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1]
2004-01-1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런던 초연 100년만에 스크린에서 완전히 살아난 <피터팬>

Return to 'REAL' Never Land!

<피터팬>은 그 주인공처럼 늙지 않는 판타지다. 1904년 희곡으로 태어난 <피터팬>은 1911년 소설로 무성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1953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2002년의 리메이크 <리턴 투 네버랜드>로 영원한 유년을 반복했다. 그리고 J. M. 배리의 <피터팬>이 런던에서 초연된 지 100년이 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내아이의 육체를 가진 사상 최초의 피터팬이 스크린을 통해 날아들었다. P. J. 호건 감독의 <피터팬>은 티없이 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풍부하기 때문에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로 완성됐다. ‘완역판’ 영화 <피터팬>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탄생했는가? <피터팬>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이후 판타지 트렌드의 어디쯤을 날고 있는가? 판타지는 왜 어린 영웅의 모험을 먹고 꽃을 피우는가? 네버랜드에서 쫓겨난 지 오래인 어른들이 악어 뱃속의 시계소리에 위협받으며 자문자답했다.

P.J.호건이 만들어낸 ‘완역판’ 실사영화 <피터팬>

이안 매켈런은 세살 때 본 연극 <피터팬>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1998년 후크 선장의 갈고리를 달고 런던 웨스트 엔드 무대에 선 그는 “옛날 연극에 나온 악어는 가짜티가 너무 났고, 배우들이 달고 있는 와이어도 다 보였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는 어린아이들의 작은 가슴 속에서 네버랜드라는 영원의 섬 하나를 발견했지만, 그 섬은 현실의 무대 위에서 다시 조그맣게 위축되어왔다. 그러나 진짜가 나타났다. <피터팬> 초연 100주년인 2004년을 닷새 앞두고 미국에서 개봉한 P. J. 호건의 영화 <피터팬>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별을 향해 아침이 올 때까지 날아가면 나타나는” 네버랜드를 마법의 팔레트라도 가진 것처럼 채색해서 가져왔다. 그곳에선 후크 선장의 해적선 졸리 로저 호가 얼어붙은 바다 위에 돛을 접고 누워 있고, 비늘로 뒤덮인 인어들이 어둠에 파묻힌 귀양살이 바위로 헤엄쳐온다. 한때 동그란 전구로 대신했던 팅커벨은 금빛 피부를 가진 소녀가 되어 요정의 가루를 뿌리며 날아다닌다. “나뭇잎과 나무진으로 몸을 감싼” 동화 속 소년 피터팬. 그는 어떻게 100년 동안 고독에 파묻히지 않고 다시금 살아남았을까. 사람을 죽이고도 곧 잊어버리는 이 무책임한 소년은, 한순간도 잊혀진 적이 없었다.

디즈니를 잊고, 원작을 기억해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피터팬은 깃털 달린 녹색 모자를 쓰고 녹색 셔츠와 타이츠를 입은 갈색머리 소년이다. 호건은 1953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낸 이 명랑하고 순진무구한 피터팬을 ‘디즈니化’라고 다소 반감섞인 단어로 표현했다. 그런 길은 피해가겠다고. 아마도 배리는 그 결정을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그는 런던 켄싱턴 공원에 있는 피터팬 동상이 “너무 귀엽기만 해서 피터팬 마음 안에 도사린 악마를 보여

<피터팬>의 후크는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후크보다도 잘생기고 강인하고 당당하다. 는 "소녀들과 여인들은 달콤한 팝가수 같은 피터팬보다는 퇴락한 록스타 같은 후크에게서 더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지 못한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다. 키가 160cm도 안 되었고, 어머니와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간절하게 원했던 아이도 가져본 적이 없는 배리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되풀이되는 악몽 속에서 몇번이고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던 첫 번째 순간을 기억해내곤 했다. 1904년 12월27일 초연된 희곡 <피터팬>을 소설로 다시 써낸 <피터와 웬디>는 작가의 고통을 어쩔 수 없이 품고 있었다. 소설 속의 피터팬은 마음대로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검을 휘두르지만, “다른 아이들이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많이 겪었고, 그것을 모두 잊은” 소년이다. 피터팬은 드물게 악몽을 꾸고 그때마다 잠결에 긴 울음을 쏟는다.

처음엔 <피터팬> 연출을 거절했던 호건은 피터팬과 배리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프로젝트를 받아들였다. 그는 원작이 “아무튼 매우 어리다”고만 설명한 피터팬의 나이를 열두살로 결정했다. 배리의 형 데이빗이 열두살에 죽어서 영원히 소년으로 남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을 잃은 배리의 어머니 마거릿은 29년을 더 살아가면서 막내아들 제임스 매튜 배리를 끊임없이 밀쳐내기만 했다. 그 자신도 키작은 소년 같았던 배리는 자랄 수 없었던 소년 데이빗과 제임스를 스스로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팬으로 바꾸어놓아 상처를 달랬다. 그리고 이 사실이 호건을 매혹했다.

호건은 영화와 연극, 뮤지컬을 불문하고 처음으로 피터팬과 비슷한 나이의 열세살 소년 제레미 섬프터를 기용했고, 웬디를 맡은 또래 소녀 레이첼 허드우드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린 시절의 배리, 그가 거두었고 사랑했던 레웰린가의 다섯 고아 형제, 웬디처럼 남동생들을 돌봤던 소녀 마거릿. 이들은 모두 천진하고도 서글픈 현실의 그림자를 지닌 아이들이었다. 원작과 작가를 깊이 파고든 호건은 이들로부터 머나먼 네버랜드가 아닌, 런던 중산층 거리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성장이 주는 두려움과 희망, 막 피어나는 성(性)적 긴장, 애처로운 상실의 영화를 만들었다. 호건의 네버랜드를 충만하게 만드는 이 감정들은 후크와 웬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제레미 아이작은 초연 때부터의 전통을 따라 웬디의 아버지 달링씨와 후크를 모두 연기했다. 그는 “후크는 성인 관객이 동일시할 만한 인물이다. 아직 꿈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삶은 쏜살같이 그 곁을 지나쳐간다. 후크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웬디는 피터보다는 후크와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다. 후크는 “어릴 때는 모든 게 쉬웠는데”라는 웬디의 탄식을 이해할 수 있는, 피터가 고개 돌린 갈등의 문턱을 밟고 지나온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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