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늘어난 구독자에 맞춰 전방위적으로, 김태원 넷플릭스 디렉터
2025-02-07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1월21일 공개된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초로 가입자 3억 가구를 돌파하고 전년 동기 대비 16% 상승한 매출액을 달성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의 공개를 앞둔 올해, 현 시점에서 오리지널 영화에 신규 투자하는 유일한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의 영화 신작에도 관심이 모인다. “작품 자체가 시장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라는 김태원 디렉터는 “특정 시즌이나 시기를 노리기보다는, 연중 고른 간격으로 가능한 한 다양한 장르와 포맷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전략”을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 2024년 오리지널 영화들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황야> <로기완> <크로스> <무도실무관> <전,란>까지 총 5편의 오리지널 작품을 공개했다. 모든 작품이 글로벌 톱10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전,란>이 넷플릭스 작품 최초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이 영화계에서 받아들여지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흐름이었다고 본다.

- 극장가의 전통적인 박스 구성이 깨진 가운데 스트리밍 시청자들의 소비 패턴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작품 자체가 시장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서울의 봄> <파묘>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콘텐츠를 다방면, 다각도로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는 ‘언제’ 보는가보다 ‘어떤’ 작품을 보는가가 결국 핵심이다. 넷플릭스 또한 과거에 100만~200만명 정도의 제한된 구독자를 타기팅했던 시절을 넘어 이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가진 구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지난해 공개작들의 흐름을 볼 때 내부적으로는 <황야> <무도실무관> <크로스> 같은 기획영화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데 주목했다. 이런 작품들은 극장 개봉작으로는 규모가 애매하거나 다소 클리셰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만, 스트리밍에서는 오히려 구독자들의 니즈를 잘 충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TV나 모바일 환경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즐거움이 극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대작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구독자 수가 늘어날수록 스펙트럼을 넓히고 골고루 공략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 규칙적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 2025년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영화 중 <계시록>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P)로 참여한다. 어떤 의미가 있나.

단순한 이름 걸기식 컬래버가 아니다. 쿠아론감독이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편집 의견을 주는 등 실질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10여년간 크리처물에 집중해왔지만 사실 초기작들을 보면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 많았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에서 보여준 그의 사회비평적 시선을 다시 끌어내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적인 이야기로 세계적으로도 보편타당한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 오래 공들인 재난물로 김병우 감독의 <대홍수>가 있다. 마침 김병우 감독은 올해 <전지적 독자 시점>도 나올 예정인데.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에서 보여준 김병우 감독의 장기가 잘 발휘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홍수>는 단순한 재난영화를 넘어 인간 드라마를 깊이 있게 다룬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감정선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후반작업에 더 공들여 서두르지 않고 내보내려 한다. 물을 소재로 한 특수효과 작업에 힘쓰고 있다.

- 앞서 <길복순>으로 함께한 변성현 감독이 <굿뉴스>로, 데뷔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김태준 감독이 <84제곱미터>로 돌아온다.

변성현 감독은 업계에서 정말 귀한 존재다. <길복순> <킹메이커>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특유의 색깔로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굿뉴스>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블랙코미디와 액션 등이 섞인 독특한 영화가 될 것이다. 촬영 종료를 한달여 앞두고 있는데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이런 이야기를?’ 싶은 작품이라 나로서도 궁금해서 더 기대가 된다. 김태준 감독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도 보여줬듯이 생활 밀착형 공포, 스릴러에 특화된 감독 같다. <84제곱미터>에서 30, 40대가 가장 고민하는 아파트 문제, 특히 층간소음이라는 대중적 소재를 장르적으로 잘 풀어냈다. 현재 편집이 끝나고 후반작업 중이다.

- 애니메이션에 <이 별에 필요한>에 한지원 감독, <길복순>의 스핀오프 격인 <사마귀>로 데뷔하는 이태성 감독 등 꾸준히 신인감독의 데뷔작을 라인업에 넣고 있다.

특별히 신인감독 쿼터를 정해두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작품이라면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2024년에도 5편 중 3편이 신인감독의 작품이었다. 확실히 플랫폼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지금처럼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극장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장르나 소재, 신인감독의 작품을 메이드하는 데 있어 보다 열려 있는 상황이다. 남궁선 감독의 <고백의 역사>같이 학원 로맨스물도 앞서 <20세기 소녀>의 성공 사례처럼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시도라고 본다.

- 넷플릭스의 예산 분배, 투자 규모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출연료 등이 화제가 됐는데 영화, 시리즈, 예능에 대한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가 앞으로 어떻게 조정될까.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만한 대형 시리즈를 찾고 있는지.

영화, 시리즈, 예능 등의 비중을 놓고 한해 예산을 엄격히 구분해두지는 않는다. 다만 구독자들에게 규칙적으로 신작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파트별로 작품들이 골고루 나와줄 수 있는 주기를 고려하며 예산을 운용한다. 물론 앞으로 시리즈 분야에서 <오징어 게임>을 이어갈 대작은 필요하다. 동시에 지난해로 치면 <트렁크> <미스터 플랑크톤> 같은 작품도 꼭 필요하고.

- 지난해 12월 SB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소식이 지상파와 OTT의 결합으로 화제가 됐다. 향후 타 지상파와도 콘텐츠 공급 계약을 확장할 전망이 있는가.

오랜 기간 방송국 작품을 수급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과 성과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됐다. 이를 바탕으로 SBS와 계약을 결정했다. 오리지널 콘텐츠와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방송 콘텐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다른 채널과의 추가 계약은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도 구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은 꾸준히 가져갈 계획이다.

- 앞으로 제작 투자 방향은 어떻게 되나.

연간 제작 편수를 특정하지는 않되, 지금까지의 스케일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선보이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2026년, 2027, 2028년에도 지금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려 한다. 신규 프로젝트들을 주의 깊게 검토 중인데 2026, 2027년 라인업을 위해 최근 새롭게 확정된 작품은 없다. 넷플릭스가 체리 피킹 방식으로 작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동시에 논의하면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가 한국 영화산업에서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 다양한 규모와 장르, 신인감독의 새로운 시선 등을 꾸준히 발굴하고 개발하고 싶다.

김태원 넷플릭스 디렉터가 뽑은 2025년 기대작

<메이드인코리아>

감독 우민호 / 출연 현빈, 정우성, 원지안, 서은수, 조여정, 정성일 / 플랫폼 디즈니+

“그동안 영화에서 우민호 감독이 보여준 시네마틱한 연출과 OTT 시리즈 포맷의 결합이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호기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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