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obituary] 그 존재의 무게, 진 해크먼(1930~2025)
2025-03-0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만일 진 해크먼이 <로얄 테넌바움>(2001)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최근 영화 팬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게 들렸을지 모른다. 무심한 표정으로 중병을 앓는 척 쓰러지는 테넌바움 가문의 수장, 그가 연기하는 로얄 테넌바움은 다양한 인물들을 한데 엮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배우는 감독과 여러 차례 불화를 겪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훗날 해크먼이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앤더슨빌에서의 탈출: 남북전쟁에 관한 소설>(2008)이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사실 미국식 메소드연기의 정점을 선보인 이 배우의 스타일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미장센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작새처럼 단정하게 머리를 붙이고 무미건조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 틈새에서, 해크먼의 메소드식 연기는 다소 거친 듯이 느껴졌다. 심지어 해크먼은 시나리오에 적힌 부차적인 노트마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대사 중심의 연기자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둘의 협업은 성공했고, 관객들은 <로얄 테넌바움>의 현대적이고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완벽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1930년 1월30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진 해크먼은 16살이 되자 곧바로 해군에 입대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의 꿈은 배우였지만 그가 팬서디아 플레이하우스 연기학교에 입학한 것은 30살 무렵이었다. 뒤늦게 그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학교에서 연기를 배웠고 로버트 듀발, 더스틴 호프먼과 친구가 되었다. 세 사람은 나이는 달랐지만 함께 연기를 통해 소통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 모두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졸업하지 않은 채 해크먼은 브로드웨이와 TV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누구도 그가 배우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지만 1958년부터 그는 뉴욕을 오가며 일했다. 1964년 브로드웨이 연극 <애니 웬즈데이>가 대중적으로 흥행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공연을 본 로버트 로센 감독이 영화 <릴리스>(1964)에 그를 캐스팅했다. 이후 영화계 진입에 성공한 해크먼은 곧바로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에 캐스팅됐고,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1971)과 만났다. 특히 <프렌치 커넥션>은 그의 인생작이 되었다.

<프렌치 커넥션>에서 해크먼이 맡은 역할은 나쁜 경찰 지미 도일이다. 창이 작은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면서 거칠게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 영화에서 그의 별명은 ‘뽀빠이’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뽀빠이’로 기억하는 것은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이다. 이후 <프렌치 커넥션2>(1975)를 포함해 1970년대에 그는 다양한 장르영화에 도전했다. 웰메이드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알 파치노의 허수아비>(1973), 이듬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컨버세이션>(1974)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가 채워졌다. 그 사이 악당 렉터 박사를 연기한 <슈퍼맨>(1978)과 <슈퍼맨2>(1981) 등 블록버스터영화들도 있었지만 작가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1970년대 출연작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단연 <컨버세이션>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1973)와 <대부2>(1978) 사이에 연출한 이 영화에서 그는 도청 전문가인 해리 콜을 연기한다. 이야기의 특성상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캐릭터로, 분위기와 표정, 심지어 색소폰 연주를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사실 <컨버세이션>을 처음 기획하던 당시에 코폴라 감독이 주인공으로 생각한 배우는 말런 브랜도였다. 하지만 브랜도가 이를 거절했고, 결국 해리 콜 역은 해크먼에게 돌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해크먼 자신이 롤 모델로 꼽은 첫 번째 배우가 바로 말런 브랜도였다는 사실이다. 1986년에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이 연기를 배우던 기간 동안 영화계에는 액터스 스튜디오만이 유일한 방식이었으며,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브랜도처럼 ‘진짜’라고 느끼도록 에너지를 쏟는다고 설명했다. “말런 브랜도의 성격, 전문성, 육체적인 존재감을 보며 늘 노력했다. 나 자신이 그와 같은 내면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되뇌며.” 이 인상적인 영화 속 캐릭터는 시간이 흘러서 다시 한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에서 오마주되었다. 해크먼은 다시금 도청 전문가를 연기했다.

단단한 육체, 둥근 코끝, 과묵한 안경테, 해크먼의 얼굴에는 우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두운 경찰이나 요원 역에 적합했다. 실제로도 오랜 영화 팬들은 그를 거친 역할의 경찰로 기억하고 있다. <나이트 무브>(1975)에서의 사설탐정, <진 핵크만의 표적>(1985)에서의 전 CIA 요원, <미시시피 버닝>(1988)에서는 FBI 형사로 그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서는 폭력적인 보안관 빌 다겟으로 분했다. 특유의 캐릭터 덕분이었다. 또한 <제로니모>(1993)의 장군, <크림슨 타이드>(1995)의 함장, <앱솔루트 파워>(1997)의 대통령, <노 웨이 아웃>(1998)의 장관, <에너미 라인스>(2001)의 제독 등 권력자 역할에도 그는 제격인 듯 보였다. 미묘한 표정과 음성, 획일화되지 않은 움직임을 통해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 권력자로 그는 한동안 활약했다. 오랜 기간 스크린에서 보여준 활동을 단 몇 가지 부류로 한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진심을 다해 연기했으며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

2025년 2월27일, 뉴멕시코주 경찰은 진 해크먼의 죽음을 발표했다. 2004년 <웰컴 프레지던트>를 마지막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한 지 2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미스터리하게도 숨진 그의 곁에는, 숨진 아내와 개가 함께 발견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40년의 연기 기간 동안 2번의 아카데미상, 4번의 골든글로브상, 2번의 영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전설적인 대배우가 숨졌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바라보았던 그의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다. 평온한 그의 안식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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