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장준환과 <지구를 지켜라!> 탄생기 [1]
2003-03-21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엉뚱한 감독 장준환, 괴이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 만들다

비밀인데요... 사실 난 돈키호테입니다.

곧 개봉예정인 <지구를 지켜라!>는 그 제목만큼이나 엉뚱한 영화다. 외계인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병구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리는 이 영화에는 황당한 상상력이 구석구석에서 출몰한다. 보는 이를 때론 당황하게, 때론 웃음짓게 할 이 영화는 1995년 이라는 단편영화로 주목받았던 장준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엿보이는 갖가지 희한한 발상은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골때리는’ 이야기를 생각했을까. 데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력과 후반작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회고하며 직접 쓴 ‘<지구를 지켜라!> 창작비화’를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비밀을 간직하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난 존 레넌이다.” 이 인상적인 독백으로 시작하는 장준환 감독의 단편영화 은 1995년 발표 당시 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그건 한 남자가 자신을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다든가 그가 오노 요코로 착각한 여성과 사랑을 나눈다는 등의 기발한 상상력이 신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독특한 발상을 풀어나간 방식 또한 뛰어났기 때문이다. 일견 코믹하게도 보이는 설정에서 출발해 뜻밖의 충격적인 파국으로 질주하는 이 영화는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 사회적 소외 등 묵직한 주제를 매끄럽고 설득력 있게 담아내 단편영화의 관습을 훌쩍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주목

장준환 감독이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를 이후 8년 만인 지금에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상하다. 은 영화아카데미 동기인 봉준호 감독이 촬영했다. 같은 해 졸업작품인 봉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은 장준환 감독이 조명을 맡았다. 봉 감독은 4년전에 데뷔해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받았고 지금은 <살인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장준환은 뭐 하고 있나”라는 말이 나돌만했다. 충무로의 데뷔 기회는 여전히 바늘구멍이지만, 범상치 않은 상상력, 날렵한 만듦새, 그리고 대중적 호소력 등을 고루 갖춘 단편을 만든 신인이라면 기회는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에 대해 장준환 감독은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자기 생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왔다는 얘기다. 운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복잡한 우회로를 밟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들보다 영화에 눈을 늦게 뜬 편이라 수련 과정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할 정도다.

사실,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94년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부터다. 물론 중학생 때 전주지역 극장의 허술한 보안 시스템을 뚫고 만난 <나인 하프 위크>에서 영상의 힘을 느꼈다거나, 고등학교 때 본 <쓰리 아미고>로부터 감동을 받았다는 등 영화에 관한 무지갯빛 추억이야 그 역시 읊을 수 있겠지만, 당시 그에게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었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무언가 심오해 보이는” 물리학과 입학에 실패한 뒤 재수 끝에 영문학을 대학 시절 전공으로 삼은 것도 영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선택이었다. 그가 영화와 비록 느슨하지만 의미있는 매듭을 만들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다. 갑갑함에 시달리던 그는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 영상에 관한 관심, 그리고 어릴 때부터 품고 있던 창작본능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1년 남짓한 동아리 활동이 그를 바꿔놓은 건 아니다. 당시 여건상 대학 내 동아리가 필름으로 왕성한 창작을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그곳에서 그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영화아카데미라는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면 큰돈 들이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장준환은 무작정 시험을 봤고, “운이 좋아서였는지, 적성이 맞아서였는지” 11기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영화에 대한 눈을 비로소 뜨기 시작한다. “그냥 모든 게 다 재밌더라. 카메라며 필름이며 렌즈며 난생처음 접해보는 장비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너무도 즐거웠다.” 그림 그리기를 유독 좋아했고, 초와 실패를 이용한 장난감 같은 자신만의 ‘창조물’들을 만들곤 했던 어린 날의 기분도 가물가물 떠올랐다. 그가 아카데미에서 얻은 것은 창작에 대한 갈증뿐이 아니었다. 스스로 그어놓은 금 안에서 자신을 제한시켰던 탓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집단에 대한 공포, 또는 불편함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 조용규 촬영감독 등 뜻이 맞는 동기들과 부대끼는 동안 그는 어느새 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졸업작품 은 1년(당시 영화아카데미의 정규코스는 1년이었다) 동안의 과정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이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장면이 바이러스처럼 그의 뇌리를 파고들면서 시작됐다. “자기가 뭔가 거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자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는 모습이 떠오르더라. 그게 굉장히 웃겼다.” 이 장면에서 출발해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끌어들이고 앞뒤를 연결하면서 이야기가 완성됐다. 이 영화는 국내뿐 아니라 클레르몽 페랑, 샌프란시스코, 밴쿠버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시체놀이, 굼벵이놀이 하다가‥

95년 졸업 뒤 그는 2년 동안 영상원에서 조교 생활을 한다. “처음엔 조금이나마 월급도 나오고 좋았는데, 점점 심심하고 답답해졌다.” 96년엔 어찌어찌 알게 된 류승완 감독의 단편 <변질해드>에서 촬영을 맡기도 했지만, 무료함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때 구상한 프로젝트가 ‘방구맨’이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냄새와 엄청난 파워를 가진 방귀를 뀌는 탓에 주위 사람, 심지어 부모로부터도 버림받지만, 스스로 능력을 갈고 닦아 슈퍼 파워를 발휘한다는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훗날 그의 데뷔작 후보 1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현실화하려면 너무나도 엄청난 규모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아쉽게도 그의 품안에 간직돼 있다.

조교 생활을 마친 97년에야 그는 충무로로 입성한다.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의 연출부로 이미 발탁돼 있던 봉준호 감독이 그를 부른 것이다. <모텔 선인장> 연출부 생활은 충무로에서의 첫 경험이었던 만큼 여러모로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영화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는데 큰 도움을 줬다. 제작자였던 차승재 당시 우노필름 대표,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아래서 퍼스트로 일했던 홍경표 촬영기사, 연출부로 함께 일했던 김종훈 감독 등은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각각 제작자, 촬영감독, 조감독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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