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7일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 꽃을 든 청년들이 가득했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셀피를 찍거나 가족에게 상장을 펼쳐 보이는 풍경도 쉽게 목격됐다. 2025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 개막식이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국영화아카데미발전기금이 공동주최하고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후원한 이번 영화제는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을 배출한 만큼 개막식에 많은 졸업생과 동문, 제작자와 감독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참석해 북적였다. 이번 영화제의 영화들은 서울과 부산 두곳에서 상영되었으며 서울은 3월7일부터 3월9일까지, 부산은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에서 15일 하루 상영이 진행된다. 서울 상영관에서 3월9일까지 선보인 상영작은 총 38편으로 졸업 대상자는 정규과정 41기, 액터스 2기, 장편과정 17기, 장편랩 1기, 장편애니 12·13·14기였다. ‘영화로운’(영화로 운을 뗀다)이란 활기찬 타이틀을 단 이번 영화제의 개막식은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축사로 포문을 열었다. “때로는 불꽃 길이, 때로는 가시밭길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연결되면 결국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뭉클한 응원의 메시지가 끝나자 관객석에서는 열띤 박수가 터져나왔다. 개막 선언은 한상준 위원장과 조근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 김유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본부장, 김예은 2025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공표했다. 미래의 신인 감독들을 응원하는 훈훈한 분위기는 최동훈, 이정향, 엄태화, 조성희, 김세인 감독 등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선배들의 축하 영상에서 무르익었다. “이제 여러분은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고생길로 접어들게 된 거”(이정향 감독)라는 냉철한 조언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최동훈 감독)는 따뜻한 격려를 듣는 졸업생들의 표정에선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떠올랐다.

졸업영화제의 성사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영화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조근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 대표로 꽃다발을 전한 이는 네편의 개막작 중 하나인 <첫여름>에 출연한 중견배우 허진이었다.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허진은 연출자인 허가영 감독을 비롯한 신인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며 뭉클한 순간을 선사했다. “우리 허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고, 자라나는 새싹들을 밟으면 안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참 좋아졌다. 혹시 내가 또 필요하면 불러달라. 꼭 함께하겠다.”

축하를 건네는 인사에 화답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던 정규과정 41기 연구생 허가영 감독에게 가까스로 <첫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녀의 결혼식이 아닌 남자 친구 학수(정인기)의 49재에 가고 싶은 주인공 영순(허진)은 감독이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영감받아 창조해낸 인물이었다. “살아생전 우리 할머니는 전형적인 분이 아니셨다. 손녀인 내게 쌀쌀맞으셨는데 어느 날 밤, 할머니에게 당신의 연애담을 듣고 나니 할머니가 누구의 무엇도 아닌 사랑스러운 한 여자로 보였다.” 할머니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감독으로서의 첫 시작을 알린 허가영 감독은 앞으로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사회가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들, 여전히 허기를 느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야기를 통해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싶다.”

인터뷰에 응한 장편과정 애니메이션전공 12기 연구생 김보솔 감독은 “5년하고 11개월” 끝에 졸업 작품 <광장>을 완성했다. 평양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뜻과 달리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스웨덴 서기관 이삭 보리의 이야기를 담은 <광장>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했다. “북한에서 3년 정도 근무한 스웨덴 1등 서기관이 우리나라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를 대학 시절 읽은 적 있다. 감시와 차단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유일한 방법이 아무도 없는 광장을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도는 거라고 말한 구절에서 자전거를 외로이 홀로 타는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더라.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북한에 관한 관심이 그때 딱 맞물리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첫 장편을 마친 김보솔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테마는 “한국의 대형 참사”다. “다음 작품이 애니메이션이 될지 실사가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동시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