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에게 묻는다
유일 메이저의 독점을 우려하는 영화인 20인의 질문
1938년 미국에선 이른바 ‘파라마운트 소송’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제작, 매니지먼트, 배급, 상영 등 영화와 관련한 모든 공정을 메이저 영화사가 총괄 관리하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 계기였던 이 소송은 거의 모든 영화사 책에서 언급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당시 미국 법무성은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메이저 영화사들이 극장체인까지 소유하면서 영화를 묶어 팔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삼았다. 극장체인의 프로그램을 독점공급함에 따라 중소영화사의 작품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고, 따라서 시장의 자유경쟁원칙을 훼손했다는 것이다.10년을 끈 이 소송은 1948년 법원이 파라마운트사에 극장체인을 폐기하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됐다. 이후 10년간 메이저 영화사들은 극장체인을 매각했고, 독립영화의 제작편수는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1월29일 CJ엔터테인먼트는 플레너스 주식 28.3%를 인수하는 전략적 업무제휴 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시네마서비스와 연대한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편의적으로 ‘CJS연합’으로 칭하는 이 사건을 언급하기 앞서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파라마운트 소송을 들먹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CJS연합 역시 보기에 따라 명백한 독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40%를 넘으며, 한국영화만 따지면 60%를 넘는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시장점유율 50%를 넘을 경우 ‘독점’으로 규정하며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다. CJS연합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영화계 다수의 의견이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CJS연합이 지금 충무로에 정체모를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양대 메이저가 손잡음으로써 국내 영화시장의 자유경쟁 질서는 무너질 것인가? 강우석 감독의 입장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런 반발에 대해서다. 지난 8년간 한국 영화산업의 최고 실력자로 평가받은 그가 대체 어떤 생각으로 CJS연합에 동의했던 것일까? 상당수 제작, 투자자를 긴장시키는 CJS연합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어떤 변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뷰에 앞서 주요 제작, 투자 관계자들로부터 CJS연합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을 때, 그들의 입장은 크게 세 부류였다. 첫째는 소수지만 앞서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할 사안이라는 것, 둘째는 제작, 투자에서 강우석 감독의 비중이 전보다 커지는 만큼 다양한 영화를 제작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CJ나 시네마서비스 외에 다른 배급사가 메이저로 크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셋째는 경쟁에 따른 비용절감, 개런티 억제 등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그들의 의견을 토대로 작성한 질문을 갖고, 2월13일 경주에서 신작 <실미도> 콘티작업을 하다 올라온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CJS연합에 대한 질문과 <실미도>에 대한 질문, 2부분으로 나눠 진행됐다.
-누가 주도한 것인가. CJ쪽 이재현 회장이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쪽에선 자금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플레너스 이름으로 벌여놓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나. 프리머스도 있고, 아트서비스도 있고. 이걸 다 어떻게 영화로 벌어서 하나 싶었다. 영화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여기에다 로커스나 워버그핀처스 입장에선 LG카드니 조흥은행이니 다른 영역에서 6억달러씩 오가는 큰 딜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쪽을 정리하고 싶어했다. CJ 입장에선 한동안 투자, 배급한 영화들로 재미를 못보던 참이었고. 심지어 한국영화 접는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니까. 이런 상황이 맞물린 거라고 봐야 한다. 사실 <공동경비구역 JSA>로 CJ가 잘될 때만 해도 우리와 딜을 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재현 회장의 의지도 의지지만, 양쪽 모두 잘할 수 있는 일만 하면 좋을 텐데라고 느낀 것이 컸다. 영화제작에서 양쪽 모두 어느 정도 피곤함을 느끼던 차에 성사된 거다.
-플레너스 지분 인수에는 CJ와 SK 외에도 외국계 펀드 두곳이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들었다. 이중 CJ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다른 집단들이야 돈놓고 돈먹기 위한 머니게임을 하는 곳 아닌가. 하지만 CJ는 영화를 할 수밖에 없는 자본이다. 다른 기업과 비교해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해야 한다는 입장도 확고하고. 들어와서 재미 못 보면 돌아서는 펀드가 아니다. 꼭 자기가 이걸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전에도 우리 입장에서는 CJ가 경쟁자지만, 죽여야 한다, 밟아야 한다, 그런 건 아니었다. CJ가 한국영화 제작에서 손뗀다면 우리도 손해인 거다. 단지 지분만 사가는 곳과 접촉하는 걸 완강하게 반대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투자하겠다고 덤비는 돈 중에 이 판에서 돈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는 곳도 별로 없다. 지난해 100억원 벌었다면, 올해는 무조건 120억원 벌어와라 그럴 회사들이다. 근데 이게 말이 되나? 안된다. 100억원 벌고도, 그 다음엔 100억원 손해볼 수도 있는 게 영화다. 앞으로 2년 동안 시네마서비스가 적자를 봤다고 치자. 그래도 CJ는 ‘2005년에는 잘해보십시오’ 할 수 있는 회사다. 그건 지금까지 직접 해봐서 아는 거다. 다른 기업이라면 이해 못하는 게 또 있다. 연말에 다음해 라인업이 쫙 나오는데, 이건 10억원 벌겠고, 이건 20억원 벌겠고 미리 계산을 다 한다. 이중엔 마이너스로 잡아놓은 것도 있다. 지난해에도 <서프라이즈> <밀애> <취화선> 등이 그랬다. 그런데 자, 봐라. 이것도 사업인데, 찍기 전에 미리 손해볼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면서도 지른다. 이걸 다른 기업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단순히 돈 벌겠다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일하면 이해를 못하니 피곤하지 않겠나.
-CJ는 어차피 영화계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이다. CJ가 아니라 다른 곳의 돈이 들어온다면 영화계에 새로운 돈이 들어오는 거지만 CJ의 돈은 영화투자에 쓰일 것이었다. 전체 영화계로 보면 투자가 느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닌가.
=편수로 말해보자. CJ랑 같이 가면 난 오히려 영화편수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진 않을 거라고 본다. 우리만 하더라도 전에는 더 만들고 싶어도 배급 스케쥴 때문에 못했던 것이 많다. 배급에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1, 2주 간격으로 계속해서 영화를 풀 순 없지 않나. 나도 1년 라인업 짜고나면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미룰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된다. CJ에 추천을 할 수도 있다. 오히려 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봐야 한다. 괜히 영화인들 골 지를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