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연스러움, 인공의 세계와 딱 붙어있도다
1월10일 홍상수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5월 초 개봉예정)가 크랭크업했다. 홍상수 영화는 국내외에서 임권택 감독 버금가는 관심을 끌어당기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감독 스스로 완성품을 내놓기까지 늘 짙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 제작에 집중해야 할 에너지가 자칫 엉뚱하게 방해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홍상수 감독이 몇 차례의 촬영장 취재를 기꺼이 허용해주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의 촬영현장은 그의 영화를 쏙 빼닮았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분석은, 좀 과장스럽게 말하면,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 대한 선호와 가치 평가를 떠나서 대체로 합의되는 것이 있다. 언뜻 의미없어 보이는 사건과 배경을 의미있어 보이는 사건과 배경 속에 빼곡히 깔아놓음으로 해서 무수히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오! 수정>과 <생활의 발견>을 묶어 ‘허허실실 윤리학 2부작’이라고 이름붙인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보면 볼수록 무섭게 꽉 찬 거대한 ‘덩어리’로 달려든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 힘이 매번 새롭게 시도되는 형식의 힘에서 나온다고도 하고, 외국의 평자들은 홍상수의 화면에서 허우샤오시엔이나 차이밍량 같은 ‘아시아 미니멀리즘’과 같으면서도 다른 무엇을 본다고도 한다. ‘일상’이란 단어는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너무나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그 홍상수식 일상 혹은 미니멀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 속시원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아마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감독에게 직접 던진 이는 미국의 구조주의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일 것이다. 그는 2002년 12월 부산영화제 기간 중에 <씨네21>이 마련한 대담에서 홍 감독에게 배우 배치와 카메라 세팅 중에 어느 것부터 하는지 묻더니 캐릭터들의 상호관계를 통한 디테일은 리허설의 연장과도 같은 촬영방식에서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했다. 시시콜콜해 보이는 질문은 <오! 수정>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술을 따라줄 때 그 앞에 앉은 여자가 마치 모방하듯 코냑 병을 기울이는 게 사전에 얼마나 계획한 것인지 묻는 것으로 이어졌다. 감독은 이에 대해 다소 모호하게 답했지만, 지금 이 기사를 쓰는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감독의 디렉팅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홍상수 창작의 비밀을 캐보자’는 야심찬 목표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촬영하는 현장에 몇 차례 동행하면서 얻게 된 결론이다. 물론 그 목표는 쉽게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의미심장한 단서만을 얻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