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묘한 조화,긴 여운,<공포의 파이터>
2003-09-02
글 : 박혜명
■ Story

하충(오언조)은 자신의 생일날 아침, 하동(고천락)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하동은 집 안팎에서 말썽만 일으키다가 열여덟살 때 가출한, 하충의 이란성 쌍둥이 형. 하충은 경찰한테 하동의 집열쇠를 넘겨받고 형이 살던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형의 여자친구였던 아육(곡조림)과 친구 아문(담요문)을 만난다. 아문은 하동이 죽게 된 경위를 말하면서 그가 불법 복서였고 자신은 매니저였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 Review

<공포의 파이터>는 한글 제목이 좀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복싱이라는 소재를 택했지만 이 영화는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액션과 긴장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큰 축으로 교차되는 두 가지 이야기는 불법 복싱에 뛰어들었다가 죽음에 이르는 한 청년의 무모한 도전,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형의 자취를 뒤늦게 좇는 동생의 정신적 홀로서기다. 이 사이사이에 하동과 아문의 우정, 하동과 아육의 사랑이 피었다 지고 하충과 아문의 우정도 새롭게 싹튼다.

간단하지 않은 스토리이지만 진행은 매끄러운 편이다. 불법 복서가 된 하동과 그를 둘러싼 투기꾼들의 냉정한 이해관계는 무리한 비약없이 최후 결투로 몰아지고, 형의 과거를 찾아나선 동생이 그의 지인들과 가까워지는 이야기도 무리없이 흐른다. 아육은 하동이 죽은 정신적 충격으로 시력에 손상을 입지만 그걸 핑계로 하충에게 값싼 동정이나 애정을 구하지 않는다. 친구를 잃은 뒤로 줄곧 외로웠다고 토로하는 아문은 비겁한 일면에도 불구하고 주목하게 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 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 담요문은 이 영화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교적 흐트러지지 않은 이 드라마에 약점이 있다면, 하동과 하충에 대한 배경설명이 소홀했다는 점이다. 사랑과 목숨을 동시에 위태롭게 만드는 복싱 일에 하동이 왜 그토록 매달렸는지, 형에 대한 열등감이 동생의 삶을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가 흐릿하다. 극의 핵심이 되는 두번의 결투신이 극적인 힘을 크게 발휘하지 못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감독 량백견이 오우삼 감독의 조감독을 지냈던 이력을 생각하면 액션장면도 썩 훌륭하진 않다.

몇 가지 단점은 있어도 <공포의 파이터>는 매력있는 영화다.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은 결국 홍콩영화 특유의 비장미지만, 중간 과정에 쌓인 에피소드들은 의외로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일상들에 가깝다. 그 묘한 조화 때문인지 보고 나면 이상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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