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새로운 금광, 아동 판타지
2001년 나란히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슈렉>은 그해 박스오피스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 세 작품이 벌어들인 수익이 그해 전체 매표 수익의 10%를 차지했을 정도. 이들 작품은 모두 아동 소설을 토대로 한 판타지영화였다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이는 캐릭터가 강하고 스토리가 매력적이며 볼거리가 풍부할 뿐 아니라 잠재관객이 친숙함을 느꼈기 때문. 할리우드의 흥행사들이 이런 안전판을 놓칠 리 없다. 최근 몇년 새 할리우드의 주요 스튜디오들은 경쟁적으로 아동 문학이라는 금광으로 달려들었고, 조만간 그 성과가 드러날 전망이다.
지난 1999년 이래 총 8권까지 출간된 인기 시리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파라마운트에서 영화화되고 있다. 화재로 부모를 잃은 어린 상속자들이 재산을 빼앗으려는 친지들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모험담. 아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악한 친척 카운트 올라프 역에 짐 캐리, 거머리가 득실대는 외딴집에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살고 있는 괴짜 아줌마 조세핀 역에 메릴 스트립, 이 모험담의 해설자 레모니 스니켓 역에 주드 로가 캐스팅돼, 현재 한창 촬영 중이다. 한때 <맨 인 블랙>의 배리 소넨필드가 진행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캐스퍼>의 브래드 실버링이 이 어린이 모험담의 연출자로 낙찰됐다. <빅 피쉬>를 막 공개한 팀 버튼은 워너에서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영화화한다. 후계자를 찾는 환상의 초콜릿 공장 이야기로, 팀 버튼과 조니 뎁의 4번째 합작품이 될 전망이다. 판타지 문학의 대가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두 번째 에피소드 <사자와 마녀와 옷장>도 스크린으로 간다. <슈렉>의 앤드루 애덤슨이 감독으로 내정됐고, <반지의 제왕>의 산실인 뉴질랜드에서 촬영과 후반작업을 진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노란 모자의 사나이와 장난꾸러기 챔팬지가 등장하는 동화 <호기심 많은 조지>는 유니버설에서 2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있다. 마거릿 레이 부부 원작의 이 동화는 전세계 14개 언어로 번역돼 2천만부가 팔려나간 인기작. 최근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가족용 코미디 <엘프>의 주연배우 윌 페럴이 노란 모자 사나이로 목소리 출연한다. <티거 무비>의 준 팔켄스타인 연출로, 2005년 11월 개봉된다.
피터팬으로 살다
작가 J. M. 배리
(Sir James Matthew Barrie·1860∼1937)
작가에게 문체란 곧 인격과 같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러나 <피터팬>의 창조자 J. M. 배리 스스로가 “피터팬으로 살았다”는 표현에는, 저널리스트들의 편의적인 비유를 넘는 진실이 있다. 배리는 평생 크리켓과 장난을 즐긴 천진한 취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배리를 피터팬이라고 부르는 이유의 반쪽에 불과하다. J. M. 배리의 생애는,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의 그늘진 이면- 고독, 노쇠에 대한 두려움, 통제불능의 리비도에 대한 공포, 가족이 남긴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었다.
제임스 매튜 배리는 1860년 5월9일 스코틀랜드의 키리뷔르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지어내 아들에게 매일 밤 들려주는 어머니 마거릿 오길비를 소년은 애틋하게 사랑했다. 그러나 배리가 여섯살 때 닥친 형의 사고사는 어머니를 비탄에 빠뜨렸고, 마르지 않는 슬픔 바깥에 방치된 배리는 응달의 식물처럼 창백하게 자라났다. 한편 죽은 아들이 영원한 어린이로 남으리라는 점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배리의 가슴에 진하게 새겨졌다.
“남학생과 여학생을 짝지어 놀리는 숱한 낙서에 나의 이름은 절대 오르지 않았다. 나는 남몰래 내 이름이 든 낙서를 써넣곤 했다”는 회고처럼 배리는 발육이 나쁜 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낙이 없었던 소년은 학교생활에 열성적이었다. 토론클럽, 축구에 동참했고 연극 동아리를 꾸려 첫 희곡 <도둑 반델레로>를 썼다. 어머니의 옛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스코틀랜드 군상을 그린 <옛날의 전원시>를 1882년 <노팅엄 저널>에 연재하면서 배리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고 후속작에 대한 헨리 제임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같은 스타 문필가의 호의적 리뷰로 명성은 탄탄해졌다.
서른네살의 J. M. 배리는 미모의 여배우 메리 앤슬을 아내로 맞아 가족을 이뤘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을 희구하면서도 감정 표현에 있어 불구에 가까웠던 작가의 결혼생활은 차갑게 식어갔다. 피터팬은 그즈음 탄생했다. 한 디너파티에서 J. M. 배리는 변호사 부인 실비아 레웰린 데이비스를 만났고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기록했다. 뜻맞는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배리가 산책길에 이야기와 놀이로 놀아주던 어린 형제들이 실비아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친교를 맺었다. 배리는 그들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지극한 애정을 쏟았다. 아이들에 대한 배리의 끔찍한 애정과 참견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은 데이비스가의 유모뿐이 아니었다. J. M. 배리와 메리 앤슬은 1910년 마침내 이혼했다.
배리는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데이비스 형제의 모습을 뒤섞어 피터팬을 빚어냈다. 실비아의 매력은 웬디와 달링 부인에게 깃들었다. 그러나 비운은 다하지 않았다. 실비아가 죽은 뒤 그가 친아들처럼 돌보던 데이비스가의 형제 중 두명은 요절했고 막내 피터는 배리의 사후인 1960년 런던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피터팬> 이후 <친애하는 브루투스> <메리 로즈> <데이빗이라는 소년> 등의 작품을 남긴 J. M. 배리는 말년에 준남작 작위와 훈장을 수여받았다. 배리는 저작권 수입을 모두 아동병원에 유증했다. <피터팬> <메리 로즈> 같은 J. M. 배리의 희곡은 일견 달콤한 도피주의 오락처럼 보인다. 그러나 통찰력 있는 독자들은 그뒤에서 인생을 불가피한 패배의 여정으로 바라보는 배리의 아득한 체념을 간파했다. “<메리 로즈> 같은 희곡을 쓰는 것이 평생 소망”이라고 말한 냉소의 대가 노엘 카워드도 그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