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정준희의 클로징] 미디어와 대중(1) 그들은 여전히 ‘중2’인가?
2025-02-20
글 : 정준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언론학자)

짧게 쓰고 쉽게 말하라. 효과적인 소통의 필수조건이다. 나처럼 미디어에서 활동하며 종종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 불려나가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원칙이다. 여기서 ‘대중’은 소위 엘리트에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대중이지만은 않다. ‘불특정다수’로서의 대중이다. 내 말을 듣고 글을 읽는 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전문성과 요구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막막한 상태에서 말을 걸고 글을 적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개 이질적인 집단이다. 각자의 지식수준과 범위 그리고 취향까지 천차만별인 청중을 상대하려면 결국 짧게 쓰고 쉽게 말하는 게 최선의 방책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른바 ‘대중매체’ 시대에는 이 방책이 종종 “시청자가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전제하라”는 실천적 금언으로 표현되곤 했다. 비록 미디어 연구자이기는 해도, 또는 오히려 그래선지 나는 이 말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시청자 가운데 하나인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였고, 평균 학력이나 지식수준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신장된 현재의 대중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관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스로 연구자의 껍질을 벗고 대중매체의 중심에 들어온 지 어언 7년이 흐르다 보니 현장에서 구른 이들의 통찰과 지혜가 이 금언 속에 ‘짧고 쉽게’ 집약돼 있다고 인정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금언이 ‘관습적으로’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대중은 실존하는 대상이기보단 구성된 대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중이 이미 그곳에 있었기에 대중매체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대중매체가 (그런 미디어와 일상적으로 관계 맺는) 대중을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 불특정 다수와 그것도 현장에서 실물적으로 마주하지 않은 채 동시적으로 (혹은 일정한 시차를 둔다 해도 사실상 실시간에 가깝게) 소통하는 방식은 말 그대로 ‘방송’(放送; broadcasting) 기술, 즉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디오와 TV 방송은 진정한 대중매체의 시작이자 본령이었다. 대중은 그 전파가 미치는 거대한 돔 아래에 모여든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꽤 다른 종류의 미디어 기술이 등장해 있는 지금, 그런 미디어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인가 그렇지 않은가? 혹은 각각의 미디어는 어떤 종류의 청중과 만나고 있거나 만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들과 미디어가 지금 맺고 있고 앞으로 맺어가야 할 관계, 즉 소통 형식의 본질을 지목한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고 과거보다 더 짧아지고 쉬워져야 하는) 중2일 수도 있으나, 어지간한 ‘덕심’이 아니고서는 상대하기 어려울 극히 마니악한 중2일 수 있다. 학력이 박사라고 해도 실질적인 문해력은 현실의 중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일지 모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중2라는 단순화로는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청중일 테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