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말씨와 말간 미소. 색깔을 빌려보자면 장규리는 단연 투명에 가깝다. 어떤 것에도 쉽게 물들지 않지만, 또 쉽게 변모할 수 있는 것이 마치 장규리 같다. 무거운 극 중 분위기를 화사하게 전환시키는 <지금 거신 전화는>의 나유리는 산뜻한 톤 앤드 매너만큼이나 아나운서라는 전문직을 잘 드러내는 게 중요한 미션이었다. “내향형인 내가 외향형의 유리를 표현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관찰했다. 특히 츄의 명랑한 모습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이외에도 유리의 프로페셔널한 포인트를 잘 내세우고 싶었다. 그때 드라마팀에서 MBC 정다희 아나운서를 연결해주었다. 여러 차례 수업을 통해 유리가 지닌 직업적 면모를 체득하려 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커버하는 게 쉽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정다희 아나운서님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웃음) 그 뒤로 음성파일을 주고받으며 섬세한 피드백을 들었다. 번거로운 일인데도 정다희 아나운서님이 따뜻하게 답해주셨다.” 주어진 과업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성실함은 장규리가 지닌 자산이다. 대본을 읽고 인물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기만의 질문지를 작성한다. “연기하기 전 캐릭터의 행동과 성향을 납득하는 게 내겐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작성할 질문지를 만든다. MBTI 같이 특정 프레임에 갇히는 질문보다는 ‘이 배역이 사용할 것 같은 향수는?’ ‘이 배역이 즐겨 들을 것 같은 노래는?’과 같이 열린 질문을 생각한다.”
특히 지난 2024년은 장규리의 스펙트럼을 넓힌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피라미드 게임>의 서늘한 엔딩을 암시하는 장면을 비롯하여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에서는 망설임이라곤 일절 모르는 돌진형 플레이어 차제이를 그렸다. 이성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막가파. 그러나 남 몰래 그림자를 키우는 슬픈 사연의 주인공. 같은 해 <O’PENing(오프닝) 2024-아름다운 우리 여름>에서 어둠을 끌어안은 고등학생을 묘사했던 경험까지 펼치고 나면 장규리를 한 단어로, 한 장르로, 한 캐릭터로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신의 범주를 끊임없이 넓히는 과정에서 그는 물음표의 힘을 믿었다. “내가 질문을 정말 많이 한다. 질문 폭격기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왜요?’였다. 인물의 마음을 너무 알고 싶어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 장면에서 그렇게 걸어갔을까?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질문을 하고 나면 자유로워진다. 모든 것을 알고 나야 마음 편하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다.”
배우 장규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따금 침묵이 있었다. 그건 신중하게 답변을 생각하는 그의 성정으로 만들어진 틈이었다. 이 여백의 시간은 그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숙고하는 마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의지. 배우로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그의 목표는 화려한 수상이나 영광의 자리가 아닌 꾸준함에 있었다. “방향도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배우의 일을 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정 성과를 내고 싶다기보다 멈추지 않고 이어나가고 싶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중간 나만의 작은 행복과 즐거움을 발견하면 좋겠다. 지속성에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
filmography
드라마
2024 <지금 거신 전화는> <O’PENing(오프닝) 2024-아름다운 우리 여름>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 <피라미드 게임> 2022 <치얼업> 2020 <사이코지만 괜찮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