를 위트 있게 바라보는 각본 속에서 배우로서 좀더 자유롭게 운신하면서 숨 쉴 수 있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건 한도, 기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바라볼 때 이슈 자체에 관심이 있거나 메시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등 반응하는 이유는 제각각인데, <트리거>는 무엇보다 캐릭터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이 내게 가장 유효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정석과 비전형 사이에서의 변주가 가능하겠다는 기대랄까.
정성일 아까 기자회견에선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작품을 선택했던 이유는 당연히 대본이 재미있고 캐릭터성도 흥미로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고수해온 작품 선택의 기준에서 탈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기서 더 넓혀가지 않으면 한 자리에 묶일 수밖에 없겠다고. 그러던 중 <트리거>거 왔다. 매체에서는 주로 각 잡고 바로 서 있는 사람을 맡아왔지만 사실 과거에 무대에서 공연할 때 연기했던 인물들 중엔 약간 허술하게 풀어지는 쪽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트리거>가 우선 반갑더라. 결정적으로는 김혜수 배우가 이미 하기로 정해져 있다고 하니 무조건 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누나와 붙어서 연기해야 하는 장면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정말 크긴 했지만.
김혜수 회사에 대본이 들어오면 직접 다 보고 회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그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내가 좀더 좋아할 것 같은 작품으로 점치는 게 있을 텐데, 사실 <트리거>는 예상 밖의 작품이었다고 하더라. 내가 먼저 “<트리거>는 어때요?” 물으니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하기로 한 이후에도 사실 불안감이 많이 밀려왔다. 초반에 가능한 한 틈새를 많이 메워둬야 현장에서 누수가 적거든. 이런저런 걱정으로 버거워지려는 순간에 한도 역에 정성일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인상은 글로 생각한 한도와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렇다면 안 할 이유가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 촬영 중간에도 그의 도움이 컸다. 4, 5화를 촬영할 무렵에 1, 2화를 확인했고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들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트리거>는 도입부인 1화에 장르적인 컨셉과 설정이 두드러지는데, 그 속에서 내가 균형을 잘 잡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있었다. 아무리 오래 연기한 배우여도 시작점에서 항상 떨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의 기준에 절대 다다르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과 실제 내 몸, 내 연기가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도 있다. 그걸 들키지 않고, 또 간극을 메우고, 불편함과 어색함을 줄여가면서 이미 존재했던 것처럼 시작하는 게 제일 좋지만 늘 마음처럼 되지는 않더라. 그 가운데 성일씨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명확하게 자기 힘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가는구나, 그게 너무 고마웠고 덕분에 용기를 냈다.
정성일 나는 반대다. 오히려 누나가 버티고 있어주니까 내가 할 것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에 심플하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트리거> 현장이 김혜수 배우가 있음으로 인해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다. 누나가 현장에서 지금과 같은 1, 2화에 대한 피드백을 내게 전해주었는데, 단순히 칭찬을 들어 기쁜 마음보다도 훨씬 더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느낀 바가 컸다. 이 정도의 베테랑이 후배에게 스스럼없이 자기 고민과 흔들림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나아가 상대에게 고마워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같이 일하면서 김혜수 선배는 정말로 앞과 뒤가 꾸밈없이 한결같은 분이란 생각이 든다.
- 두 사람의 대화가 작중의 팀워크를 화면 밖에서도 이어가는 말들처럼 들린다. 막내는 막내만의 부담이 있을 텐데.
주종혁 (김혜수, 정성일 바라보며) 그래서 처음엔 못하겠다고 했다.
김혜수 이걸 내가 처음에는 몰랐어. 그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주종혁 처음 <트리거> 대본 보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막내로서 일종의 활력소를 담당할 수 있을까? 유머러스하고 에너제틱하고, 별 노력 안 하고 한마디만 해도 이미 웃긴 사람. 나는 그런 사람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 감독님과 첫 만남 때 자신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이미 캐스팅된 선배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용기가 안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주로 또래와 호흡을 주고받는 경험이 대다수였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고. 첫 촬영날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던 기억이 강렬하다. (웃음) 그러면서도 이 역할을 잘해보고 싶었던 건 실제 내 성격과 닿아 있는 부분도 있어서다. 현장이 힘들고 모두가 피곤한 상황일수록 주변 분위기를 밝게, 기분 좋게 만들고 싶다. 모두가 즐겁고 편안하게 촬영해야 서로 더 힘이 나고,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배우로서도 비로소 더 집중해서 연기할 수 있다는 주의다.
김혜수 힘듦이 전혀 티가 안 났어! 긴장한 와중에도 주변을 잘 살피는 게 느껴졌거든.
주종혁 제가 긴장 안 한 척을 잘하는 것 같아요. 여유 있는 척. (웃음)
김혜수 종혁은 선하고 순수하다. 연기는 너무 잘하고. 게다가 정성일, 주종혁 이 두 사람은 여고생들처럼 관계가 좋다. 서로 예뻐하는 모습이 남다르게 결이 곱다. 영화, 드라마 현장에서 남자배우들이 친목을 다지는 과거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낄 정도다. <트리거> 현장의 배우들은 CP 역의 이해영 배우까지 포함해서, 대본을 분석하고 집중해서 연기할 때는 대단히 치열하고 진중하면서도 관계를 만들어나갈 땐 무게감 잡지 않고 약간 샤이할 정도로 부드럽고 다감한 사람들이다. 작품하면서 남자배우들과 이렇게 친해진 경우는 또 처음이다.
정성일 이 말 들을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웃음)
김혜수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서로 연기적으로 리스펙트한다는 것이다. 저 배우 좋다, 함께하고 싶다 하며 꿈꿔도 막상 실제로 만나서 호흡해보면 알게 된다. 이 사람이 진짜인지 아닌지. 혼자 잘하려는 사람인지 함께 가려는 사람인지. 두분에게는 배우로서 먼저 빠진 다음 사람으로서도 사랑하게 된 경우다.
- 사회적 메시지를 코미디 직업물이자 오피스물의 표면으로 재치 있게 감싼 작품이다. 김혜수 배우의 영화(<이층의 악당> <굿바이 싱글>), 드라마(<직장의 신> <하이에나> <슈룹>) 필모그래피를 보면 위트가 돋보이는 코미디 장르에도 편견 없이 눈길을 준다는 인상이다. 희비극의 뉘앙스, 유머에 열려 있달까.
김혜수 그건 정말 취향이다. 오로지 웃기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건 또 취향이 아니다. 오직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영화도 그다지… (웃음) 별도의 메인이 있고 그 속에 로맨스가 살짝 건드려지는 건 아주 좋다. 역시 비슷하게 <트리거>는 코미디를 하려는 작품이 아니고 하고자 하는 묵직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위에 위트를 가미해서 간다. 호러 장르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공포영화는 싫은데 심리적인 서스펜스는 즐기는 식이다. 레이어가 쌓여서 밀도감이 생길 때 재밌는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내 취향이 이렇다고 해서 배우로서 늘 그런 작품을 선택한다는 건 아니다. 엄두가 안 나고 나와 잘 맞는 것 같지 않아서 오히려 도전하게 되는, 스스로를 뛰어넘기 위해 하게 되는 작품들도 있다.
- 공적 정의가 무참히 무너지는 사회에 대한 피로와 회의가 오고가는 시기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탐사보도 PD들의 드라마, 어떻게 소구될 수 있을까. 영화, 드라마를 찾아보는 일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 예비 시청자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달라.
김혜수 <트리거>의 사건들은 실제 우리가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기사에서 봤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건 희망이다. 극 중에서 거친 언어지만 오소룡을 ‘꽃대가리 팀장’이라고 한다. 근데 머리가 꽃밭이라는 건, 정말로 이 힘든 세상에서 끝까지 향기로운 꿈을 꾸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산물일 수도 있다. 거기서 어떤 낙관을 봤다. 우리를 살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건 결국 희망이고 그 희망은 절대 판타지가 아니라는.
정성일 잠시나마 아무 생각 없이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어느새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 <트리거>가 아닐까 싶다.
주종혁 소재 자체는 진중하고 때로 무겁지만, 지친 일상 속에서 기분 좋게 보실 수 있는 시리즈일 것이다. 나 역시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그 부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