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구도와 수행을 위해 열려 있는 길,<동승>
2003-04-08
글 : 박은영
■ Story

엄마가 그리운 아홉살배기 동승 도념(김태진)은 가끔 절에 들르는 중년 부인(김예령)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도념과 같은 절에서 수행하는 청년스님 정심(김민교)은 호르몬을 주체 못하는 뜨거운 청춘. 큰스님(오영수)을 졸라 포경수술을 해보지만 ‘마음속의 불’은 좀체로 꺼지지 않는다. 형처럼 의지했던 정심이 떠나가고, 유일하게 다정했던 여자친구도 떠나가면서 도념은 홀로 남는다. 외로운 도념의 소원대로 중년 부인은 그의 엄마가 돼주겠다고 나서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큰스님은 이들의 인연을 막아선다.

■ Review

노을을 지고 앉은, 동승의 등은 작고 쓸쓸하다. 도념은 불도에 정진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또래들과 어울리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고 무엇보다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아이일 뿐이다. “엄마 언제 와요?” 산사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나무에 도념의 키보다 높은 금을 긋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지만, 이미 그 나무엔 그런 금이 네댓개는 족히 넘는다. ‘오지 않을 그날’에 대한 희망이 바랄 법도 하건만, 동승의 가슴속에서 ‘엄마’는 작아질 줄 모른다.

“불교적 장치가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묻고 싶었다. 스님들이 등장하는 일반 극영화라고 보면 된다. 보편적인 민족정서로 잠재하고 있는 불교의 느낌을 살려내려 했다.” 연출의 변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동승>은 <만다라>나 <화엄경>과는 출발점부터 다른 영화다. 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스님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긴 하지만, 불교에 대한 입체적이고 깊이있는 해석을 과제로 삼은 정통 불교영화는 아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아기스님의 자아찾기, 모성과 속세에 대한 갈망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동승>은 보편적인 성장영화에 가깝다.

도념이 찾아 헤매는 것은 물론, 엄마다. 도념은 모두가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것처럼 보이는) 속세의 삶을 부러워한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이다운 투정을, “사람으로 태어나 불법(佛法) 만나기 힘들다”거나, “바위가 네 마음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는 아리송한 말로 닦아세우는 큰스님의 뜻은, 어린 도념에겐 버겁기만 하다. “세상 삼라만상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위로가 되진 않는다. 그래서 도념은 그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기로 한다. 어떤 성과도 해결도 보장되지 않은 먼 여행을, 일단 떠나보기로 하는 것이다. 몽정과 함께 찾아든 ‘색정’의 번뇌를 떨치려, 길 떠나는 청년스님 정심의 결단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동승>에서 도념이 찾는 어머니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구하려는 그 무엇, 절대진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도념의 꿈에서 아이들을 부처에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이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설정은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길 떠나는 도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비추는 엔딩이 불교를 넘어서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구도와 수행을 향해 열려 있는 듯 비치기도 한다.

도념이 찾아 헤매는 것은 엄마다. 도념은 모두가 부모와 행복하게 살아가는(것처럼 보이는) 속세의 삶을 부러워한다.

<동승>에서 도념이 찾는 어머니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구하려는 그 무엇, 절대진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도념의 꿈에서 아이들을 부처에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이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설정은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유쾌한 성장영화와 진지한 구도영화의 접합, 그 이음새는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 또래들의 세상에서 이물적인 존재로 배척당하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아이의 천진함이 두드러지는 도념의 일상이 때론 경쾌하게 때론 구슬프게 이어지다가, 도념의 출생(부모의 업보)이 그의 속세의 삶을 허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롱테이크와 당혹스럽게 충돌할 때, 영화의 색깔과 리듬도 쿨렁거리며 흔들리고 만다.

눈물겨운 제작 스토리와 해외영화제에서의 승전보(상하이영화제 각본상과 시카고영화제 관객상)로 먼저 알려진 <동승>은 그리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불가적 풍경과 사상, <엄마 찾아 삼만리>식 감상주의 등등. 강요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리라던 의도가 신파의 매혹에 흔들린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감독의 순박한 시선과 7년간 이어진 제작진의 열정만큼은, 요즘 ‘판’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도념의 마지막 대사는, 쉽지 않은 길을 고집한, <동승>의 지난한 여정을 집약하고 있다. “그래, 어디로 갈 거니?” “비탈길이요. 비탈길로 가겠어요.”

:: <동승>의 배우들

스님 전문배우?

“첫 촬영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태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입니다.” <동승>의 시사회에 아역배우 김태진을 동행한 주경중 감독의 소개다. 촬영에만 4년이 소요됐다는 뜻. ‘또랑또랑’한 인상의 김태진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속깊은 동자승 도념 역할에 잘 어울렸다. <육남매>에 출연한 바 있는 김태진은 캐스팅이 끝나고 첫 촬영이 시작될 무렵 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 교체를 불사하게 한 인물. 촬영이 진행되는 4년 동안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아, 감독은 안도하고 부모는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혈기방장한 20대다운 정념에 사로잡혀 산사를 떠나는 청년스님 정심 역할엔 연극배우 출신 김민교가 출연하고 있다. 정심은 ‘포경수술’ 에피소드로, 많은 웃음을 선사하는 인물이자, 속세와 불도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에 휩싸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심의 번뇌를 표현하기 위해 김민교는 손가락을 불태우는 연기도 대역이나 모형을 동원하지 않고 직접 해결했다고 한다. 큰스님 역의 오영수는 <피고지고 피고지고> <국물 있사옵니다> 등의 연극에 출연하고, 각종 연극상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베테랑 배우다. 영화는 <퇴마록>에서 안성기를 옹호하는 신부로 출연한 바 있고. 현재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또 다른 ‘스님’을 연기하고 있다.

도념이 어머니 삼고 싶어하는 여보살 역의 김예령은 촬영 도중 결혼, 임신, 출산을 모두 겪었다. 그런 이유로, 어린 아들과 남편을 잃은 슬픔을 딛고, 동승을 입양해 새 삶을 꾸리고자 하는 여인의 내면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었다고. 도념이 큰스님보다 더 많이 의지하는 아저씨로는 전무송이 출연하고 있다.

<동승>의 캐스팅은 펀딩과 촬영이 지체되면서, 여러 차례 뒤바뀐 결과다. 첫 번째 버젼은 정심 역에 홍경인, 미망인 역에 이응경, 큰스님 역에 권성덕, 아저씨 역에 최종원이었다. 펀딩이 미뤄지면서, 미망인 역은 이응경에서 이보희로, 다시 김예령으로 바뀌었고, 다른 역할은 지금의 배우들로 교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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