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1만 관객을 모객하며 화제성을 이끈 <파묘>를 필두로 <시민덕희> <사랑의 하츄핑> 등 쇼박스의 2024년 배급작들은 흥행과 더불어 호평받았다. 오컬트, 애니메이션, 실화 기반의 드라마 등 장르와 소재, 배우 기용 면에서 꾀한 여러 시도들이 침체된 영화시장에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현정 쇼박스 상무(영화사업본부장)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신작을 개발하고 적극적인 투자의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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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해’가 아니었나 싶을 만큼 결과가 좋았다. 오컬트라는 색다른 장르물이 천만 관객을 불러들였던 것도 고무적이었고 <사랑의 하츄핑> <시민덕희>도 각각 좋은 결과를 얻었다. 새롭게 도전한 프로젝트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 즐거웠다. 쇼박스의 배급·마케팅·홍보의 앙상블이 빚어낸 결실이라 생각해 뜻깊다.
- 내부적으로는 <파묘> 흥행 요인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파묘>의 스토리가 대중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장재현 감독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를 파헤쳐 곪은 부분을 도려낸다는 서사와 신구 배우의 조합, 배급 시기 등이 잘 맞아떨어졌고 샤머니즘에 관한 관객들의 관심사와도 맞닿았다고 본다.
- <시민덕희>가 171만 관객, <사랑의 하츄핑>이 123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했다.
<시민덕희>는 보이스 피싱이 이전에 이미 다뤄진 소재이고 신인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점 등 핸디캡이라 볼 요소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의 하츄핑>은 우리로서도 의외성을 지닌 프로젝트였지만 진행하며 오히려 매력을 느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확인한 동시에 애니메이션이 확장성이 좋은 IP라는 걸 실감했다. 앞으로 투자나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 지난해의 결과 중에 앞으로의 투자배급 전략 면에서 참고할 만한 지표가 있었나.
사실 지금도 계속 그 지표를 찾아가는 시기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훨씬 자주 극장에 갔기 때문에 입소문에 필요한 관객수가 어렵지 않게 충족됐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관객의 시선을 붙잡으려면 기획단계에서부터 관심, 흥미,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주제가 명확하거나 이야기 어딘가에 이상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또한 요즘 관객들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할 자리가 마련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작품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내재된 메시지뿐만 아니라 개봉 이후의 마케팅·홍보도 각을 잘 세워 접근해야 한다.
- 2025년의 영화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 그에 따른 쇼박스의 전략은 무엇인가.
올해는 중급 규모의 영화가 많아 극장 상황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중급 영화의 성적이 잘 나온다면 그것이 더 건강한 시장의 증표가 될 것이다. 지난해 <시민덕희>가 잘됐을 때 내부적으로 안정성이 좋았던 것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작품이 성공해 수익률을 올리는 사례가 축적된다면 영화계도 다음을 도모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성공을 목표로 전략을 짜되 혹여 영화가 망하더라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배급할 계획인가.
그렇다. 전처럼 과거의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거나 시장 분석만 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여러 장르의 작품을 라인업에 세우는 이유도 다방면의 시도를 통해 시장을 기민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특히 배급을 할 때는 도전해보지 않은 시장에 발을 들이려고 한다. 우리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믿기 때문이다. <퇴마록>의 경우 한국 애니메이션을 배급해보고 싶었고 이 작품이 한국영화계에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란 판단에 택하게 됐다. 그밖에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멜로영화 <먼 훗날 우리>(가제), 김윤석·구교환 주연의 심리 스릴러 <폭설>, 유해진과 이제훈이 소주 회사를 지키려는 자와 넘기려는 자로 등장하는 <모럴헤저드>(가제), <롤러코스터>보다 드라마가 가미된 하정우의 코미디 <로비>를 라인업에 올렸다.
- 작품별 배급 시기는 어떻게 잡았나.제작사와 논의 중이긴 한데 아직 공개하긴 어렵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경쟁작의 개봉 시기, 작품별 타깃에 맞는 시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날짜를 보고 있다.
- 올해 신작 투자의 기조는 어떤가.모기업이 안정돼 있고 지난해 쇼박스 실적도 좋기에 신작 투자 편수를 더 늘리려 한다. 한해 라인업에 7~8개 작품을 올릴 목표로 열심히 작품을 찾고 있다. 2026년부터는 해외 직배 사업과 해외 투자도 시작하려 한다. <파묘>가 인도네시아에서 264만명, 베트남에서 246만명 가량 모객할 정도로 동남아 국가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K콘텐츠는 여전히 호황이라는 것을 <파묘>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기에 해외쪽 활로를 더 적극적으로 찾으려 한다.
- <파묘>의 흥행이 신작 기획 개발에도 영향을 준 바가 있나.
그렇진 않지만 오컬트 장르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건 사실이다. 마치 <추격자> 이후 비슷한 장르의 제안이 다수 들어왔던 때처럼 말이다. <파묘>의 결과가 좋긴 했으나 이를 의식해 장르에 한정하기보단 최대한 열어둔 채로 작품을 살피고 있다.
- 2026년 이후 공개될 신작 중에선 연상호, 장항준 등 기성 감독들과의 협업이 눈에 띈다.
<군체>(가제)를 통해 연상호 감독의 좀비 블록버스터를 다시 큰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촬영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준비 단계에 있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제)는 유해진, 박지훈이 출연하는 사극으로 유배된 어린 왕을 마을 사람들이 가족처럼 보살피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룬다. 여러 세대에 소구되는 작품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30일>의 남대중 감독이 연출을 맡은 <퍼스트라이드>(가제)는 오랜 친구 4명이 서른살이 된 후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영화다. 기성 감독의 신작 중심으로 공개했지만 신인감독들과의 협업에 대한 니즈도 크다. 새로 기획·개발하는 작품도 신인감독들의 시나리오를 유심히 보는 중이니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많이들 갖고 와주셨으면 좋겠다.
이현정 쇼박스 상무(영화사업본부장)가 뽑은 2025년 기대작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 / 출연 이병헌, 손예진 / 배급 CJ ENM
<미키 17>
감독 봉준호 /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 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전지적 독자 시점>
감독 김병우 / 출연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신승호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박찬욱·봉준호 감독님의 신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쩔수가없다>에 이병헌, 손예진 배우를 캐스팅한 건 치트키나 다름없지 않나. (웃음) 결과적으로 어떤 작품이 완성됐을지 궁금하다. <미키 17>도 미국에서 어떻게 찍어왔을지 호기심이 생긴다.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서 보기 위해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 그 밖에 <전지적 독자 시점>을 언급하고 싶다. 독특한 IP를 영상화했고 그 중심에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사례로서 또 다른 블록버스터 시장을 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