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포 선셋> 5인5색 감상문 - 니들이 정녕 연애를 돕는구나!
2004-11-02
글 : 문석

9년 만에 만난 그들의 매혹적인 후일담

삶은 계속된다. 6개월 뒤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플랫폼에서 헤어진 뒤 9년 동안 궁금증과 미련, 그리고 찬란한 기억을 머금은 채 살고 있었던 제시와 셀린느의 재회를 그리는 <비포 선셋>은 그렇게 얘기한다. 그들 각자는 작가로, 환경운동가로 살아왔고 그런저런 이성을 만나며 삶을 꾸려왔다. 하지만 9년 전 비엔나에서 보낸 낮과 밤, 그리고 새벽은 너무 소중했기에 그들 마음속 추억의 액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포 선셋>은 그렇게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됐던 감정의 보관함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단번에 풀려나오는 마술 같은 80분의 순간들이다. 근래 보기 드물게 섬세하고 내밀하며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이 영화를 본 소설가, 시인, 배우, 아나운서, 영화평론가가 짧지만 깊은 사념의 꾸러미를 보내왔다. 이 영화를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세계 또한 함께 소개한다. / 편집자

니들이 정녕 연애를 돕는구나!

이 영화의 미덕 - 연인들이 행동하게 만든다

모든 연애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합이다. 그것이 성적인 것이든 아니든 연인들은 끝내 결합하여 하나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연인들은 그와 동시에 그 궁극적인 결합을 미뤄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남자가 바로 물건을 꺼낸다면 변태 아니면 성범죄자이고 또 여자가 바로 다리를 벌리면 너무 밝히는 것이거나 전직을 의심받게 된다. 연인들은 끝내는 합체할 것이나 당장은 그것을 미뤄야 하는 딜레마 속에 있다. 연애란 그 딜레마를 다루는 아트이며 이 아트의 기본 테크닉은 내숭과 호박씨다. 합체의 지점으로 가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해야만 하는, 결론을 끝없이 부정 혹은 유보하면서 동시에 끝없이 열망하는 것. 물론 건너야 할 마지막 다리는 있다. 서로를 확인할 마지막 베일을 벗기기 위해서는 도박을 해야 한다. 바타유 식으로 말하면 그 단절의 심연에 뛰어드는 것은 죽음의 체험이기도 하다. 서로의 열매를 맛보기 직전에 존재하는 ‘블랙’을 향해 눈을 감는 순간, 만일 운이 좋다면, 지금까지의 딜레이, 허위는 깨지고 비로소 즉각적인 진실이 떠오를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니면? 아님 말고.

<비포 선셋>은 딱 그 ‘블랙’까지만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블랙은 바로 그 순간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이 난 이후에야 최고조의 긴장 상태에 도달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 긴장을 미루는 것으로 역설적인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얻는다. 또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의 내용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내숭떨면서 산책할 뿐이다. 줄리 델피는 에단 호크에게 자꾸 비행기 시간 늦었으니 가보라고 하고 에단 호크는 계속 ‘알았다’면서도 ‘모퉁이만 돌면’ 하는 식으로 줄리 델피를 따라간다. 줄리는 그런 에단을 계속해서 용인한다. 용인하면서도 또 ‘늦었지 않냐?’고 물어본다. 서로 나누는 대사의 토픽도 모순되기 일쑤다.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한 직후에 보편적인 것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늦을 듯 말 듯한 비행기 시간은 서로에게 끝을 향해 가도록 하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그런 알리바이가 없으면 내숭깔 건더기가 없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마치 붙들 나무뿌리 하나 없는 절벽을 오르는 것과 비슷해진다. 마침내 내숭과 호박씨를 타고 이야기는 굴러굴러 급기야 에단 호크가 줄리 델피의 방에까지 진출하고, 줄리는 니나 시몬의 섹시한 공연 포즈를 흉내내면서 그뒤에 이어질 행위들쪽으로 넌지시 밧줄을 던진다. 에단 호크는 이제 그것을 잡으면 되는 것인가.

바로 거기. 거기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제야 마음의 동요가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끝없는 딜레이를 지켜보던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마치 새로운 스토리가 전개될 것처럼 웅성거리며 출구를 향한다. 그 대목이 <비포 선셋>의 가장 큰 묘미이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행위’를 관객에게 던진다. 그렇게 영화의 출구와 현실의 입구가 캐치볼을 한다.

이야기의 입구에서부터 출구에까지 온갖 행위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들이 숱하다. 그런 유의 영화들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허전함이다. 폭발물이 터지고 피가 튀고 강렬한 키스와 섹스와 흩어진 머리칼, 그 모든 것의 잔해를 목격하고 극장을 나오노라면, 현실 속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비포 선셋>은 정반대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행위를,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몫으로 미룬다. 가령 이 영화는 극장문을 나서는 연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섹스는 가서 너네들이 해!”

아,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용기를 내어 블랙으로 뛰어들까. 우리는 이런 영화를 ‘도와주는 영화’라고 부른다. 이런 미덕이 있다니, <비포 선셋>은 기특도 하지.

성기완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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