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연의 이과감성]
[임수연의 이과감성] 봉준호식 생태주의
2025-03-13
글 : 임수연

2월28일 개봉한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만든 네 번째 SF영화다. 이중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옥자>는 뛰어난 시네아스트의 과학적 상상력과 생태학 담론이 만나 탄생한 독창적인 공상과학영화였다. 개봉 당시 스트리밍 플랫폼의 부상과 시네마의 정의를 논하는 거시적 이슈에 밀려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재고할 가치가 충만하다.

<옥자>의 주인공은 글로벌 기업 미란다사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슈퍼 돼지 중 강원도 산골로 보내진 ‘옥자’ 그리고 그의 가족인 소녀 미자(안서현)다. 시대가 바뀌고 미란다사의 새로운 CEO가 된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턴)는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연 착취적 방식으로는 더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대신 농화학 기업을 축산·식품 회사로 탈바꿈하며 환경, 생명, 제작공정의 효율성까지 고려하는 축산업계의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한다. 루시는 슈퍼 돼지가 실험실에서 유전자 변형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대신 그럴싸한 가짜 사연을 고안한다. 칠레의 한 농장에서 돌연변이로 탄생한 슈퍼 돼지를 강압 없는 자연 교미와 친환경적, 자연적 방식으로 번식시켰고, 그렇게 탄생한 26마리의 슈퍼 돼지를 세계 각지의 우수 축산 농민들에게 보내 각자의 방식으로 키우게 장려했다는 것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가장 우수한 슈퍼 돼지를 선정하는 ‘베스트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앞두고 옥자가 미국으로 강제 소환되자 미자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서울로, 뉴욕으로, 뉴저지로 떠난다.

새삼스럽게 옥자와 같은 유전자변형생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의 의미와 연구 현황, 이로 인한 윤리적 문제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해당 내용은 고등학교 생물학 커리큘럼에서도 충실히 다루고 있으니 이 지면에서는 생략한다. <옥자>는 온건하고 친절한 사회생태학(과 에코페미니즘) 입문이자 봉준호가 천착해 온 자본과 계급 문제의 전 생물적, 전 지구적 확장으로 읽을 때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문제가 중심 설정의 전제가 됐던 <설국열차>와도 연결된다.

‘옥자’는 신자유주의와 과학기술의 과도한 발전, 현재의 육식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간명하게 보여주는 메타포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소비가 육식 문화, 공장식 축산, 동물권 침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할리우드식 3막 구조에 따라 폭로한다. 여기서 옥자가 GMO로 설정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합성생물학의 속성과 연관되어 있다. 생명과학에 공학적 관점을 도입한 합성생물학은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생물 시스템을 만들거나 기존의 요소를 재조립하는 분야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이윤 극대화가 결부되면 비용 절감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유기체를 상상할 수 있다. 마치 옥자처럼 말이다.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에서 머레이 북친은 생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 사회의 위계적 지배관계에 있다고 고찰한다. 다시 말해 작금의 생태 위기는 경제적·인종적·문화적·젠더적 갈등과 지배 의식이 사라질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옥자>는 미란다와 미자, 뉴욕과 강원도,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에코토피아), 거대 글로벌기업과 한명의 소녀 등 극명한 대비 구조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이들의 계급구조가 무분별한 육식 문화와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조망한다. 한편 사회생태학의 맥락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자연의 억압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의 근원을 가부장적 체제, 다시 말해 힘의 논리를 따르는 모든 이데올로기에서 찾는다. ‘페미니즘’이 언급되면 색안경부터 끼는 사람들의 섣부른 편견과 달리, 에코페미니즘은 성별의 이분법을 지향하는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같은 이원론이 기존의 위계질서를 견고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이분 구조를 해체하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최초 상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소년 코난>의 여자아이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고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남자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영화 <파수꾼>이 되지 않나. (웃음) 개인적으로 두 여자아이가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숲속의 모습을 더 찍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옥자>는 흔히 동일시되던 자연과 여성의 무조건적 포용성에서 벗어나 모험의 주체에 서구, 도시, 자본가에 대비되는 어린 소녀를 둔다. 서울과 뉴욕을 종횡하는 미자의 용감한 이미지는 물론 동물해방전선(ALF)의 탈출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는 전개 역시 기존의 지배구조를 전복한다. 심지어 미자가 금돼지를 주고 옥자를 돌려받는 전개는, 자본주의 논리를 역이용하게 된 소녀의 모습을 씁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지배와 피지배의 일방적 관계를 흔든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가 육식 소비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거듭 밝혀왔다(영화에서 미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닭백숙이다). 공교롭게도 인간이 과도한 육류 소비를 자제하고 채식 중심의 식단을 고려하게끔 독려하는 가장 큰 유인은, <옥자>처럼 환경파괴나 동물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는 개인의 건강인 듯하다. 최근 ‘저속 노화 식단’ 열풍이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관객이 고기가 대량생산되는 방식을 목격하고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고민할 시간을 갖기 바란다”(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고 영화의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드문 해피엔드(로 보이는 마무리)로 인간과 자연, 동물의 생태적 연대 가능성을 온건하게 제시한다. 미란다 코퍼레이션 본사가 있는 뉴욕과 대비되는 강원도의 묘사는 봉준호의 전작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킬 만큼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인간의 산업화와 대비되는 자연 대지의 속성을 극대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대목이 있다. 옥자가 미자의 귓속말을 알아듣는 등 뛰어난 지능과 공감 능력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대중영화 매체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동물 착취의 현장을 목격할 때 충격 효과를 배가하는 영리한 설정이다. 이와 동시에 <옥자>가 다루는 생태 윤리의 범주가 자칫 고지능 유기체에 국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동물권의 적용 범주는 의식, 욕망, 목표 의식 등 다양한 기준을 놓고 논의되어왔고, 동시대 가장 유명한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는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봉준호의 계급사회학이 생태주의 논의와 조우한 궤적은 한국 사회에 꽤 급진적 화두를 던지지만 인간의 엔터테이닝은 종종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현재 봉준호 감독은 심해어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영화를 준비 중이다. <괴물> 때부터 꾸준히 환경문제와 밀착된 세계관을 고안해온 봉준호 감독에게 생태학은 계급 문제만큼이나 그의 중요한 인장이며 그와 유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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