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신부의 눈으로 보는 <콘클라베>
2025-03-14
글 : 구본석
구본석 사도요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서울주보에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제10회 가톨릭영화제에 단편 <사과나무를 심어라>를 출품했다

콘클라베(교황을 뽑는 전세계 추기경들의 모임)를 통해 선출된 신임 교황은 눈물의 방으로 명명된 제의(祭衣)실로 이동해 교황을 상징하는 복장인 흰색 수단을 갖추어 입는다. <콘클라베>에서 콘클라베를 앞두고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과 벨리니 추기경(스탠리 투치)이 새로운 교황이 입게 될 수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바로 눈물의 방이다. 철제 옷걸이에 크기별로 걸려 있는 교황의 흰 수단을 두고 로렌스는 벨리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한 23세는 덩치가 너무 커서 제일 큰 수단도 안 맞았어요. 결국 등쪽 솔기를 뜯어야 했지.” 이 대사가 <콘클라베>가 품은 주제 의식을 관통한다. 우선 대사를 통해 언급되는 교황 요한 23세에게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제261대 교황인 요한 23세는 재위 시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최를 비롯해 20세기 후반의 가톨릭교회가 개방적, 탈권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황 중 한명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의 나이는 77살. 추기경단은 전임 교황 비오 12세가 20년간 강력한 통치를 해왔기 때문에 후임자는 그와 반대되는 인물이길 원했다. 이 콘클라베를 그린 영화 <요한 23세>(2002)에선 이탈리아 추기경들과 비이탈리아권 추기경들 사이에서 벌어진 알력 다툼과 그 속에서 추기경단이 일부러 나이가 많고 영향력이 적은 교황을 선출한 것으로 그린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로한 교황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단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방향이 설정될 때까지 잠시 시간을 버는 과도기적 인물로 바라봤다. 이 맥락에서 극 중 로렌스 추기경이 교황의 흰 수단에 얽힌 요한 23세 교황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더라도 마주하게 되는 예외를 대변한다. 누가 선출되더라도 새 교황에게 딱 맞는 수단이 제공될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흰 수단이 미리 준비되지만, 교황 요한 23세는 그 모든 준비와 대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수단의 사이즈뿐만이 아니다. 요한 23세는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을 향한 세간의 일방적인 평가를 벗어나는 행보를 보였다. 요한 23세에 대한 로렌스의 대사는 앞으로 펼쳐질 콘클라베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에 대한 예고와 다름없다. (참고로 영화의 로렌스 추기경과 원작 소설의 로멜리 추기경 모두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을 대비해서 미리 요한 24세라는 교황명을 생각해두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교황 요한 23세의 경우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두고 섭리라고 부른다. 물론 단박에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을 두고 쉽게 설명되는 가치처럼 보이기 위해 섭리라는 표현을 남발하거나, 예정론적인 관점에서 정해진 운명을 운운하듯 섭리를 언급하는 잘못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표현을 빌려 신의 뜻은 인간의 의지로 재단하거나 이성으로 예측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복음 3장 8절)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람을 오묘한 것으로 생각해 그 신비로운 성격과 신의 심오한 성격을 비교하곤 했다. 히브리어로는 루아흐(ורּח(, 그리스어로는 프네우마(πνεύμα)라는 낱말이 바람과 영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교가 더욱 쉬웠다. 결국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바람은 섭리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극 중 추기경단의 단장인 로렌스를 중심으로 콘클라베는 철두철미하게 준비된다. 외부의 도청을 차단하기 위해 첨단 장비가 설치되고 교황 투표권을 지닌 추기경들의 명부가 세밀하게 관리된다. 그들이 콘클라베 동안 머물 숙소와 끼니마다 먹게 될 음식도 철저히 준비된다. 이렇듯 엄격하게 준비되는 콘클라베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만한 틈, 곧 불고 싶은 데로 불어야 할 바람이 통할 만한 공간이 전혀 없어 보인다. 특히 같은 맥락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기 위해 숙소의 창문을 막아둔 것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추기경들은 그저 새 교황이 어떤 국가 출신이어야 하는지, 어떤 신념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 등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다. 매 투표엔 주요 후보자들의 득표수가 엎치락뒤치락하듯 달라진다. 이때 추기경들은 ‘주님의 뜻’을 운운하면서도 각자의 의지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인다.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일들이 잔뜩 펼쳐진다. 그러다 투표장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진다. 이에 관해 추기경들의 의견이 분분해지고 상황은 급박해지지만 오히려 콘클라베의 분위기는 차분해진다. 이후 영화는 콘클라베의 마지막 투표로 귀결되는 투표 장면을 보여준다. 이때 로렌스를 비롯한 추기경들은 한 줄기 햇살을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는다. 그렇게 영화는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이 콘클라베의 최종 결과를 이끌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로렌스 추기경은 새로이 선출된 교황과 눈물의 방에서 마주한다. 이 장면에서 로렌스는 신임 교황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섭리를 뼈저리게 느낀다. 로렌스 추기경에게 새 교황 선출 과정이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는 섭리로 받아들여졌다면, 그가 신임 교황과 마주한 시간은 인간의 의지를 거스르는 섭리처럼 다가올 것이다.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처럼 조금은 뜬금없이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에필로그를 곱씹어본다. 주인공 라즐로(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자신의 조카 조피아(아리안 라베드)와 함께 제1회 건축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조피아는 거동이 불편한 라즐로를 대신해서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라는 메시지가 담긴 소감을 전한다. <콘클라베>가 그리는 선거에서도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다. 추기경들이 보인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벌인 온갖 계획이 무색해질 만큼 영화가 표현한 콘클라베의 최종 목적지엔 인간의 의지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우리는 욕망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녹록지 않을 때마다 과정을 들먹이며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이때 내가 욕망하는 것들이 아닌 욕망 그 자체에 집중해보면, 사실은 과정 안에 담긴 온갖 의지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영화와 원작 소설은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까지를 전임 교황으로 그린다. 이는 곧 영화 속에서 선종한 교황이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속 교황이 개혁 교황이라 불리는 점도 그간 파격 행보를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모저모를 떠오르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이 우려되고 있는 지금, 벌써 세상은 다음 교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러모로 의지를 거스른, 섭리를 위한 자리가 절실해 보이는 요즘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