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5] -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2004-08-1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생지옥

얼마 전 <혈의 누> 촬영을 시작한 김대승 감독은 온몸이 구릿빛으로 그을어 있었다. 3년 전, <번지점프를 하다>로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랑을 들려주었던 그는, 탐욕이 빚어낸 지옥 속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매우 무서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역사 스릴러 <혈의 누>. 김대승 감독은, 향수가 따뜻하게 내려앉은 80년대와 17년 만에 돌아온 연인을 눈물로 맞는 순정으로부터, 왜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로 몸을 옮긴 것일까. 원한과 죽음으로 뒤덮인 섬 동화도에서 잠깐 돌아온 그는, 스스로 ‘멜로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낚아챈 영화 <혈의 누>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실마리 - 탐욕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았다

김대승 감독은 공포영화나 연쇄살인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은 견디고 보지를 못하는 천성 탓이다. 그러나 김성제 프로듀서가 건네준 <혈의 누>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미스터리이면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씨앗을 품고 있기도 했다. ‘피(血)눈물(淚)’이라는 뜻이 깃든 제목처럼, <혈의 누>는 한 남자의 억울한 죽음과 그에 이은 복수, 복수를 요구하는 원혼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영화다. 김대승 감독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섬에서 부(富)가 처음 생겨나고, 그 부를 둘러싼 탐욕이 자라나는 모습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19세기가 배경이어도, 혹은 임진왜란이나 18세기가 배경이어도 상관없을, 인간 사는 세상이라면 떠날 수 없는 지옥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김대승 감독은 이미 10고까지 나와 있던 시나리오를 열다섯 번 넘게 고치면서 자신이 발견한 씨앗에 “물을 주고 비료를 뿌렸다.” 누구도 보지 못한 시대, 보지 못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김대승 감독은 아직도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거듭되는 살인의 핏물로 채워진 깊은 나락이 될 것이다.

전개도 - 여수 금오도에서 촬영 시작

<혈의 누>의 배경은 굳이 못을 박자면, 신유박해가 일어나고 7년이 지난 1808년이다. 그러나 김대승 감독은 책이나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19세기 초반 역사를 꼼꼼하게 고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시대극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상상한 대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그는 “남들이 거짓말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만큼만” 선을 지킬 생각이다. 흰옷 대신 억눌린 톤으로 물들인 옷을 입은 동화도 사람들, 수십 명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종이를 제작하는, 역사 속에선 결코 존재했을 리가 없는 제지공장, 지배계급이나 가졌을 법한 안경을 쓴 군관. 김대승 감독은 세상 이치를 19세기의 어느 한 순간에 응축하고, 어느 한 섬에 구겨넣어, 시대를 뛰어넘는 한 폭 지옥도를 완성해갈 것이다.

그 지옥도를 위해서 김대승 감독은 <춘향뎐> 조감독 시절 인연을 맺었던 민언옥 미술감독을 불러들였다. “이 땅에는 어느 한 군데 초가지붕이 남아 있지를 않았다. 그래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여수 금오도를 촬영 장소로 택했지만, 마을과 제지공장은 새로 지어야 했다. 민언옥 감독은 거리를 마다않고 달려가 돌담을 허물어 오고, 서까래를 들여온다.” 지금 완성된 세트는 영화 속 동화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포구마을. 그곳을 떠나 바다를 지나면, 순하게 자라는 대신 사나운 뿌리를 땅 위로 드러낸 나무가 있고,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한을 방사하는 동화도에 도착한다. 워밍업처럼 짧은 촬영을 하고 서울로 돌아온 김대승 감독은 다시 그곳으로 가 10월 말까지 “조금씩, 결국에는 터질 것처럼 잔인해져갈” 조선시대 연쇄살인극에 몰두할 예정이다.

승부처 - 끓어오르듯 선명한 핏빛 공포

평소 공포영화를 멀리해왔던 김대승 감독은 몇 편 보지 못한 무서운 영화 중에서 <샤이닝> 도입부가 정말 무서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잭 니콜슨이 산길을 따라 운전을 하는데, 구불구불한 그 길을 보면 산장이 얼마나 철저하게 고립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도시에서야 가장 한 명이 미친다고 해서 무섭진 않다.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공포로 다가오는 거다.” 동화도도 그 산장처럼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섬이다. 전화도 쾌속선도 없는 19세기 섬에는 저주를 피할 곳도, 사슬처럼 이어지는 살인에서 몸을 뺄 곳도 없다. 그리고 총도 없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살인은 모두 칼로 찌르고 목을 조르고 살을 베는, 몸으로 죽음을 느껴야 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 때문에 <혈의 누>는 스릴러이면서 핏자국 선명한 공포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김대승 감독은 지금 어떻게 해야 무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7년 동안 섬사람들을 사로잡아온 원한과 부(富)를 보아버린 이상 사라지지 않을 탐욕. 그것만으로도 긴장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승 감독은 <혈의 누>가 조금씩 끓어오르듯 잔인해지고 무서워지기를 원한다. 파스텔 색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거라는 기이한 섬 동화도. 죄없는 죽음으로 시작된 공포는, 파스텔 색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거라는 그 동화도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절정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놉시스 - 19세기 후반 조선, 제지소가 있는 동화도에서 수송선 화재가 일어나 조정에 바쳐야 할 종이가 모두 불타버린다. 군관 원규(차승원)는 화재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동화도에 오지만, 생각과는 달리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왠지 불길한 섬에서 수사를 계속하던 원규는 이 사건이 7년 전 죽은 강객주 일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품는다. 부유하고 세력 있던 강객주는 외국 군대를 불러들이려 했던 천주교도 황사영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무고를 받고 참형당했다. 제지공장 아들 인권과 강객주의 은혜를 입은 마을 청년이 여기에 얽히고, 강객주의 원혼이 저주를 내린 거라는 소문까지 더해져, 동화도는 참혹한 지옥으로 변해간다.

로댕 <지옥의 문>

한마디 - 여백을 주어 인물의 상황을 짐작한다(촬영감독 최영환)

<혈의 누>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호러가 섞여 있는 영화인데,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중간에 담배도 피우고 TV도 보면서 딴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혈의 누>는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해서 끝을 볼 때까지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또 장르영화인데도 사극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을 시도해볼 여지가 많을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극은 대부분 뚜렷하고 노멀하게, 화려한 한복이나 기와집을 촬영하곤 했다. <혈의 누>는 블랙을 첨가한 세트를 지었고 나무도 음침하게 죽어 있는 듯하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물처럼 주변 장치도 많다. 그런 것들을 활용해서 거칠고 강한 화면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화면 비율은 보통 쓰는 1.85:1보다 옆으로 넓은 2.35:1을 택했다. 한옥은 뾰족하게 위로 솟은 선이 많고 산지이다 보니 위아래로 뻗는 산길이 많아 세로가 어울릴 것도 같았지만, 나는 여백을 주어 인물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넓은 화면을 써보고 싶다.

네가 생각하고 네가 상상해라김대승 감독은 민언옥 미술감독과 동화도 컨셉을 의논하다가 로댕의 조각 <지옥의 문>을 보러갔다. 그는 영겁의 세월 동안 죄인들을 삼켜왔을 지옥문에 인물상은 몇 개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얼굴 조각 몇 개가 있고, 나머지는 시멘트로 바른 것처럼 빈 공간이었다. 얼마 안 되는 얼굴 조각들이 공포를 상상하게 만든 것이다. <지옥의 문>은 떠먹여주는 조각이 아니다. 보는 사람에게 네가 생각하고 네가 상상해라, 이렇게 말한다. <혈의 누>의 공간도 그래야 한다.” 김대승 감독이 사무실 벽에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 <오하시 다리 위의 소나기>를 걸어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히로시게는 술집을 그리고 싶으면 술집 몇 군데만 그리고, 나머지는 밤으로 발라버린다.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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