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수상작이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 주제가상을 가져간 <에밀리아 페레즈>는 지난 1년 내내 어떤 의미에서든 ‘화제작’이었다. 영화를 향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에밀리아 페레즈>가 3월1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품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세 갈래의 길을 소개한다.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고, 안무의 목표 또한 분명하게

뮤지컬영화인 <에밀리아 페레즈>를 춤, 노래와 떼놓고 상상하긴 어렵다. 하지만 안무가 다미앵 잘레가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을 땐 “춤 장면에 대한 언급도 없고 음악적 요소도 분명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때문에 다미앵 잘레는 안무가와의 협업이 처음이었던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누며 조율했다. 다미앵 잘레는 춤이 인물들의 대사를 단순히 설명적으로 옮기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고, 캐릭터와 배우들의 특성을 개별적으로 춤에 반영시켰다. 가령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기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작품의 기둥과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에”(다미앵 잘레) 안무를 너무 과감하게 가져가지 않았고, 변호사 리타 역의 조이 살다나는 댄서로서 좋은 자질을 갖고 있었기에 다미앵 잘레의 제안으로 솔로로서 춤과 노래를 펼치는 <El Mal> 퍼포먼스가 완성됐다. 안무가와 배우들은 촬영감독 폴 기욤, 스테디캠 감독 사차 나세리와 수많은 리허설을 거치며 장면들을 세심하게 조율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인 리타의 탄원 장면은 노래 <El Alegato>에 맞춰 진행되는데 제작진은 이 3분가량의 장면에 3주를 투자했다. 뒤이어 갱단 보스인 델 몬테가 성전환수술을 받는 병원 신은 다미앵 잘레가 멕시코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영감을 얻었고, 공장에서 물건이 만들어지듯 제한된 공간에서 테이블 등의 사물을 활용한 조직적인 안무를 빠른 템포로 완성시켰다. 화려한 자선행사 장면은 몇달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다미앵 잘레는 멕시코의 안무가 가브리엘라 세세나를 섭외해 주제곡 <El Mal>의 가사 한 단어, 한 단어에 집중하며 “리타의 몸짓이 가사에 반향을 일으키거나 모순되도록 만들”(다미앵 잘레)었다. 댄서 외의 배우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전달받아 즉각적으로 수행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덕에 해당 신의 긴장감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었다. /조현나
서사의 흐름과 노래, 가사가 잘 어우러지도록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노래와 스토리라인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 일찍부터 음악감독 클레망 뒤콜, 카미유를 만나 작업을 시작했다. 클레망 뒤콜과 카미유는 <에밀리아 페레즈>의 시나리오 수정 단계에서부터 회의에 참여해 대화를 나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클레망 뒤콜, 카미유는 뮤지컬이 종종 인위적으로 느껴진다는 데 동의해 영화를 노래로만 채워선 안된다는 공동의 목표를 세웠고 “노래가 개별 서사의 목적에 잘 부합하며 특정 장면에서의 사건이 노래로 잘 번역될 수 있도록”(클레망 뒤콜) 작업했다. 한편 카미유는 영화를 막으로 나누는 것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 제작진과 긴밀히 대화를 나눴다. 때문에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인 <El Alegato> 장면에서 “리타가 상상의 청중들에게 말을 걸 때 해당 장면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오프닝 시퀀스와 매우 유사”(카미유)하게 연출됐다. 클레망 뒤콜과 카미유는 리허설을 위해 빠르게 노래를 녹음해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촬영장에도 실시간으로 함께했다. 현장의 사운드를 라이브로 녹음하고 싶다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에밀리아 페레즈>에는 현장의 라이브 사운드와 후시녹음(ADR)을 거친 음원이 함께 삽입됐다. 설리나 고메즈는 오랜 경력을 보유한 가수답게 노련하게 녹음에 임했고, 조이 살다나는 상대적으로 노래를 낯설어했음에도 타고난 능력으로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다.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로서 클레망 뒤콜과 카미유는 멕시코 문화를 모방하진 않되 언어의 표현, 억양, 연주자들의 목소리 등에 이를 반영하고자 했다. /조현나
작품을 둘러싼 재현의 문제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무대는 멕시코다. 하지만 영화는 공개 이후 멕시코 관객들로부터 멕시코를 그리는 방식이 피상적이며 미디어가 답습해온 멕시코의 부정적 재현을 숙고 없이 재생산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먼저 배우들의 멕시코 억양과 대사 등 영화의 언어 전달에 비난이 가해졌다. 멕시코 배우 아드리아나 파스와 멕시코계 미국인인 설리나 고메즈를 제외하면 조이 살다나는 도미니카공화국,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스페인, 에드가르 라미레스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배우다. 이들이 대사로 발화하는 멕시코 스페인어의 억양이 제각각인 영화가 멕시코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평이 뒤따랐다. 영화의 여러 설정이 멕시코를 일차원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 또한 제기됐다. 넘버 <Papa>에 등장하는 “당신에게서 메즈칼과 과카몰리 향이 나요”와 같은 가사가 멕시코에 대한 선진국의 편협한 시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수차례 협업한 멕시코 출신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에밀리아 페레즈>가 자국을 촬영한 방식에 관해 “미술감독, 의상감독 등 제작부에 멕시코인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진정성이 없이 묘사돼 불쾌하다”라며 규탄했다. 자크 오디아르는 영화 촬영을 위한 멕시코 취재 과정에 관한 질문에 “별도의 취재는 없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해 이미 불거진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편 영화가 트랜스우먼을 서사화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미국 내 성소수자 인권단체(GLAAD)를 비롯한 수많은 비평가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가령 변호사 리타와 의사(마크 이바니르)가 성전환수술에 관해 토론하는 넘버 <Lady>는 “두 시스젠더 캐릭터가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부재한 자리에서 성전환의 윤리를 논하는 자가당착”이라는 평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리타가 의사에게 “몸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면 영혼이 바뀐다”라는 가사는 ‘개인이 자신의 신체에 내리는 선택이 영혼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탄받을 수 있다’는 트랜스포비아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마약 카르텔 범죄의 수장이 성전환을 통해 과거를 속죄한다는 설정 역시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편견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새길 만하다. LGBTQ+ 전문 기자인 아멜리아 핸스포드는 “성전환은 도덕적 선택이 아니다. 심지어 에밀리아는 여전히 카르텔과의 인맥을 활용하고, 가족을 심리적으로 조종해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들며, 재결합이 뜻대로 되지 않자 후반부에 육체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모든 행동은 결국 ‘또 하나의 사이코패스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라고 일갈했다. /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