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김수민의 클로징] 적벽대전
2025-02-06
글 : 김수민 (시사평론가)

지난해 12월13일 국회 전자청원 사이트에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서를 올렸다. “윤석열의 지휘하에 계엄군이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하며 국회 권능행사를 방해한 장면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는데도 이를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일컬은 윤상현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헌법, 국회법, 국회의원 윤리강령,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을 뒤지며 단숨에 써내려갔다. 국헌 문란 비호는 탄핵 반대나 ‘내란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수준도 넘어선 것이다. 재적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제명하는 것이 정석이다. 의원 징계를 논의할 때마다 나오던 “유죄가 나온 것도 아닌데”라는 억지는 사절한다. 제명은 처벌이 아니라 징계다. 의원직 상실형이 떨어진 범죄자는 제명할 것도 없다.

전자청원은 30일 안에 5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국회로 회부된다. 나는 동참 인원이 크게 모자라 청원 회부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오염이 심각한 옛 미군 기지의 졸속 개방을 반대하는 청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영향력이랄 것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 저명한, 5년 전쯤 교류가 끊어진 한 언론계 선배에게 연락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12월20일경 동의자 수는 요건의 절반인 2만5천명을 넘었다. 정치 커뮤니티들로 소식이 퍼지며 무명의 유저들이 움직인 것이다. 적벽대전의 오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들 중 나를 아는 사람들 다수가 나를 싫어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여러 성향의 정치 커뮤니티 중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목표가 공유되었고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촉나라 김공은 화살을 구해올 수 있을 것인가.

두둥. 12월23일 윤상현씨가 위나라 수군의 채모·장윤처럼 화살을 몰아주었다. 남태령 시위를 두고 “몽둥이가 답”이라며 발악한 것이다. 나는 엑스에 돛단배를 띄웠다. 망언 뉴스와 함께 올린 청원 링크는 1만5천여회 공유에 힘입어 56만명에게 노출되었다(이런 현상은 포스팅한 유저의 평소 영향력과는 무관하다). ‘SNS 버전의 응원 봉’도 반짝였다. “쉽다 쉬워 10초컷이다.” “유료 투표 열어줘. 광고보기 열어줘(그래도 할 수 있다).” 바로 그날 김수민 외 5만5594명의 청원(번호 2200074)이 국회로 정식 회부되었다. 주도 세력은커녕 인플루언서도 한명 없이(있다면 윤상현이다) 거둔 쾌거! 1월12일 마지막 날까지 총 13만1364명이 참여했다(한편 ‘몽둥이’ 발언 징계안과 법원 폭동 관련 제명안도 제출되었다. 제명 청원과 별도로 의원들이 알아서 낸 안이다. 국민의힘은 ‘교감설’ 같은 어설픈 연환계 따위는 접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이 제명을 막아설 것이다. 본회의 투표로 가도 제명에 필요한 200표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를 끌어내린다 한들 그건 비상 수습일 뿐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 언젠가 다른 사안에서 참여 시민들이 서로 반목하는 날도 올 것이다. “헤어짐 끝엔 만나고 만남 끝엔 헤어진다.” 다만 참여 시민들이 앞으로 방방곡곡에서, 이웃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해결하는 청원 운동을 조직하기를 바란다. 온라인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오프라인 캠페인은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작고 다양한 ‘광장들’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