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죄와 무구 사이…오컬트적 세계를 복합적으로 그려내다, <퇴마록> 김동철 감독 , 이우혁 크리에이터
2025-02-14
글 : 유선아
사진 : 오계옥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효시로 각인된 0세대 웹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된 이래 다양하게 리메이크되었다. 첫 연재 시점 이후 32년 만에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원작이 가진 힘을 살린 리메이크작을 바라는 오랜 팬들의 기다림과 애니메이션으로 그 방대한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될 새로운 관객의 기대를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2월 개봉을 앞두고 <퇴마록>의 김동철 감독과 원작자 이우혁 작가를 만나 애니메이션 제작 비화를 즐겁게 청해 들었다.

김동철, 이우혁(왼쪽부터)

-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이다. <퇴마록>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과 목표가 있었나.

이우혁 애니메이션 제작은 개인적으로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이 작품에 환상적인 요소가 많으니 애니메이션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 같았다. 실사영화라면 세트 제작도, 특수효과도 제작비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나. 중요한 건 애니메이션이기에 캐릭터의 이미지가 고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부분이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애니메이션은 <퇴마록>을 리메이크하기에 가장 적합한 포맷이었다. 제작사인 로커스 스튜디오에서 제안이 왔을 때 내가 조금 까다롭게 굴기는 했어도 흔쾌히 응했다.

김동철 제작사에서 <퇴마록> 리메이크안이 나오고 이우혁 작가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을 때 내부에서 굉장히 흥분했었다. 국내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동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작품에 편중돼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리의 목표와 포부는 성인 관객도 즐길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혀보자는 데 있었다.

- 김동철 감독은 <퇴마록>의 연출자로, 이우혁 작가는 각본이 아닌 크리에이터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협업은 어땠나.

이우혁 원작자여도 내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없다.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집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여백을 활용하며 쓰는 편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처럼 어떤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룩이 나오려면 고증과 설정을 짚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역할은 <퇴마록> 이 원작의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바운더리를 정하는 것이었다.

김동철 기획 기간이 길었다. 방향이 바뀌면서 시나리오가 나왔다 엎어지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무래도 2차 창작물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다 보니 기획 단계에서 디자인이 나오면 먼저 작가에게 자문을 구하듯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런 부분이 보강되면 좋겠다’는 식으로 코멘트를 받았다.

자유로운, 그런데 제약 또한 많은

- 무협 요소가 있는 오컬트, 판타지 장르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 같은데.

김동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어도 시작할 땐 겁이 없었다. 그런데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들여선 안되는 곳에 발을 들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퇴마록>의 세계는 방대했다. 팬으로서의 입장은 접어두고 원작자가 제시하는 비전에 어떻게 맞춰야 할지에 포커스를 두고 하나둘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우혁 장르와 원작의 세계관 접근이 먼저였다. 감독을 만나 던진 첫 질문은 “오컬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단순히 공포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컬트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종교는 죽음을 향한 인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장르로 접근하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불안에 대항하는 것이 오컬트다. 그래서 오컬트에서는 마치 개인이 원시로 돌아간 듯 각자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죄와 무구 사이에서 죽음을 피해가거나 피해갈 수 없도록 만드는 운, 인간 내면의 불안, 이 모든 게 내 소설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김동철 원래의 기획이 24부작 시리즈였기 때문에 전체 스토리라인에 ‘하늘이 불타던 날’뿐 아니라 원작의 뒷부분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로지 시리즈만을 위한 자투리 에피소드도 작가에게 여럿 받았다. 소설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와 <퇴마록> 세계관을 작가에게 직접 들으며 보다 깊이 접근할 수 있었다. 이우혁 작가가 강조한 키워드에 동의했고 어떻게든 작품으로 녹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주인공 4인의 캐릭터 디벨롭먼트 과정도 궁금하다.

김동철 러닝타임이 짧아졌으니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 액션 애니메이션으로 접근하다 보니 착오도 있었지만 결국 캐릭터가 가진 히스토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했다. 박 신부는 종래의 사제 이미지에서 죄의식이 더 강조되었으면 해서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정했다. 결과적으로 이우혁 작가도 수용해주었다.

이우혁 박윤규 신부 캐릭터는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원작의 박 신부에게는 수염이 없다. 파문당했으니 수염이 있는 모습이 인물 접근이나 시각적으로도 더 낫다는 게 감독의 입장이었고 나중엔 나도 그게 괜찮아 보였다. 또 이전 버전에서는 몸집이 왜소했다가 이번엔 커졌는데 원작의 묘사에 가까워져서 아주 만족스럽다. 준후는 미형 캐릭터여야 한다고 처음부터 말했다. 시대를 타는 룩을 가진 캐릭터는 승희인데 여성의 의상트렌드가 어떤지 몰라서 전적으로 맡겼다. 현암은 소설에서 애매하게 묘사돼 있어 왜 미남으로 만들었냐는 말이 분명 나올텐데 내가 보기에 현암은 미남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김동철 맞다. 현암은 체조선수 같은 체형에 군중 속에 있으면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라고 되어 있다. 다만 작화로 그릴 때 정말 평범하면 주인공으로 보이지 않기에 어느 정도 신경 썼지만 현암의 얼굴을 가장 비대칭으로 그려서 잘생겨 보이게 하지 않았다. 승희는 기획 당시 제일 진취적이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방향을 잡았다. 디자인하고 모델링해서 제작 들어갔을 때만 해도 파격적이었는데 시간이 오래 흘러서 그런지 파격적으로 보이지 않는 듯해 아쉽다.

- 애니메이션 비주얼라이제이션이 원작 <퇴마록>을 표현하는데 더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이우혁 전반적으로 더 자유로운 것이 맞다. 문제는 제약 요소도 많다는 것이다. 고증과 구체화, 대중성이라는 면에서 분명히 제약이 있다. 각자가 상상하도록 글을 쓰는 게 정말 자유롭지. 그런데 그마저도 다 다른 것을 상상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디자인을 뽑아내기란 불가능 하다. 그러니 이미지를 정하는 작업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김동철 <퇴마록> 룩이 공개된 후 <아케인>과 비교하는 반응이 있었다. 카툰 렌더링이 비슷하다는 의미 같은데 <퇴마록>의 기획도 못지않게 오래되었다. 공개 시기가 계획보다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퇴마록>도 오랜 연구 기간을 거쳐 많은 인원이 함께 열심히 했다. (웃음)

- 소설은 1993년 하이텔에 연재될 당시가 배경이다. 각색에 주고 싶었던 변화는.

이우혁 <퇴마록>의 시작은 1990년대이지만 뒷부분은 2000년대 이후다. 그 첫 부분을 가져 왔으니 손 볼 데가 있더라도 소설은 근본적으로 어떤 시대에든 통용될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디테일이 바뀌어도 결국 인간이 지닌 본질을 다룬다면 시대 배경의 다름은 크게 중요치 않다. ‘하늘이 불타던 날’은 그런 면에서 리메이크하기 수월했고 큰 맥락에서 주고 싶은 변화는 없었다.

김동철 시대상의 변화는 당연히 따라잡으려 노력한 부분이고 각색의 중점을 드라마를 살리는 데 두었다. 앞서 말했듯 24화 시리즈에서 극장판으로 기획이 바뀌면서 시리즈 1화에서 4화 까지의 에피소드를 압축한 게 지금의 <퇴마록> 이다. 소설에서 ‘하늘이 불타던 날’은 인물이 처음 등장하는 중요한 장인데 뒤에 일어날 사건을 염두에 둔 캐릭터의 빌드업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에 있던 부분을 제작 도중에 바꾼 것도 꽤 되는데 이우혁 작가가 놀랐을 수도 있다.

이우혁 놀랐다. 시나리오에 없으면 나는 알 방법이 없거든. 과거 장면 같은 것을 보니 애 많이 썼겠더라. 나중에 진심으로 칭찬했다.

모든 것을 정석대로

김동철, 이우혁(왼쪽부터)

- 원작이 방대한 자료조사로 이름이 나 있다면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작화의 세밀함과 디테일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 같다.

김동철 로케이션 헌팅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편의점 장면도 전부 허가받고 그렸다. 이 이야 기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서사라는 점을 배경으로 말하고 싶었다. 이우혁 작가도 작품을 처음 본 뒤 했던 말이 산 풍경이 굉장히 한국적이라는 코멘트였다. 대웅전 탱화도 모두 수작업이다. 작가의 설명을 따라 해동감결과 기존 시리즈 기획의 뒷부분에 담겼던 내용, 해동밀교의 탄생 비화, 이렇게 세 점이고 작품 안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원작의 세부 설정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우혁 완성본을 보고 감탄했다. 특히나 숲과 산을 보고. 정말 한국적인 경치 그 모습 그대로다.

김동철 이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는 기술과 능력은 갖추었되 국내에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는 문제인식에 있었다. 싱크를 맞추는 작업도 굉장히 노력한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의 기본 제작 방식은 성우 녹음을 먼저 하고 애니메이터들이 그걸 보며 작업한다. 녹음을 세번이나 해서 성우들도 고생이 많았다. 무엇이든 정석대로 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공을 들였다.

- 목소리 캐스팅에서부터 완성까지 진행 과정은 어땠나.

김동철 작가가 대사를 전부 리딩해줬다. 그 리딩 분석을 거쳐 가장 어울릴 목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연기 톤과 목소리가 주는 연령대의 느낌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숙고한 부분이다. 중성적인 느낌으로 연기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기 때문에 아이 역할을 맡은 성우들은 아주 어려웠을 거다.

이우혁 녹음할 때 보려고 했는데 안 보여주더라. 그래서 감독이 생각하는 뭔가가 있나 보다 했다. 나중에 군소리 좀 보탰다.

김동철 많이 숨겼다. 서로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작에 돌입하면 더이상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이우혁 작가도 이해해주었다. 완성까지 숨겼다가 보이고 한번에 크게 수정하자는 마음으로 경주마처럼 임한 시기였다. 그러면서 걱정도 됐다. 누가 ‘어, 이거 원작이랑 다른 것 같은데’ 하면 ‘작가님은 이해해주실 거야’ 했다. (일동 웃음) 다른 누구보다 내가 이우혁 작가의 생각이 뭔지 잘 알 것 같았다.

이우혁 설정의 본질만 남아 있다면 나머지는 바꿀 수 있다. 나보다 잘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내 작품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또 만인에게 다 맞출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최대 다수가 만족할 수 있다면 약간의 변화는 오히려 좋다.

- 애니메이션 <퇴마록>에 품은 기대를 말한다면.

김동철 편집으로 들어낸 컷 분량이 꽤 길다. 기대를 넘어 바람이 있다면 이번 <퇴마록>이 잘돼서 시리즈로 처음부터 다 보여줄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이우혁 시리즈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은 나 역시 크다. 과정이 길었고 녹록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달라. 뭐,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거지. (웃음) 이렇게 말해도 <퇴마록> 팬들은 이제 다 이해할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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