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5]
2004-10-06
사진 : 이혜정
정리 : 김도훈

3번 아이언과 폭력과의 관계?

△ 한강 중지도에서 남편인 민규(권혁호)에게 3번 아이언을 휘두르는 것을 지도하는 김기덕 감독.

정성일 l 골프채로 공을 쳐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생각한 정서적 효과는 무엇입니까.

김기덕 l 골프를 5년 전에 처음 해보면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부르주아 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섬세한 계산과 인내가 있어야 하는 운동입니다. 언젠가 골프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3번 아이언을 주제로요. 3번 아이언은 직선코스에 강하고 총알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전화번호부 책도 뚫습니다. 이것으로 공을 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테러라는 것을 떠올릴 때 생각하지 못하는 백색의 공과 반짝이는 은빛 골프채. 그것으로 폭력을 휘두르면 그 임팩트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력적인 폭력이라는 생각이지요.

정성일 l 태석과 선화가 함께 들르는 첫 번째 집은 사진작가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집에 선화의 누드 사진이 걸려 있다는 겁니다. 사진작가를 선화가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게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진작가의 집에 선화가 가는 것은 불편한 일일 테고, 모르고 찾아갔더라도 사진을 보게 되면 그 집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처음으로 잠을 자지 않습니까.

김기덕 l 우연히 들어간 집에 그 작가가 살고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지만, 무리하게 설정한 이유가 있어요. 선화는 그 누드 사진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영화 최장의 롱테이크일 겁니다. (웃음) 그날 밤에 선화는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그 사진을 잘라서 모자이크처럼 마구 뒤섞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태석이 여기에 한번 더 와서 사진을 아예 없애버립니다. 몸은 증발해버리고 마음만 남은 것이라는 뜻이지요. 이야기의 끝을 위한 계획적인 배치입니다. 모자이크도 그렇습니다. 사진을 잘라서 부위들을 뒤섞어놓으면, 누드라는 개념은 날아가버립니다.

정성일 l 이 집에서 선화는 태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발적으로 손빨래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태석은 어떤 깨달음을 공유한 것처럼 웃습니다. 유일하게 태석이 웃는 장면이고 처음으로 표정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 행위의 모방에서 선화가 태석을 따라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김기덕 l 선화도 잘못이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생을 불행하게 조장한 것을 회복해나가는 과정. 그것은 물리적 노동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정성일 l 그러니까 빨래라는 것은 일종의 정화일 수도 있습니까.

김기덕 l 부자와 결혼함으로써 나태해진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에 결탁한 자신의 일면을 반성하는 것입니다.

한옥이 주는 의미, 과거로의 회귀

정성일 l 태석과 선화가 들르는 세 번째 집, 혹은 영화에서 들르는 다섯 번째 빈집은 한옥가옥들이 늘어선 동네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집에서 비로소 안락함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보이는데요, 하나는 표면적인 것으로서 즉각적으로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전통적인 가치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거기서 가족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생각은, 이것이 일종의 시간여행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현재를 돌아다니는 이들이 블랙홀에 빠져서 과거에 빠졌다가 돌아온다는 것. 저는 감독님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에 단지 공간적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시간적 이미지에도 끌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덕 l 과거로의 회귀라는 말은 옳습니다. 현대적 전통가옥에는 과거가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선화와 우리의 과거이기도 한 지난 정서를 되찾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집은 나중에 선화가 다시 찾아가는 유일한 집이고 최초로 선화가 자신의 목적을 획득한 집입니다.

정성일 l 감독님의 영화는 공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것은 <악어>부터 그랬고 <섬>은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이후 줄기차게 공간을 일종의 감옥처럼 다루어왔습니다. <파란 대문>의 여인숙과 <나쁜 남자>의 사창가는 일종의 감옥입니다. 혹은 <해안선>의 부대가 그렇습니다. <수취인불명>의 고향은 떠나지 못하는 공간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떠 있는 절도 그렇습니다. 저는 <사마리아>가 결국 그 공간을 떠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빈 집>은 다시 공간으로 돌아오는 셈인데. 그러나 그것은 흥미롭습니다. 빈집들은 마치 여기저기 떠 있는 섬처럼 흩어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공간들이 자신의 상상력에 어떤 바탕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기덕 l 집이라는 공간은 울타리로 정의내릴 수 있으나, 저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의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역시 지금의 공간에 이유와 사건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지요. 공간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성일 l <빈 집>에서 태석이 묶여서 골프공에 맞는 장소는 한강다리 밑이었고, 이 장면은 데뷔작인 <악어>를 연상케 합니다. 어쩌면 <빈 집>은 <악어>의 다른 버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악어>의 용패가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해서 함께 사는 것과 <빈 집>에서 태석이 맞고 사는 여자 선화를 구해서 함께 빈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결국 같은 행위니까요.

김기덕 l <나쁜 남자>를 찍었던 곳과 같은 장소입니다. 저에겐 평생 가도 잊지 못할 플래시백 같은 코드가 아닐까요. 다시 거기 가야만 편해지는 그런.

정성일 l 그 장소에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까.

김기덕 l 첫 영화의 기억이지요. 그리고 가장 외로운 공간이기도 하고. 숨을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공간. 페이드인되면서 감옥으로 화면이 바뀌면 태석은 실재하지 않는 공으로 소리를 내며 공튀기기를 합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는 환상일 뿐이고, 한강 다리 아래서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지요.

10년 동안 변한 것 혹은 지켜온 것?

정성일 l <악어>를 만든 지 올해 10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11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적으로 자신의 어떤 점이 가장 변한 것 같습니까.

김기덕 l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옛날보다 자신감은 조금 더 생긴 것 같은데. 옛날에는 영화적 표현에서 콱 막혀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안도할 수 있는 결과에는 항상 도달합니다. 그래도 “정말 이것이 영화일까”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저는 불안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망치로 여기저기를 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 질문처럼, 저 자신은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욕심이 다 사라졌습니다.

정성일 l 반대로 물어보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감독님이 영화적으로 버리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감독님이 지키려고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김기덕 l 줄기차게 저예산과 언더영화 노선을 지킨다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그래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그런 노선을 지켜왔나’ 하고 돌아보면, 정말 그렇더라구요. 그렇게 끊임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가 모자를 여전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웃음) 보여주기 위한 디스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 나 스스로를 다르게 가장해서 고쳐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성일 l <빈 집>의 영화적인 진수는 태석이 감옥에 들어간 다음부터입니다. 여기서부터 진짜가 나옵니다. 감옥을 일종의 정신병원처럼 찍었는데. 그래서 같은 방에 있는 죄수들은 마치 정신병자 같습니다. 감옥의 이미지를 정신병원 이미지로 놓고 다시 영화를 시작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김기덕 l 영화는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빈집을 골라다니는 챕터, 감옥 챕터, 감옥에서 나와서의 챕터. 그리고 뒤로 갈수록 각 챕터의 길이는 점점 줄어듭니다. 감옥신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유령연습이라는 것이 갑자기 나오면 관객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의 이미지를 던져준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그런 설정에 관객이 이미 동의하고 익숙해졌으니까 정신병원의 이미지를 없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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