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5]
2004-01-16
글 : 김혜리

동화 판타지의 비극까지 직시하다

감독 P.J. 호건

빈사의 팅커벨을 관객의 박수로 살려내는 연극의 명장면은 영화 <피터팬>에도 남아 있다. 다만 영화는 객석의 박수를 “나는 요정을 믿어!”(I do believe in fairies)라고 곳곳에서 독백하는 사람들의 몽타주로 대체한다. 온 세상 아이와 어른이 환희의 미열에 들떠 “아이 두!”의 후렴을 거듭 외친다. 마치 주례 앞에 선 <뮤리엘의 웨딩>의 토니 콜레트처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카메론 디아즈인 양 복숭앗빛 홍조를 만면에 떠올리고.

지금 와서는 P. J. 호건 감독의 ‘I do 3부작’이라고 묶어도 그럴싸하지만, 결혼식이 등장하는 코미디 두편으로 주목받은 감독을 대규모 예산의 실사영화 <피터팬>의 감독으로 낙점한 것은 약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결정으로 보인다. 소니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피터팬> 기획을 지참금 삼아 들고 나온 제작자 루시 피셔는 자신의 <피터팬>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판을 갱신한 실사판도 아니고 〈101마리의 달마시안〉을 실사로 가공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임을 숙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피터팬>은 ‘완역판’이어야 했다. 이는 원작의 대사를 한줄씩 옮긴다는 뜻이 아니라 희곡과 소설, 원작자 J. M. 배리의 삶을 이해하고 원작을 ‘독해’하는 영화가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팀 버튼이나 알폰소 쿠아론에 비하면 엉뚱한 인선으로 보이지만, P. J. 호건은 제작자에게 여러모로 현실적인 답이었다. 장르와 캐릭터의 원형을 이해하되 복제하지 않고, 체질적으로 희비극에 능하며, 감동을 끌어안으면서도 도피주의 판타지로 쏠릴 위험을 근심하지 않아도 좋은 감독, 그것이 제작자 피셔가 이해한 P.J. 호건이었다.

<크로커다일 던디>의 폴 호건과 아무런 혈연, 친연이 없다는 점을 한사코 강조하는 폴 존 호건(44)은, 호주 휴양도시 골드 코스트에서 자랐다. <뮤리엘의 웨딩>에 나오는 퍼포이즈 스핏을 닮은 그곳은 소년 호건에게 스쳐가거나 떠나가라고 만들어놓은 듯한 지겨운 도시였다. 일광욕이나 드라이브가 정상적 인간 활동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머리 쓰는 놀이를 선호한 말라깽이 호건은 괴짜로 통했다. 장성한 호건은 언론사에 취직했으나 취재원의 말을 윤색했다는 비난을 받고 (순리에 따라) 픽션에 눈을 돌렸다. 카메라 근처에 얼쩡거려 본 적도 없는 그는 순전히 스크립트 쓰는 실력으로 호주 영화 텔레비전 학교의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영화학교에서 만난 아내 조슬린 무어하우스(<프루프> <아메리칸 퀼트>의 감독)와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뮤리엘이 결혼을 꿈꾸듯 간절히 영화를 꿈꾸었다. 잘 풀리지 않는 시절을 거쳐 1994년 발표한 300만달러 예산의 영화 <뮤리엘의 웨딩>은 <피아노> <댄싱 히어로>와 더불어 90년대 초 호주영화의 간판스타가 됐다. 이어 할리우드에 초빙돼 연출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1997년 여름 시즌의 슬리퍼 히트였다.

물론 P. J. 호건은 <콘택트>의 마이클 골든버그가 쓴 <피터팬>의 시나리오 초고에 코미디를 가미했고, 영원한 소년의 신화 뒤에 가려진 소녀의 러브스토리를 끌어냈다. 그러나 국내에 알려진 전작 <뮤리엘의 웨딩>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피터팬>에 새긴 감독 호건의 서명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피터팬>이 “모든 아이의 비극은 성장해야 한다는 것. 성장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어린이 피터팬의 비극은 바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수’하는 판타지라는 점을 호건은 직시한다. 그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역시 사랑을 통해 어떤 목표에 이르기를 포기하는, 장르의 관습에 비추면 ‘패배주의적’인 로맨틱코미디였다. 터놓고 말해 섹슈얼리티와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성장’의 개념은 아동판타지에서 불편한 소재다. 하지만 호건은 수줍음도 호들갑도 없이 <피터팬>의 관능과 폭력에 접근한다. 요란한 코미디 <뮤리엘의 웨딩>이 실상 배신, 난치병, 자살의 비극으로 고비마다 내러티브를 끌어간 드라마였다는 점을 새삼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P. J. 호건의 <피터팬>은 후크의 잘린 팔뚝을 보여주고 아이와 어른의 가차없는 칼싸움을 보여준다. 웬디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는 피터와 후크는 성적인 질투심을 감추지 않고 성년의 언저리에 선 웬디는 그들이 대표하는 남성성의 두 얼굴에 대한 매혹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호건은 원작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도 한다. 원작의 웬디는 해적을 무시하는 캐릭터였지만, 영화의 웬디는 모성과 모험에 동시에 이끌리며 검을 치켜드는 21세기 소녀다. 스타일도 여전하다. 달링가 남매들이 색색의 태양계를 지나 날아가는 장면이나 집채만한 악어의 디자인에는, 난데없이 초현실적인 뮤지컬 무대를 벌이던 <뮤리엘의 웨딩>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키치적 감수성이 펄떡인다.

그의 <피터팬>은 결코 조용히 당도하지 않았다. 일부 관객은 “최고의 동화를 포르노그래피로 망쳐놓았다!”고 분개했지만, BBC는 “감정과 어드벤처의 균형을 찾는 마술에 있어 <해리 포터> 시리즈가 풀어야 할 과제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호평했다. ‘크로커다일 던디’와 헛갈리는 것이 싫어 이름 표기법까지 바꾼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터팬>에 이르러 악어와 씨름하는 비운을 맞긴 했지만, 폴 호건과 P. J. 호건을 혼동하는 관객은 장차 대폭 줄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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