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귀신이 산다>의 차승원 인터뷰
2004-09-17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또 코미디라뇨? 뭐 문제있나요”

“왜 또 코미디냐는 저한테 왜 삼시 세끼를 먹느냐와 똑같은 질문이예요. 할 수 있는 거 하는 게 무슨 잘못도 아닌데 말이죠.” 새영화 <귀신이 산다>(감독 김상진,17일 개봉)로 돌아온 배우 차승원(33)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왜 또 코미디냐?”인 건 당연할 수도 있다. <신라의 달밤> 이후 <광복절 특사> <라이터를 켜라> <선생 김봉두>와 이번 영화까지 내리 다섯 영화를 코미디만 했으니까. 그러나 <귀신이 산다>의 박필기 역이 차승원이 지금까지 해온 연기의 답습이라고 단정짓는다면 그건 냉정한 평가이기에 앞서 자신의 부족한 눈썰미를 시인하는 꼴이 된다.

<귀신이 산다>는 지금껏 그가 해왔던 캐릭터 코미디와는 다른 영화다. 쉽게 말해 박필기는 ‘못말리는’ ‘어리버리한’ ‘앞뒤 안가리는’ 따위의 특별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인 그의 특징이라면 내 집 마련에 대한 의지가 강한 정도.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 중에 내 집 마련의 꿈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박필기는 정말 평범한 남자예요. 애써서 소원을 이뤘는데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힘이 자기가 이룬 것을 빼앗아가려는 거죠. 얼마나 속상하고 무섭겠어요. 그건 전혀 웃긴 게 아니거든요.”

천신만고끝 내 집 장만했더니 귀신이 자기집이라고 나가래

영화가 시작되고 한시간 가까이 차승원은 그야말로 혼자 연기한다. 필기와 ‘주택분쟁’에 나서게 되는 귀신(장서희)은 아직 등장하지 않고 움직이는 소파, <링>처럼 배우를 토하는 텔레비전, 위치가 뒤바뀐 손발과 싸우는 필기의 연기는 마임처럼 보인다. 상황은 갈수록 황당해지는데 필기는 갈수록 처절해진다. “더 절실하게, 더 진지하게”는 이번 영화에서 그의 연기 모토였다. “놀라서 도망가는 장면 하나에서도 웃기게 가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갈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도 들죠. 여기서 내가 좀 더 하면 재미있을 것같은데…. 제 생각에 코미디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독은 그런 거예요. 배우가 웃기려고 하는 순간 영화는 망가지는 거죠.”

짧지만 이야기 중간에 툭툭 내놓는 그의 ‘코미디론’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실생활’이다. 이제 몸 전체를 도는 피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워진 그의 코믹 리듬이 빛을 발하는 것도 이런 순간이다. 이를테면 슈퍼에 가서 악착같이 10%를 할인받는 때나 직장 상사(장항선)의 면박에 ‘뻘줌’해 할 때, 거꾸로 매달린 귀신에게 무심코 “너 얼굴 시뻘개졌어” 이야기할 때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더 절실하게 더 진지하게”배우가 웃기려면 망가지죠

다시 “왜 또 코미디냐?”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면 여기에는 오로지 망가지기 위해 존재하기에는 완벽한 체격과 그 자체로 누아르 영화 포스터가 되는 강렬한 인상에 대한 아쉬움도 묻어 있다. 이에 화답하듯 그는 차기작인 스릴러 사극 <혈의 누>(김대승 감독)에서 ‘짠한’스타일의 냉혈한으로 출연한다. 그러나 ‘변신’으로 포장하지는 말기를 부탁한다. “한없이 가벼운 것도 싫지만, 반대로 무거운 것도 싫어요. 그 경계를 지켜나가는 게 앞으로의 연기에 대한 답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일관성’을 지켜나가는 게 배우로서 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는 차승원은 속없는 허허실실 웃음의 폭과 깊이를 잴 줄 아는 배우처럼 보인다.

사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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