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4] - 장항준 감독의 <꿈의 시작>
2004-08-18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처참한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다

장항준 감독 영화에 폼나는 인생들은 안 나온다. 라이터와 목숨을 바꾸는 백수(<라이터를 켜라>)의 무모함이나, 남이 해준 이야기를 받아먹고 사는 삼류 대필 작가(<불어라 봄바람>)의 뻔뻔함 정도는 갖춰야 주인공을 꿰찰 수 있다. 그렇담, 이번에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긴 ‘겉저리 인생’은 누구일까. 얼마나 꾀죄죄하고 후줄근한 인생이기에, 한달 전까지만 해도 <깊은 산 먼 친척>이라는 구미호 이야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를 변심케 만들었을까.

전개도 - ‘실화’엔 역시 뭉클한 뭔가가

씨네2000 제작 스탭이었던 신도영씨가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장항준 감독은 “이 양반이 왜 이런 소재 영화를 내게 들고 왔지” 싶었다. 수중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유행 타는 코미디 일색. 그런데 1950년대라는 낯선 시대가 강하게 드러나는 드라마의 연출자로 자신을 선택한 게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날 반신욕하면서 읽어봤는데 고치면 물건이 될 것 같았다”는 그는 강우석 감독에게 “죽이는 거 하나 들어왔는데, 내용은 비밀입니다”라고 뜸을 들였고 결국 긍정적인 투자 의사를 끌어냈다. “실화라는 게 가장 끌렸다. 모든 것이 픽션이었다면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꿈의 시작〉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녀 출전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의 애환을 중심에 두는 영화. “누구나 거지 깽깽이처럼 살던 시절, 경기 시작 10시간 전에서야 현지에 도착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까지 그들이 타국에 가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0대 중·후반의 노땅 선수들까지 포함됐으니 “뻔히 깨질 것은 분명한 일인데” 굳이 “자신들의 밑천을 날려가면서까지 그 낯선 땅에 가려고 했던 의지가”, “쏟아지는 잠을 깨기 위해 미리 준비한 옷핀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경기를 치렀던 이들의 오기가” 장 감독은 무엇보다 궁금했다.

전개도 - 두개의 큰 줄기로 스토리 재구성

가제라고 하지만 제목이 〈꿈의 시작〉. 초고 시나리오에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빚어낸 감격의 순간을 묘사한 인서트 장면까지 있겠다, 이거 민족주의에 기댄 스포츠영화 아닌가, 하는 의문이 맨 먼저 떠오른다. “내셔널리즘은 천성적으로 싫다. 지난번 월드컵 때도 한국팀이 아니라 상대팀 응원해서 욕먹었을 정도다. 영화 속 인물들이 축구를 하는 까닭도 일본이나 다른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당시 세계 최강이라 알려졌던 헝가리와 첫 경기에서 한국팀은 9 대 0으로 대패한다. 장 감독은 국가 대항전이라는 차원에서는 잊고 싶은 치욕의 스코어지만, 세계대회 출전이 목표였던 개인들의 꿈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이는 정반대의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경기장에서 뛰었던 골키퍼 홍덕영 선생을 뵜는데 경기 내내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서 기둥을 붙잡고 있었다고 하더라.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뛰었다는 과정 자체가 감동스러운 것 아닌가?” 장 감독은 이들이 비행기 표를 손에 넣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시차 적응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뛰어야 했던 필사의 대전으로 스토리를 크게 나눈 다음 세부 디테일을 보강, 연내에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승부처 - “저때는 저랬구나!”

다만 살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시대’를 그려내야 한다는 사실은 장 감독에게 부담이다. 그렇다고 해서 허투루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시나리오에는 빠져 있는 당시 모습을 취재와 자료 조사를 통해 두텁게 덧칠할 심산이다. “그때 기록이 많진 않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젊었을 적 종로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뭉클한 게 있다. 이번 영화에 그 느낌이 담겼으면 한다.” 장 감독은 “지게꾼들의 모습만 하더라도 기존 영화에서 보이던 모습과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면서 “저때는 저랬구나!”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그때는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집 바깥으로 가면 누군가 똥 누다가 ‘안녕하세요’ 인사했던 때다.” 고철로 팔아넘기려고 골대를 뽑아가는 도둑이 있었고 그래서 선수들이 번갈아 불침번을 서기도 했던 시절을, 전쟁 직후 반공이 국시였기에 민족간의 반목도 어느 때보다 골이 깊었지만 휴전선 근처에 장이 서면 남북 사람 가릴 것 없이 뒤섞이는 시절을 온전히 담아내겠다는 포부가 최종 시나리오에 추가될 예정이다. 최적의 촬영지 헌팅을 위해선 다리품을 아끼지 않는다는 각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방치된 구장까지 돌아서라도 헝가리와 첫 경기를 치른 취리히의 그리스 호퍼 경기장을 대신할 공간을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장 감독은 덧붙인다.

시놉시스 -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앞두고 FIFA가 배정한 아시아 지역 출전 티켓 한장. 전쟁 직후라 조선방직을 제외하면 사회축구팀은 없었고, 나머진 방첩부대, 기무사 같은 각종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팀이 전부였던 한국은 일본을 물리치고 출전권을 거머쥔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어차피 패배할 것이 뻔한데 굳이 외화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고, 대표팀은 출전 비용을 알아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자신이 속한 부대로 하나씩 돌아가는 선수들.

축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재승 또한 자신이 속한 방첩부대로 귀대한다. 그런데 부대장은 다시 축구팀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북한 축구 대표팀 출신으로 축구를 하기 위해 남쪽으로 귀순한 일갑이 남로당 간부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부대장은 재승에게 축구팀으로 돌아가 일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평소 자신을 빨갱이라고 무시하던 재승이 한방을 쓰겠다고 자청하자 놀라는 일갑. 일갑은 결국 남로당 간부인 삼촌의 끄나풀과 접선하다 발각되고 고문을 당하는 처지가 된다.

한마디 - “11명의 움직임과 감정을 흐르듯이”(영화음악 윤종신)

“아직 계약 안 했다. 조건 안 맞으면 안 할 생각이다. (웃음) 새 작품 이야길 들은 게 고작 2∼3주 전이다.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음악적인 어떤 감흥이 떠오른 건 없고 다만 따뜻한 색깔의 영화인 건 분명한데 지금까지 이 친구와 했던 작업들과는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부분 한두명의 주인공들이 끌어가는 드라마였는데, 이번엔 적어도 11명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다 개개인이 아니라 전체 팀의 움직임과 감정의 흐름을 음악이 따라가야 하는 거니까. 또 실화에 바탕을 둔 거고. 게다가 후반부에는 뭉클한 감정이 극대화되야 하는데 여기서 내가 해야 할 몫이 많구나, 그러려면 내 스스로 과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부담이 적지 않게 됐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털어놓는 친구인지라 작업 시작도 전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내 스스로도 네 번째 작품인 만큼 이제는 완성도를 끌어올려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고 그래서 전보다 숙제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참조 - 1954년 스위스월드컵, 한국 첫 월드컵 본선 무대

산 넘어 산이었다. 대회 개막 6일 전인 1954년 6월10일. 부산에서 여객기로 일본까지 이동한 22명의 한국대표팀은 영국행 비행기 좌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결국 주전선수 12명만 먼저 떠나게 된다. 6월11일 감독 포함 13명의 2진 출발 때에도 영국인 신혼부부 한쌍이 자리를 양보해서야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외국 취재진들은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을 두고 “언제 경기가 열리는지 아느냐?”고, 장딴지까지 올라간 후진 양복을 두고 “짧은 바지가 당신네 나라에선 유행이냐?”고 빈정댔다.

현지 시각 6월17일 오후 3시. 1만3천여명의 관중 앞에서 헝가리와 첫 경기가 벌어졌고, 한국은 23분 첫 골을 허용한 뒤 전반에만 4골을 먹었다. 게다가 경련으로 선수 세명이 쓰러져 여덟명이 뛰는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9 대 0으로 졌다. 3일 뒤인 6월20일 터키와 경기에서도 한국은 7골을 내주며 무득점 패배를 기록했다. 탈락이 확정된 팀은 잔여 경기를 치를 수 없었고, 체재비 또한 떨어졌던 한국팀은 부랴부랴 귀국했다. 미처 챙기지 못한 8400달러의 경기 배당금은 한국은행에 보내졌고 이 돈은 자신들을 내팽개친 조국의 빚을 갚는 데 쓰였다(<월드컵 축구 백과>, 박기만 편저/ 월드컵 백과 간행회 펴냄/ 69∼73쪽 요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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