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ulture book]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2025-03-07
글 : 이다혜

홍한별 지음 위고 펴냄

번역을 해보면 ‘뜻을 알겠다’와 ‘한국어(도착어) 문장으로 옮길 수 있다’ 사이에 망망대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시와 소설, 에세이 같은 문학의 경우 작가가 문장을 아주 단순해 보이는 단어의 여러 뜻으로 동시에 붙들어서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클레어 키건, 애나 번스, 가즈오 이시구로, 데버라 리비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소설을 한국어로 옮긴 홍한별 번역가의 에세이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 실린 첫 번째 산문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흰 고래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것이다.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붓질을 더할수록 더럽혀지기만 하는 순백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번역은 얼마나 투명해져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가에 대한 주장도 여럿이다. 도착어로 매끈하게 읽히는 쪽을 선호하는 의역파와 번역이 투명해서 원문을 알 수 있을 정도를 선호하는 직역파. 홍한별은 어느 쪽을 선택하는 대신 <모비딕>의 이슈메일이 흰 고래를 정의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듯 불가능한 번역을 정의하려는 불가능한 몸짓을 글로 엮었다. 아마도 한국어와 번역이라는 이슈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을,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어판에 관련된 논란에 대한 해석 역시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스미스가 번역문에 전사한 모호성, 불분명함이 한국어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동양의 낯선 신비로 여겨진 건 아닐까”). 세계사의 침략적 일면과 떼어놓을 수 없는 번역이라는 일에 대해서는 <성경과 옥수수빵>을 읽어보면 좋겠다. “(번역은)지배 서사에 균열을 만들어 주변화된 목소리가 들리게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흰색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침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논한다. 나아가 <기계 번역 시대의 번역가>라는 글은 AI 발전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직업으로서의 번역가 이야기다. 여러 사례가 본문에 언급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홍한별 번역가가 한국어로 옮긴 책을 읽어보는 것일 테다. 때로 원문이 비쳐 보이는 느낌의, 때로 원문을 상상하기 어려운, 뉘앙스가 풍부하고 단어 너머의 다르고 유사한 의미들이 일렁이는 단어 선정 같은 것들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혹은 노라 에프런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각본집>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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