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씨네21>이 틀렸다 - <무언의 목격자>
2001-04-27
후안무치한 서핑, 매혹의 절정

1996년

4월5일 개봉, 앤서니 월러 감독

한편의 영화를 볼 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때로는 오락이나 쾌락이고, 때로는 성찰이나 자각이고, 때로는 그저 위로다. <무언의 목격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스펜스’다. 그런 점에서 <무언의 목격자>는 후안무치하고, 또한 그 이유로 매혹적이다. <무언의

목격자>는 장르의 심연에 파묻힌 것을 끌어내기보다는, 장르의 표면 위에서 위험한 서핑을 즐긴다. 파도가 덮치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찰나의 순간 자신의 근육을 긴장시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다. 그 절묘한 타이밍과 숙련된 테크닉은 충분히 만점을 받을 만하다.

앤서니 월러는 거장이 아니고, 선댄스 키드처럼 재기넘치지도 않는다. <파리의 늑대인간>은 공포영화의 단골 캐릭터인 늑대인간을 즐거운

상상력에 기반하여 매끈한 액션을 선보였지만, <더 길티>는 ‘우연적인 운명’을 요령부득으로 다루고 있다. 앤서니 월러의 영화는 별다른

심층이 없다. <무언의 목격자>에서 ‘영화보기의 관음성, 미국 30년대 못지않은 러시아의 범죄조직 실태를 다루겠다’는 월러의 의욕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솔직히 생각을 말하자면, ‘의욕’은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무언의 목격자>에는 그런 ‘분석’과

‘통찰’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 영화는 단지 서스펜스를 목적으로 하는, 아주 ‘심플’한 스릴러를 의도했을 뿐이다.

여인, 그것도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장애인을 위험에 처한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분명 의도적이다. 눈먼 여인을 괴롭힌 스릴러물은

많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살인자를 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관객이 여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살인자 역시 그녀를 지켜보지만, 그녀는

누구의 정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눈먼 여인을 괴롭히는 것은 관음증적인 ‘서스펜스’를 안겨준다. 그렇다면 벙어리는 어떨까. 이 여인은 모든

것을 본다. 다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타인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에도 그녀는 모든 것에서 고립된 ‘단독자’로만

남아 있다. 그녀에게는 커뮤니케이션의 기회 자체가 박탈된 것이다. 모든 출구가 막힌 건물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 절망감과 절박함이 <무언의 목격자>의 서스펜스를 극도로 끌어올린다.

<무언의 목격자>가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로 대중을 사로잡은 이유는 그것이다. 히치콕의 스타일을 흉내냈기 때문이 아니라, 장르의

쾌감을 극단적으로 몰고 나가는 패기 덕분이었다. <무언의 목격자>는 ‘순수한’ 혹은 단순한 장르영화의 모범답안으로 꼽힐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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