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를 보고 왔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단연 장파 작가의 <여성/형상: Mama 연작>이다. 붉은색의 살덩어리에 눈이 최소한 3개 이상인 괴물을 그린 그림이다. 다리에 엉덩이와 가슴만 달린 형상의 작은 드로잉도 눈에 띈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니 다른 작품들도 괴물 천지다. 대개 붉은색이고 가슴과 눈, 이빨, 생식기 등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 낯익은 느낌은 뭐지? 바로 <서브스턴스>의 ‘몬스트로 엘리자수’다! 수(마거릿 퀄리)와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의 욕망이 탄생시킨 괴물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 하늘색 드레스에 몸을 구겨넣은 채 가면을 쓰고 기어코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들에게 피를 뿜어대던 그 미끈미끈한 괴물과 장파 작가의 작품들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수와 엘리자베스의 살벌한 난투극을 지켜보면서도 둘이 서로 화해하거나 타협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내 앞에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떡하니 내놓은 괴물을 보며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보디 호러 영화를 보면서 내가 뭘 기대한 건가 싶어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여성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를 은유나 해석의 영역에 두지 않고 여성을 정말 괴물 그 자체로 만들어버린 감독의 선택이 마음에 쏙 들었다. 누가 봐도 괴물의 모습인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징그럽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징그러움과 불쾌감에서 쾌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기괴한 쪽은 오히려 흠잡을 데 없는 수의 몸매였다(아카데미가 유일하게 인정한 분장의 힘!). 괴물은 같은 전시의 이불 작가 작품에도 있었다. <Monster: Pink>는 분홍색으로 색깔만 예쁜 괴물이고 <아마릴리스>는 전작인 <사이보그> 연작보다 유기체의 느낌이 더 강해져 한층 더 혼종적 괴물로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10여년 전 같은 작품을 보면서 왜 굳이 이렇게 흉측한 존재를 만들까 의아해했던 내가 이제 왜 괴물이 흉측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를 고민한다는 사실이다. 전시장의 괴물들을 보며 내가 느낀 건 분명히 통상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바비>의 대사에도 있듯이 ‘날씬해야 하지만 너무 날씬해서도 안되고 건강해지고 싶다고 말해야 하지만 날씬해야 하는’ 여자들의 삶이 기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기괴함을 못 본 척, 없는 척할 수 없게 만드는 게 바로 괴물이기에 누군가는 한없이 불편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준다. 최근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법원 건물을 때려 부수는 ‘괴물들’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이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무수한 폭력에는 그토록 무심했던 이들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폭력 앞에서는 비로소 ‘테러’와 ‘폭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심각해지는 모습이라니. 아, 오해는 말자. 괴물이라고 해서 다 같은 괴물은 아니다.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죽인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지 않은가. 어떤 괴물은 스스로를 죽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고 또 어떤 괴물은 다른 이를 죽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