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무지개를 향한 험난한 여정,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복기하며 2020년 이후 축적된 경향과 난관을 짚다
2025-03-14
글 : 김소미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은 <오즈의 마법사>의 수정주의 뮤지컬인 <위키드>가 열었다. 음악 <Over the Rainbow>는 영화가 허락하는 낭만의 보존을 꿈꾸는 할리우드의 본질을 전하는 동시에 신시아 이리보를 통해 멀홀랜드 드라이브 아래 모인 다양한 일원들의 결속을 부드럽게 표현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석권한 사건과 함께 변화의 신호탄을 맞이한 오스카다. 1929년 첫 시상식 이래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든 할리우드 중심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게 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전통을 딛고 변화를 추구하는 기조엔 변함이 없다. 마땅히 반갑지만 여전히 느리고 때로는 의심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오스카의 근과거와 현재를 짚어보았다.

오스카엔 너무도 어려운 그것, 다양성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한 숀 베이커 감독. “배급업자 여러분.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주세요. 부모 여러분. 미래의 시네필이 될 아이들을 극장에 데리고 가주세요!”

지난 5년간 오스카가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온 화두는 단연 다양성이었다. 2015년과 2016년 시상식의 주요 연기상 후보에 백인 배우들만 독점적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백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OscarsSoWhite’(오스카 소 화이트) 해시태그 운동이 오스카에 긴급한 숙제로 부과되었다. 2020년 제92회 시상식부터는 ‘외국어영화’라는 표현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에 따라 외국어영화상의 명칭을 국제영화상으로 변경했다. 연장선상에서 주목받은 인물은 봉준호 감독이다. 앞선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스카가 “미국의 로컬 시상식”이라는 인식을 공유한 데 더해,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에서 “1인치의 장벽”에 자막을 빗대어 비영어영화에 대한 포용력을 독려했다. 발맞춰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AMPAS)는 2020년 9월부터 작품상 후보 자격 요건에 다양성 조항을 도입해 제작 과정에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의 재현과 참여에 대한 제도적 변화를 추진해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2021년에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아시아계 여성감독으로 최초의 쾌거를- 역대 여성감독 중 겨우 두 번째 수상자라는 충격과 함께- 이뤘고, 같은 해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최초의 오스카 연기상 수상자라는 금자탑도 세웠다.

올해 오스카에선 영화 <아임 스틸 히어>가 브라질 최초로 국제영화상을, 가족이 거쳐온 이민의 역사를 수상 소감 서두에서 밝힌 <에밀리아 페레즈>의 조이 살다나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위키드>의 의상감독 폴 타즈웰은 흑인 최초로 의상상을 수상했다.

지금, 아카데미 회원은 누구이고 어떻게 움직이나

<위키드>의 두 주역. 신시아 이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왼쪽부터)가 열창으로 2025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을 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7년 설립된 AMPAS에 속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즉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의 의지를 보여주는 첫 단추는 회원 구성에 있다(2025년 현재 약 1만910명. 투표권을 가진 회원 수 9934명. 감독, 배우, 기술 스태프 등 17개 전문 영역). 2010년대 초까지 전체 회원의 약 94%가 백인, 77%가 남성이며 평균 연령 50~60대를 기록한 AMPAS는 지속적으로 자국 내 비판을 마주해왔다. 본격적인 해시태그 운동을 마주한 2016년부터는 할리우드의 가장 배타적 집단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A2020’ 이니셔티브를 발표, 2020년까지 여성과 소수인종 회원 수를 두배로 늘리는 방안을 강구했다. 과거 몇 십년 동안 매년 평균 100명 안팎의 신규 회원을 초청한 것과 달리 최근 10년 사이 회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역대 최다 초청 수를 기록한 해는 2018년, 928명으로 전체 연령을 낮추고 유색인종, 여성 회원 증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기조 속에서 지난해엔 약 487명의 신입 회원을 초청했는데, 여성 회원 비율이 44%, 소수인종(비백인) 비율이 41%를 차지했다. 2024년 신입 회원으로 초청된 한국(계) 인사로는 배우 강동원·유태오, 조영욱 음악감독, 셀린 송 감독 등이 있다. 정확한 데이터가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이로써 전체 아카데미 회원 중 미국 외 회원 비율은 약 20%로 90개 이상 국가 출신으로 구성됐다.

한편 투표권을 가진 회원들에게 점점 더 주효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영화 바깥에서 형성된다. 실질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온라인 여론이 회원들의 투표 심리에 미치는 압박이다. 여기에는 산업 내 세대 격차도 스며 있다. 젊은 회원들과 기성 회원간의 사회적, 정치적 현안 인식 및 소셜미디어상 반응에 대한 민감도 차이가 나뉘고 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할리우드 리포터> <버라이어티> 등). 할리우드 역사상 최장기로 기록된 배우·작가조합 파업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2023년 파업을 경험한 배우와 작가들이 AI 문제에 강한 반발을 하고 있고, 올해의 사례로 보자면 이 점이 <브루탈리스트>의 독주를 막은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브루탈리스트>의 건축물 재현, 배우의 헝가리어 억양 수정 등에 쓰인 AI 기술 논란은 파업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AI 문제가 후보 지명된 실제 작품을 통해 수면 위로 부상했다는 점, 가이드라인의 실질적인 부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현지에서는 미국 배우·작가조합과 스튜디오간에 합의한 AI 사용 제한 조항의 실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성전환한 멕시코 여성 갱스터 캐릭터를 다루는 <에밀리아 페레즈>는 작중 소수자 재현의 피상성과 주연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SNS상에 남긴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보이콧까지 거론됐다. 1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올해 최다 지명작이자 역대 비영어권 영화 중 가장 많은 부문에 이름을 올린 기록을 세웠지만 조이 살다나의 여우조연상 수상과 주제가상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재현의 다양성 측면에서 회원들의 지지를 얻은 동시에, 작품을 둘러싼 윤리적 논란을 겪으며 결과적으로 표심이 위축된 사례이기에 현재 오스카가 마주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옮기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제 오스카는 회원 수가 1만명을 훌쩍 넘은, 더이상 집단의 성향을 단일화하기 어려운 주체다. 이로써 향후 몇년의 시상 결과는 최신의 오스카가 표방해온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 세대 개혁의 실질적인 효과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다.

시청률, 플랫폼, 예술성이라는 모순적 과제들

<서브스턴스>의 마거릿 퀄리가 <007> 시리즈의 O.S.T에 맞춰 공연을 선보였다. 아마존의 판권 인수 소식을 마주한 할리우드가 <007>의 유산을 향해 띄우는 애정과 헌사의 퍼포먼스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관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시청자 수가 약 1040만명(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 기준)으로 전년 대비 56%나 감소한 것이었다. 다행히 하락세가 점진적으로 완화되어 2024년 제96회 시상식에서 약 1950만명까지 소폭 반등했으나, 안타깝게도 올해는 전년 대비 7% 감소한 수치인 1810만명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말에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4천만명 이상의 시청자 수를 보유했던 오스카의 과제는 영화 매체가 마주한 위기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트리밍서비스의 확산으로 TV시청이 감소한 상황에서 장시간의 프로그램의 위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영화 팬들의 호의와는 별개로 긴 방송 시간을 감안한다면 지루한 구성도 시상식의 숙명이다. 2022년 제94회 시상식에서 방송 시간 단축을 위해 일부 기술부문 시상을 사전 녹화해 영화인과 관객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방송 시간이 줄어들면서 표면적으로 점점 부각되는 상황은 쫓기듯 소감을 말해야 하는 수상자들의 난감함이다. 올해 역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다수 벌어졌다. 기술부문에서는 복수의 수상자가 나온 경우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퇴장하는 이들이 생기는가 하면, <브루탈리스트>로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수상한 영국 음악가 대니얼 블럼버그는 소감을 마치도록 종용하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곧바로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영국의 작은 실험음악 공연장인 카페 오토(Cafe Oto)의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는 소소한 명장면을 연출했다.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음악을 꺼달라고 강하게 요구한 뒤 5분37초 동안 수상 소감을 이어가 오스카 역사상 최장 수상 소감의 기록을 경신했으나, 가자 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역사 속 유대인 피해자의 정체성만을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써 모두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앞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어디에서 볼 것인가도 뜨거운 이슈다. 오스카는 올해 처음으로 훌루에서 동시 생중계되었으며 미국 주요 시상식 중 가장 마지막으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도입한 셈이 되었는데, 일부 시청자들이 송출이 끊기는 상황을 맞는 등 여러 기술적 문제로 첫 발걸음이 순탄치 않았다. 1976년부터 에서 독점 방송되어 지금까지 AMPAS는 와 반세기에 걸친 동행을 이어왔다. 그래미 어워즈가 라이브 콘서트 형식으로 과감한 변신을 단행하는 등 방송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과 달리 전통의 오스카는 디지털 시대의 파고 앞에서 어디까지 개혁을 단행할 것인가가 화두로 떠올랐다. 인기 부문에 집중하고 일부 기술부문 시상을 생방송에서 제외하려는 의 무례한 시도가 일으킨 지난 반발을 고려할 때 더욱 쉽지 않은 과제다. 2028년 디즈니와의 중계권 계약 만료를 앞두고(는 디즈니 엔터테인먼트의 방송 부문 핵심 계열사다) 오스카는 사실상 새로운 방송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더 높은 가격 협상을 위해 넷플릭스와도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LA 지역 산불 화제로 인해 후보작 발표가 두 차례나 연기되었고 본 시상식에서는 산불 진화에 힘쓴 소방관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무대 위에 이들을 초청해 예우의 시간을 가졌다.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일류의 쇼,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제나 전세계의 첨예한 정치적 사안과 마주했지만 그 일원들을 직접 무대에 세운 이벤트는 드물었다. 올해의 광경을 통해 사뭇 분명해진 점은 따로 있다. 오스카는 어디에 있는가. 다양성과 국제화의 목소리에 부응하는 집단인 동시에 어디까지나 철저히 할리우드에 근거한 쇼 비즈니스가 그들의 세계다. 불타는 선셋대로 위에서 007을 기리는 시상식이 할리우드의 전통 바깥으로 얼마나 새로운 명분과 영향력을 지닐 수 있을까. 오스카는 지금 기로 위에 서 있다.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인 <오펜하이머>가 9억7600만달러를 벌어들인 블록버스터였던 데 반해 2025년 시상식의 주인공은 <아노라>였다. 박스오피스 수치로 비교하자면 고작 4천만달러를 벌어들인 <아노라>가 선전한 올해는 산업 규모 측면에서는 독립영화의 해였다(“롱 리브 인디펜던트 필름!”(독립영화여 영원하라!) 숀 베이커 감독을 중심으로 올해 오스카는 독립영화, 그리고 극장을 향한 예찬을 이어갔다). 2021년 <노매드랜드>, 2022년 <코다>, 그리고 2023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상대적으로’ 소규모 예산의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경향을 이제 <아노라>가 이어받았다. 상업성과 예술성의 줄다리기 속에서 작지만 강한 작품에 지지를 보내는 선택이 대두된 가운데 시청률 고전을 겪는 오스카의 운명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 이는 영화제와 시상식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 지표다. 오스카가 화려한 과거의 영광으로의 회귀를 꿈꿀 것이 아니라 마땅한 영화에 적절한 찬사와 지지를 부과하는 시상식의 본질을 고민한다면, 전보다 조용하되 오히려 강한 시상식이 될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 있다.

논란들

배우 애덤 샌들러는 깜짝 이벤트를 펼쳤다. 후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등장해 사회자 코난 오브라이언으로부터 “너무 편하게 입고 온 게 아니냐”는 핀잔을 들은 샌들러는 “시상식이 끝나면 다같이 농구나 하자”며 복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정상회담 중 트럼프 미 대통령 앞에서 복장 지적을 받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반짝이는 트로피의 영광 뒤에는 언제나 논란이 잠복해 있다. ‘<바비> 대 <오펜하이머>’라는 문화적 현상을 일으킨 <바비>는 제96회 시상식에서 그레타 거윅 감독이나 배우 겸 제작자였던 마고 로비 대신 켄 역의 라이언 고슬링이 축하 무대로 조명받는 풍경을 받아들여야 했다. 올해는 <서브스턴스>가 비슷한 논쟁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할리우드의 위선과 허영을 정면으로 풍자한 <서브스턴스>가 분장상 외에는 주요 트로피를 품에 안지 못한 상황에서 007 본드걸로 변신한 마거릿 퀄리의 쇼가 중심에 배치되자 영화의 연장선상이라는 씁쓸한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스눕’ 논란- 유력 후보의 의도적 배제- 은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들의 여전한 보수성, 그리고 다양성 부족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시상자, 수상자들이 개별적으로 일으킨 사건과 논란도 어찌 보면 오스카의 한 전통이라 할 만하다. 2022년엔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 일명 ‘슬랩게이트’가 오스카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는 각각 남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에마 스톤이 시상자였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아시아계 배우들과 보인 상호작용이 마이크로어그레션(일상적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인종차별적 언행)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올해 시상식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과거에 남긴 문제적 발언들과 관련해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의 뼈 있는 농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 밖의 주목할 만한 수상 결과

▲ 2022년 아리아나 더보즈(아프로라틴계)가 1962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프로라틴계 배우 리타 모레노에 이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여우조연상 수상.

▲ 2022년 <코다>가 작품상 수상. 청각장애인 배우들이 주연한 영화로는 최초.

▲ 2023년 양자경(말레이시아계 중국인)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 수상, 아시아계 최초.

▲ 2023년 조너선 케 콴(베트남계 미국인)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남우조연상 수상, 1985년 행 S. 응고르 이후 아시아계 배우는 38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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