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로서의 거리, 바라볼 공간으로서의 거리
조창손 선생과 김 감독은 본인들 말처럼 ‘아버지와 아들’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렇지만 송환 직전까지 김 감독은 내심에 두고 있었던 인터뷰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식량난 문제, 북의 권력 시스템 등에 대한 견해를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끝내 하지 못했다. 첫 만남 이후 4년이 지났음에도 선생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촬영을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김 감독과 장기수 선생의 괴리감은 사라질 듯하면서 이따금 불거져나오곤 했다. 초기에 “김일성 장군…”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는 선생들의 모습에 정서적 이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송환 결정이 난 뒤 술자리에서 선생들이 벌써 평양에 가 있는 듯 “강성대국”이라고 외치며 술잔을 부딪히는 순간에도 그랬다. “거리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가까이 본다고 잘 보는 것도 아니야. 코를 맞대고 있으면 오히려 상대방이 안 보여. 너무 가까우면 찍을 수가 없는거야.”
문소리 | 선생들을 결국 버티게 한 힘은 뭘까요?
김동원 | 아까 기자 시사회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어떤 분들한테는 정치적 신념이 움직일 수 없는 실체야. 그 사람들은 내가 만약 전향공작에 저항하는 거였다, 라고만 표현했다는 걸 알면 노하실 거야. 난 그것뿐만 아니라, 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마저도 거부하실 수 있지. 다른 몇몇 선생들한테는 내가 이야기한 게 훨씬 더 현실적일 수 있는 것 같아. 김석형 선생처럼 이론으로 무장이 된 사람은 노할 테고 조창손 선생처럼 무장 안 됐지만 기본적 양심으로 버티신 분들은 내 말에 큰 찍자는 안 놓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조석형 선생 정도 차원밖에 이해를 못하는 거지. 김석형 선생은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내가 사상적 수준이 그만큼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조 선생 그 정도 수준 되는 것 같으니까.
문소리 | 안학섭 선생은 어떤 분이세요?
김동원 | 우리 조연출한테는 막 불만을 이야기해. 그런데 나한테는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 안 하시는 분이지. (웃음) 서운한 게 있어도 오랫동안 지내서 직접 말씀 안 하시는 것 아닌가 싶어. 김영식 선생과 동등하게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껄끄럽게 생각하시지. 전향한 사람과 전향하지 않은 사람하고 같이 대우한다는 걸 기분 나빠하실 때도 있는 것 같고. 감옥 안의 생활은 우리가 모르는 게 많아. 감옥 안에서 어떻게 생활했냐 하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난 단식을 주도했고 10일을 지켰는데 똑같은 비전향 장기수지만 저 친구는 밥을 먹었다, 그러면…. 또 간수한테 인사를 했냐, 안 했냐 이런 것도 작용하지. 대꾸 한마디가 투쟁인 거야. 김영식 선생 같은 경우는 간수가 하라고 하면 하지 뭐,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분 입장에선 그렇다고 양심을 파는 것은 아니라고 봤을 수도 있고.
문소리 | 관객이 <송환>을 보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이렇게 바라봐줬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김동원 | 아주 심하게 생각하면 영웅처럼 여기고, 정말 너무나 순결한 사람들로 보는 것은 원치 않지. <송환> 또한 30, 40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특별한 사람들을 12년 동안 따라다니며 찍은 특별한 감독의 특별한 다큐멘터리라고 여겨지면 안 될 것 같아. 스타가 없는데 스타를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지.
문소리 | <바람난 가족>도 벗은 것으로 이슈 만들려고 그러고. <바람난 가족>은 보셨나요?
김동원 | 난 선댄스에서 <바람난 가족>을 처음 봤어. 임상수 감독에게는 좀 편견 같은 게 있었거든. 영화도 생긴 것처럼 날아다닌다는 느낌이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도 지나치게 너무 가벼운 영화 아닌가 싶더라고. 그런데 <바람난 가족>은 맥이 약하긴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같아서 좋았거든. 근데 김일성 장군 노래는 어떻게 들어간 거야. 김인문씨가 꼭 넣자고 했다던데.
문소리 |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 그거 말이죠.
김동원 | <송환>에서도 선생들이 그 노래 부르잖아. 어떻게 그 노래를 알았을까 싶더라고.
문소리 | 김인문 선생이 어렸을 때부터 놀면서 부르던 노래였대요. 선명하게 기억하시긴 했는데 나중에 이거 니가 부르면 책임질 거냐면서 감독님한테 따지셨죠. (웃음)
김동원 | 이제 한국영화에도 사회가 있고, 사람이 있고, 정치적인 올가미 같은 것들이 담겨지는 것 같아. 균형이 어떻든 그걸 잡고 있으면 작품성에 플러스 알파가 있지 않을까.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평가받는 지점들이 그런 것일 텐데. 오락성 영화가 사회성까지 담보하려는 경우, 그게 부자연스럽지만 않다면 그렇게 된다고 봐. <바람난 가족>도 만만찮은 사회성이 있는 영화라고 보여지고.
문소리 | 두명의 김동원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자유주의자 김동원과 투사 김동원. 어디에 더 가까우세요?
김동원 | 어떤 평론가가 <송환> 보고서는 나한테 김일성주의 운운하면서 이념적 정체성이 뭐냐고 묻던데. (웃음) 그래서 작품 안에서 다 밝히지 않았냐, 자유주의자라고 하지 않았냐, 난 사회주의자가 되려고 하더라도 내 그릇으로는 못 될 것 같다. 그래도 사회주의자들을 존경한다 그렇게 이야기했지. 그들이 될 수 없지만 그 근처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해해달라고 그랬어. 그게 사실이고. 나한테 70년대 딴따라 하던 내 기질이나 히피의 기질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든. 자연스러움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봐.
문소리 | 혹시 흔들릴 때가 없으세요?
김동원 | 사실 휘청휘청 많이 해. 하루에도 열두번씩 휘청휘청해. 나한테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이 나를 곧추세워주는 거지. 그들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들 존재 자체가 나를 버티게 하는 것 같아. 또 영향을 끼치고. 할 일이 많은데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거든. 그럴 때가 있으면 도망을 가긴 하는데. 그런데도 다시 돌아와서 계속 이 길을 가야겠다 싶게 하는 계기들을 그들이 끊임없이 안겨준다고.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중에 <침묵>이라는 게 있어. 일종의 종교소설인데. 일본의 천주교가 박해를 받을 때 예수 초상화를 밟고 가면 살려주고 아니면 죽이고 그런 상황들이 벌어진다고. 주인공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사람은 만날 밟고 지나가. 그러다가 안 밟고 지나간 사람들이 사형당할 때 그 옆에 와서 꺼이꺼이 운다고. 그 사람도 결국 순교자가 된다는 게 마지막 결말인데. 그 주인공이 나 같다는 생각을 해. 관계들 때문에 결코 도망갈 수 없는 사람. 비전향 장기수, 상계동 주민들, 행당동 주민들, 그들이 나를 붙잡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