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기덕과 <빈 집>에 관한 모든 것 [3]
2004-10-06
사진 : 이혜정
정리 : 김도훈
정성일 평론가가 김기덕 감독과 나눈 두번째 인터뷰

9월15일 오후 3시.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말했다. “김기덕 감독이 웬 인사동? 영등포나 구로에서 만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웃음) 농담이지만 김기덕 영화의 변화를 암시하는 듯한 말이다. <빈 집>을 연상시키는, 한옥을 개조한 찻집에서 이루어진 3시간에 걸친 대화는 “베니스영화제 수상 축하합니다”로 시작해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로 끝났다. 그러므로 여기에 싣는 것은, 그 기나긴 애정표현의 일부를 간신히 추슬러 담은 여백없는 편지이자 <빈 집>의 나침반 구실을 해줄 김기덕의 첫 번째 고백일 것이다. /편집자

“10년간 나는 내 노선을 지켰다”

정성일 l 베니스영화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김기덕 l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이상 대담할 말이 남아 있나요? (웃음)

정성일 l 우리가 벌써 인터뷰를 했던 게 4년인데, 영화를 너무 빨리 찍으셔서 개정증보판을 내야 할 형편입니다. (웃음) 우선 이 인터뷰는 일종의 소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빈 집>은 아직 개봉 전이고, 이 인터뷰를 통해서 감독님이 하는 말은 나침반의 기능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가 오해되거나 위악적으로 읽히는 데 대해서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터뷰에서는 감독님의 답변이 좀더 친절하고 구체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빈 집>을 본 개인적 소견은, 저는 <빈 집>이 지금까지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습니다. 제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감독님이 자신이 만드는 영화와 함께 성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맙습니다. 물론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김기덕 l 한국에서 가장 자신감 있는 평론가 한명하고 감독 한명 여기에 있죠? (웃음)

정성일 l 감독님에게 집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기덕 l 내가 사는 집이 내 집이라는 보장은 없고, 또한 누군가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몰래 와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그의 집이고 그의 공간입니다. 이 영화에서 집의 의미는 그렇게 확장되어갑니다. 집이란 것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게 되면 의미는 커지게 됩니다. 저에게는 정신이 고요하게 안착한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정성일 l <빈 집>은 언제 촬영을 시작해서 언제 마쳤습니까?

김기덕 l 촬영일수는 16일. 횟수는 13회였습니다. 5일에 한번 정도는 쉬었고. 7월2일 시작해서 18일에 크랭크업했습니다.

정성일 l 영어 제목이〈3 Iron 〉인데. 이것은 골프에서의 3번 아이언 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두 제목이 뉘앙스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가 한국과 외국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다르기를 기대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빈 집>이라는 제목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영화에 서정성을 담는 반면〈3 Iron 〉은 폭력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혹시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결과적으로 한편의 영화로 모이게 된 것은 아닙니까.

김기덕 l 3번 아이언이 가지는 강력한 폭력성의 의미는 골프가 부르주아 운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외국에서 그 뉘앙스가 더 잘 살 것이라 생각했고, <빈 집>은 한국에서 더욱 편리하게 쓰일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일 l 그렇다면 감독님 자신은〈3 Iron 〉이 더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하는군요.

김기덕 l 그렇죠.

대사가 점점 사라지는 이유?

정성일 l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따라잡을 코드군요. 사실 <나쁜 남자>에서 한기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다음부터 갑자기 당신 작품들에서 대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독 자신의 맥락으로서의 무성영화 미학쪽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스님은 혼자 남아 있으니까 침묵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사마리아>는 죽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아버지와 딸의 여행길이니 둘이 나눌 대사가 없을 수밖에 없는데. <빈 집>의 침묵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감독님 영화에서 대사가 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혹은 점점 침묵에 이끌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요.

김기덕 l <빈 집>에서 침묵의 대상은 두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말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대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언제나 대사가 존재합니다만 가지치듯이 서서히 쳐냅니다. 일단 시나리오상 대사를 다 쓴 다음에 대사를 없애고 액션을 보강해가는 과정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나 스스로는 이미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많은 대사를 주고받은 거지요.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언어를 만들어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관객과 함께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것처럼. 국제영화제에 영화를 보러 자주 다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사를 이해 못해도 뉘앙스만으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뉘앙스나 액션이 대사 못지않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으로부터 말이 없이도 영화가 된다는 것을 천천히 배운 것 같아요. <빈 집>이 베니스에서 상영했을 때 저울 눈금이 제로가 되는 장면이 나오자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그건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능한 것이구나. 말도 안 되는 구성과 형식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구나’ 하고 말이죠.

정성일 l 대사가 없어지면서 연출에서 가장 변한 게 어떤 측면인가요.

김기덕 l 뉘앙스와 액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단순히 전화벨 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도 그냥 무심하게 사운드만 울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말이 없기 때문에 다른 표현에 관객이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단 1초라도 지루한 컷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관객은 소리와 화면과 미술에 놀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대사가 없을 때는 그 세 가지 요소에 집중하지 않으면 지루한 영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석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빨래를 하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행동은 ‘태석이 도둑이 아니다’라는 것을 대사없이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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