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홈커밍 GV
2025-02-07
글 : 이자연
25년 만에 모인 얼굴들,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
이병헌, 이영애, 박찬욱, 김태우, 송강호(왼쪽부터).

“내가 가만히 있으랬지, 누가 그냥 가래?… 살려주세요.” 25년이 지났지만 관객은 여전히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었다. 지난 2월4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공동경비구역 JSA> 홈커밍 GV는 이제는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그래서 더 그리워진 얼굴들을 모두 모아 25년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 말 그대로 영화가 자신의 고향인 극장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번 홈커밍 GV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CJ ENM이 콘텐츠 산업 전반에 임팩트를 창출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낸 ‘비저너리 선정작’을 발표하면서 진행되었다. 영화부문에 우뚝 이름을 올린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관계를 냉전의 상흔이 아닌,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대중문화사로 기억된다.

개봉 25년 만에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역이 모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국영화 팬들 사이에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온라인 생중계 2개관 티켓은 초고속 매진 되었고, 이후 2개관이 추가로 마련됐을 정도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가 스크린 앞에 등장하자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돌아가며 이 자리의 소회를 전하던 중 이병헌은 특히 새 세대의 감상을 궁금해했다. “영화 관객을 보니 젊은 세대가 많다. 이 자리를 통해 <공동경비구역 JSA>를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감상이 궁금하다.” 이어 GV 무대에 함께 오른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은 “영화 개봉 당시 영화학도였는데 어느덧 영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작품을 CJ ENM 30주년을 맞아 다시 소개할 수 있어서 기분이 남다르다”고 자리의 의미를 되짚었다.

추억에 젖은 자리는 귀여운 농담으로 가득 찼다. 박찬욱 감독은 “창작자로서 작품이 인정받으면 좋은 점은 상을 받는 것도 영광스럽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모두가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우리 막내 (신)하균이는 놀러간다고 빠졌지만”이라고 장난 섞인 감상을 남겼다. 25년 전 시간의 문을 여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영화가 처음 제작되던 90년대 말, 영화를 기획하던 때만 해도 박찬욱 감독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90년대 후반에는 국가보안법이 지금보다 더 냉철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주관적인 해석이 더해지면 법 조항에 의해 구속당할 수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정상회담을 이뤄냈고 나의 두려움과 고민은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싱거운 고민이었다. 당시에는 나름 비장한 각오로 만든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박찬욱 감독에게 특별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흥행에 실패한 전작 두편으로 벼랑 끝에 섰을 때 그를 구원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농담을 남겼다. “이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이게 나의 유작이 될 거라는 절박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절박한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병헌씨도… 그때… 하는 영화마다 족족…. (좌중폭소) 사실 이 작품이 나를 살려줬다는 말에는 두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다. 먼저 영화감독이 두 번째 작품까지 실패했는데 세 번째 기회를 얻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더구나 프로덕션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얻고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건 기적이다. 그런 면에서 나를 살려주었다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이 작품 직전에 단편영화를 하면서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많이 고민한 계기가 있었다. 그때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의견도 많이 듣고 대화도 시도했다. 이때가 연출자로서 발돋움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고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 모든 연출작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배우 송강호는 <공동경비구역 JSA> 출연을 한번 거절했다. 이유는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해서. “너무 촘촘하게 밀도감이 꽉 짜인 구성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이 안 갔다. 한국영화가 이런 걸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거짓말이야. 그렇지만 감독님과의 첫 만남에서 신뢰를 얻었다. 지금은 없어진 옛 명필름 사무실은 한옥 가정집이었다. 좁은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는, 바바리코트를 입은 박찬욱 감독이 보였다. 그때 그 품격. 그를 만났다는 기쁨. 그런 것들이 나를 압도했다. 운명처럼 이끌렸달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이건 정말 <어쩔수가없다>!(박찬욱 감독의 신작 제목-편집자) (웃음)” GV가 있기 사흘 전 배우 송강호는 오랜만에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았다. 날렵하고 샤프한 오경필 중사를 바라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한테도 이병헌 배우가 부럽지 않던 시절이 있더군요? (웃음)”

배우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막 개봉했을 때 영화를 극장에서 40번 정도 관람했다. 모든 관객이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우는 공동의 경험을 상영이 끝나기 전까지 누리고 싶어서다. “그때 처음 흥행의 맛을 알았다. (웃음) 관객과 교감하는 경험을 되도록 많이 하고 싶었다. 그 이후에도 좋은 작품을 많이 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만큼 극장을 많이 찾은 작품은 없었다. 영화를 다시 보면 아쉬운 점이 분명 있지만 그때의 나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이 보인다.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20대의 연기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피 역을 맡은 이영애 배우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친절한 금자씨>로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이어갔다. 박찬욱은 소피 역에 대한 미안함을 뒤늦게 고백했다. “원작 소설에서 남성이었던 인물을 여성으로 바꾸고 영애씨를 캐스팅한 건 여전히 후회가 없다. 다만 소피가 자기만의 역사를 갖고 있고 한반도 현대사회에서 고유한 흐름을 지니고 있는데 그런 점을 더 은유적으로 멋스럽게 보여주지 못하고, 관객에게 떠먹여주듯 설명적으로 접근한 것에 미안함이 있다.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한계점을 인지했지만 그럼에도 소피를 통해 꼭 보여주고 싶은 내용이 있었다. 이건 정말 <어쩔수가없다>. (웃음)” 이에 이영애 배우는 “나도 소피를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의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촬영해서 편집했으면 하는 욕심도 나고. 그 정도로 소피는 내게 특별한 캐릭터”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과거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두고 “남북한 병사의 우정만으로는 약하다. 아예 사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제작사에서 반대했다”는 인터뷰를 남긴 적 있다. 과거 인터뷰에 대한 지금의 생각을 묻자 박 감독은 예측 못한 답변을 내어놓아 관객의 웃음소리를 높였다. “21세기에 만든다면 지금은 가능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던 1999년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김태우, 신하균 배우의 눈빛을 보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웃음)”

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