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포 선셋> 5인5색 감상문 - 시간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2004-11-02
글 : 문석

시간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이 영화의 후기- 결국 다시 고독의 숲으로 들어가리라

“서른 두살이 된 꿈을 꿔. 깨어나면 스물 세살의 나인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지. 하지만 그게 바로 꿈이었어.” 셀린느는 서른이 넘었고, 나름 열성적인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느는 낯선 여행지의 낭만적인 로맨스에 취해들었던 20대 초반이었고, 6개월 뒤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6개월은 현실적인 시간이었지만, 10년이란 세월은 정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구름 같은 날들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면, 20살 시절에는 서른이란 나이를 믿을 수 없었다. 노래마을의 <나이 서른에 우린>이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에도, 그건 한없이 추상적인 미래에 불과했다. 언젠가 서른이 찾아오겠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상이란 게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것에는 흔적이 남지만 여간해서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또는 외면한다. 그럼에도 시간은 무구하게 흐른다. 그러면서 세월은 우리의 몸 어딘가에 나이테처럼 분명한 상처를 남긴다. 잘라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흐름 속에서는 알 수 없지만 조금만 물러나보면 느낄 수 있다. 내 안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무게, 혹은 먼지 같은 것들을.

작가가 되어,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파리로 올 때 제시는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 셀린느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슬쩍 흘린 것처럼, 그가 책을 쓴 이유에는 그런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순수한 목적이란 없다. <프렌즈>에서 조이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월은, 그들을 망설이게 한다. 지금도 여전히, 바로 어제 일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셀린느는 조금씩 부정한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정말 그랬냐고. 자신이 여전히 과거의, 그 낭만적인 순간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쉽사리 고백하지 못한다.

사실 그렇다. 세월은,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 제시는 결혼을 했지만 허탈하고, 셀린느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떠나 결혼했다. 이제는 상처가 두려워서, 아니 더이상은 사랑에 휘둘릴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기에 쉽사리 여행지의 로맨스에 마음을 줄 수도 없다. 서른을 넘고, 중년이란 단어가 의미심장해지기 시작하면, 사랑에 망설이게 된다. 인생의 목표를 낭만적 사랑, 로맨스에 걸지 않는 이상은. 아니면 <언페이스풀>이나 <원 나잇 스탠드>처럼, 이성을 마비시키지 않는 한은.

아마도 그래서, 모든 청춘남녀의 거의 불가능한 희망사항을 실현시켜주었던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은, 니나 시몬의 대사와 몸짓을 흉내내는 셀린느의 모습으로 끝낸 것이 아닐까. 니나 시몬의 노래는 포박된 자유를 느끼게 한다. 우습게도, 자유는 묶여 있는 순간에 더 절실하고, 명백하게 느껴진다. 여자 보컬에게는 처음 전율을 느낀 목소리, 니나 시몬에게 반한 적이 있었다. 우습게도 영화 <니나>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살인병기가 된 브리지트 폰다가 날마다 듣는 레코드는 니나 시몬의 노래였다. 클래식을 전공하면서 재즈를 불렀고, 어떤 장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부르고 싶었던 노래만 불렀던 니나 시몬.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80년대 후반 재발견될 때까지 10여년간을 침묵 속에 보내야 했던 니나 시몬. 흐느적거리며, 청중에게 농담을 거는 니나 시몬의 모습은, 셀린느를 연기하는 줄리 델피의 모습에서 완벽하게 모사된다. 그 원숙한,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움. 그건 아마도 의지를 초월하는 세월의 힘일 것이다.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셀린느의 모습을 보면서, 내 귀에 겹쳐지는 노래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Easy Living>이었다. 고난과 영욕을 거치고, 더이상 크게 바라는 것도, 크게 절망할 것도 없는 노년에야 느낄 수 있는, 조금은 편안하고 나른한 일상. 젊은 날에는 결코 느낄 수 없지만, 서른이 넘어가면서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는 무엇. 20대에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30 아니 중년이 되면 싫어도 ‘숲속의 코끼리’(<이노센스>)를 봐야만 한다.

어두워진 뒤, 그들이 섹스를 했는지 마는지, 다시 로맨스가 시작되었는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든 말든, 결국은 다시 고독하게 숲속을 걸어갈 테니까.

김봉석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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