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 문소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 묻다 [1]
2004-03-12
사진 : 정진환
정리 : 이영진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송환>이 12년간의 긴 제작 여정을 마침내 끝냈다. 3월19일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 ‘아트플러스’를 타고 일반에 공개되는 <송환>의 주인공은 비전향 장기수다. 촬영 테이프 500여개, 촬영시간 800여 시간 가운데 고작 2시간을 추려낸 <송환>은 선동과 계몽의 욕구가 앞서는 정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펙터클 비극이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사의 미세한 굴곡과 역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눈물을 뽑아낼 수는 있어도, 단단하고 현란한 논리가 구호와 행동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삶의 고단한 역정이 동반하는 그 넓은 느낌까지 끌어안기란 쉽지 않다. <송환>은 섣부른 욕심이나 속단없이 그 모든 걸 하나씩 끌어내 보여준다.

배우 문소리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작업을 마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문소리는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송환>의 개봉에 조금의 보탬이라도 된다면”이란 희망으로 바쁜 일정을 쪼개 인터뷰어로 나서주었다.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홍기선 감독의 <선택>과 김동원 감독의 전작들을 구해 빠짐없이 보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문소리 | (영화 속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굉장히 부드러우시구나 느꼈어요.

김동원 | 디지털 녹음 덕분이지. 내 목소리가 침이 많이 섞여서 나온다는데 그걸 다 골라내서 깎아낸 거야.

문소리 | 제가 받아서 본 테이프는 사운드가 좀 작은 것 같더라구요.

김동원 | 그거 복사가 잘못 됐어. 새로 해야 해.

문소리 | DVD로도 제작하시나요?

김동원 | <살인의 추억> DVD를 만든 곳이 어디지? 2년 연속 우수 업체로 선정됐다던데. 그곳에서 연락와서 자기네들이 모금을 해서라도 제작할 테니까 맡겨달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DVD도 근데 다 내 일이지. 콘텐츠를 채워야 하니까. 게다가 소스가 너무 많아서 고르는 데 여간 힘든 게 아닐 것 같아.

문소리 | 인물들 중심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에피소드로 꾸려갈 것인가 구성을 정하는 것도 고민이 되실 것 같네요. 어쨌든 재밌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 인터뷰 때문에 <행당동 사람들> 챙겨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 까만 팬티 입은 철거 용역 아저씨는 전에 어디서 많이 뵌 것 같기도 하고.

김동원 | 그 사람 칼 맞아서 죽었어.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철거 용역반 하다가 어디선가 술먹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문소리의 가족사, ‘역사’가 되다

잠시 <행당동 사람들>과 맞물리는 문소리의 집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부산에서 올라와 석촌호수 부근에서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하면서 겪은 고생담. 88올림픽을 맞아 성황을 누리던 포장마차들에 대한 폭력적인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그 ‘혈투’의 뒤편에서 손에 힘을 쥔 자들이 벌이던 뒷거래들. 김동원 감독은 “전국 노점상연합회가 그걸 계기로 생겼다. 그때만 해도 철거민연합회는 가능해도 노점상은 힘들 것이라고 봤는데 이를 위해 청춘을 불사른 사람이 있어 가능했다”며 ‘역사적으로’ 정리를 해줬다. 그 다음은 고생 끝의 어머니가 아파트 분양에 관심을 쏟으라는 당부와 여기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문소리와 동생의 이야기. 김 감독은 “어머니께 <행당동 사람들>을 보여드리면 좋겠네”라며 너털웃음을 짓더니 “악의는 없지만 몇평 더 넓혀가야 한다는 중산층의 생각이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키고는 하는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거든다.

문소리 | 선댄스영화제는 수상 소식을 알려줘요. 미리?

김동원 | 약간 감은 잡았는데, 철저히 연막을 쳐서 전혀 몰랐어.

문소리 | ‘표현의 자유’상인데 전엔 어떤 작품들이 상을 받았나요?

김동원 | 난 들어보지도 못한 상이야. 지난해까지는 미국 다큐멘터리 안에서만 줬다고 그러더라고. 올해는 월드 다큐도 가능하니까 혹시 <송환>이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만 들었어. 심사위원이 셋이었는데. 다큐멘터리 심사위원하고는 달라. 비평가인 몰리 헤스켈하고 덴마크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작가하고 남아프리카 ABS라고 진보적인 방송사 국장급 되는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심사위원이었어. 다들 정치적 성향이 강한 것 같더라고. 다른 작품들을 스틸 보면서 대략 훑어봤더니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작품이 없어서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지.

문소리 | 상 이름처럼 사실 표현의 자유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고, <송환>에서도 왠지 그걸 의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고민한 흔적도 보이고. 더이상 밝힐 수 없고, 건드릴 수 없어 하는 뭐 그런.

김동원 | 밝히지 못하고 고민했다기보다는 절제했다고 생각하고 싶어. 모든 게 그렇지만 여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절제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그 이야길 했으면 후회했을 거야.

문소리 | 어떤 인터뷰에서 영화는 감추는 것인데 다큐멘터리는 드러내는 거다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김동원 | 아니 다큐멘터리의 경우 감추어지는 것이 많다고 했지.

문소리 | 아∼ 그런가. 보통 영화보다 다큐가 많이 드러내는 거라는 느낌을 줘서 착각했나봐요. (잠시 침묵) 배우라는 직업은 어쩌면 가장 자유로워야 하잖아요.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 있어서. 그런데 점점 나를 감추려고 해요. 6년차인데 점점 나를 감추는 데 익숙해지고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워요. 그런 상황에서 <송환>을 봤는데 절제했다고 하셨지만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이 솔직히 들어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너무 대단해 보이던데요. 어떻게 저렇게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

김동원 | 감독의 주관적 내레이션이 있고 등장인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떠오를 수 있지. 그래도 그보다는 훨씬 못해. 마이클 무어처럼 감독에게는 약간 쇼맨쉽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문소리 | 맘껏 조롱하고, 맘껏 놀리고.

김동원 | 그걸 보면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할 때가 있어. 그러면서도 그 다음에 ‘저건 내 것이 아니다’싶어. 난 죽었다 깨도 저건 못하는 것 아닌가. 내 나름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수준은 따로 있다는 거지. 그건 배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실생활이든 연기든 어느만큼 나를 표현하는 게 가장 나다운가 그런 질문을 하게 돼. 사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지만 결국은 내 나이쯤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장소협찬 아트선재센터(MixMax 2004. 2. 2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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