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독점인터뷰[3] 이창동, 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를 말하다
2004-12-14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정리 : 박혜명

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

조선희ㅣ 저는 여행을 좀 다녀와도 처음엔 집이 낯설거든요? 집안 분위기도 낯설고 아침밥 준비해서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 것도 내 일이 아닌 거 같거든요. 근데 1년 반 만에 영화계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건데, 고향은 고향인데, 좀 낯선 느낌은 없으세요?

이창동ㅣ 전혀.

조선희ㅣ 아무런 이물감이 없으세요?

이창동ㅣ 그럼요.

조선희ㅣ 자신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사람들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것, 어려워하는 건 없어요? 저도 예전엔 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장관 하시고 나선 아주 어려워 죽겠는데요. (웃음)

이창동ㅣ 영화계 사람들은 괜찮아요. 나를 다르게 보지 않아요. 근데 일상적으론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심각해요, 나한테. 물론 예상은 했었어요.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걱정돼서 가능하면 안 하려 그랬죠. 공직을 하기 전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만큼 자유로웠던 거죠, 책임감도 없고. 이번엔 좀 달라요. 사람들 시선에서 느낀다고. 굉장히 예민하게 찔러요. 아파요. 차라리 영화판 사람들 만나면 편해져요. 좀 숨쉴 만해.

조선희ㅣ 가령 어떤 식으로요? 백화점 가면 알아본다, 대중목욕탕 못 간다, 그런 종류예요?

이창동ㅣ 사실 그런 데 간들 어쩌겠어요? 하지만 그냥 얼굴 팔리는 사람하고는 좀 달라요. 신경쓰이는 거야, 내 행동이. 그러니까 이제 가기 싫어지는 거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기가 싫어지는 거지. 조금 시간이 더 걸려야 할 거라고 봐요.

조선희ㅣ 감독 일을 하는 데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가요? 가령 김운경 작가 같은 경우는 사진을 절대 안 찍히려 하더군요. 만날 서민 드라마를 쓰니까, 어디 시장 가서 난전에 끼어들어 얘기도 하고 이런 식인데 얼굴이 알려지면 점점 누비고 다닐 공간이 없어진다는 거죠. 그런 식의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창동ㅣ 그건 옛날부터 그랬지만, 공직을 맡은 뒤엔 그것과는 성격이 달라졌다는 거죠. 이미 사람들이 관찰, 비판할 준비가 돼 있어요. 눈길이 그래요. 그걸 내가 부담으로 느껴요.

조선희ㅣ 어디서 어벙하게 있는 시간이 허용이 안 되겠죠.

이창동ㅣ 그렇죠. 그리고 때때로 신경을 써줘요. 안 써줬으면 좋겠는데. 최근 뉴욕에 갈 때 이코노미를 타고 갔거든요. 전에도 이코노미 타고 다녔잖아. 근데 이젠 좀 불편하드라고요. 자꾸 신경을 쓰잖아요.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되는 사람 대하듯이. 그럼 점점 불편해지는 거죠. 또 아마 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특권의식이라고 그럴까? 사람 몸이 간사하거든요. 자기 분에 맞지 않는 사치와 허영, 이런 걸 한번 맛보면 얼마나 치명적인가. 가능하면 경험 안 하는 게 좋지.

조선희ㅣ 예전에 <키노> 폐간호에 박광수 감독하고 대담하셨잖아요. 장관 되고 불과 얼마 안 될 때였는데 박광수 감독이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나?’ 그랬더니 ‘이 사람이 날 뭘로 보나. 9시 뉴스에 5분만 나와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아봐’ 하고 대답한 게 기억나요.

이창동ㅣ 내가 장관할 때, 특히 초기엔, 100명 중에 99명이 알아봐. 신경 안 쓰는 사람 하나 빼고. 요즘에 좀 덜해요. 노출빈도를 줄였거든요. 이거 그만두고 처음 하는 인터뷰거든요. 사실 부담 많이 돼. 어떻게 다른 인터뷰들을 다 거절하나….관료로서의 성과와 아쉬움

조선희ㅣ 감독이란 게 거의 반백수의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데 공무원은 ‘nine to five’잖아요. 그거 쉽게 적응이 되셨어요?

이창동ㅣ ‘nine to twelve’, 아니 ‘six to twelve’였죠. 적응이 안 되지. 끝날 때까지 안 되지. 그런데 그만두고 그 다음날 되니까, 바로 옛날 리듬이 돌아오더만. 그러니까 신체 리듬은 원래대로 머물러 있었던 거 같아. 새벽에 눈이 딱 떠질 줄 알았아요. 그런데 안 떠지데.

조선희ㅣ 그러니까 해외여행 가면 일주일이건 열흘이건 시차적응이 안 돼서 시달리다가 돌아와서 하룻밤만 자면 원래대로 돌아오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 같아요. 이창동 선배는 처음엔 장관직을 거절도 했고 취임 뒤에도 계속 미스캐스팅이다 그랬지만 1년 반 동안 영화 만들 때의 완벽주의로 일중독에 빠졌던 것 아닌가요?

이창동ㅣ 의무감, 책임감이 있으니까. 농땡이 부릴 수 없죠. 책임….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는 책임감 중에 그 정도 무게의 책임감이란 드물죠.

조선희ㅣ 그런 면에서는 해볼 만한 일 아니에요? 생각이 있으면서도 전혀 시스템을 바꿀 수 없는 게 대부분의 사람인데, 자기 생각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간 거잖아요. 그게 권력인 거잖아요. 해볼 만한 거 아니에요?

이창동ㅣ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 있죠. 뭐, 공익근무다, 라고 생각을 했고, 받아들일 때 온갖 상념이 왜 없었겠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괜히 양복 입고 왔다갔다하고, 오래하지도 못할 텐데.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했죠. 솔직히 말하면 확신없이 시작했어요. 근데, 우리 문화예술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거기 따르는 여러 가지 정책적 수단이랄까, 구체적 플랜을 정리해본 적 없다는 것. 내가 있는 동안에 그 틀은 잡아보자, 라고 생각했죠. 그것만 하더라도 최소한의 역할은 한 것 아닌가, 판단이 든 거죠.

조선희ㅣ 그걸 뭉뚱그려서 개혁정책,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죠?

이창동ㅣ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정책의 어떤 틀, 이것을 문화관광부 직원들에게도 주문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도 같이 이야기해서 만들고 싶었어요. 방향도 방향이지만, 구체적인 정책적 수단과 일정, 일정표, 말하자면 지도가 필요한 거죠. 그걸 책자로 만들면, 굉장히 디테일한 것까지 담아야 하니까, 서울시 전화번호부, 적어도 그보다 더 두꺼워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한번은 다 정리를 한 거 같아요.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 두권을. 모르긴 해도, 앞으로는 그 방향으로 나갈 거예요.

조선희ㅣ 두권의 책 제목은 뭐죠?

이창동ㅣ 하나는 <창의한국>이고, 하나는 <예술의 힘>. 하나는 문화전반에 걸친 건데, 여러 가지 중에 가장 높은 가치를 창의라고 생각한 거고, 또 하나는 기초예술이 힘을 가져야 우리 삶의 질이 총체적으로 높아진다는 거죠.

조선희ㅣ 문화부의 터줏대감, 오랫동안 거기서 뼈가 굵어온 관료들로서는 지금까지 해온 관행을 고치는 것일 수 있잖아요. 근데 그걸 관료집단이 잘 받아들이던가요?

이창동ㅣ 처음엔, 제가 생각하기엔 상당한 저항, 이라기보다는 불편함이랄까, 좀 이질적인 것이 있었죠. 인터넷에 올린 취임사도 한동안 시비가 많았잖아요. ‘조폭문화’ 그런 표현도 전혀 모멸적으로 쓰려고 한 말이 아니고요, 공무원사회의 문화가 일반 국민들 문화와 격리돼 있는 걸 비유적으로 한 말이에요. 근데 차츰, 상당히 많이 받아들였고, 내부로부터 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정부 부처 중에서 문화관광부가 가장 변화를, 자발적으로, 주동적으로, 하고 있을 거라고 난 자부해요. 최근에 정부에서 혁신평가를 했는데 문광부가 유일하게 통과했대.

조선희ㅣ 그럴 수 있겠네요. 어디나, 진짜, 핵심부서거나 핵심부처거나 하는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너무 강해서 자기네 관행을 죽어도 안 고치려고 들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문화부쪽의 공무원 집단이 더 유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변방에서 혁명이 싹튼다고.

이창동ㅣ 그런 측면도 있고. 아무래도 문광부가 좀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조선희ㅣ 어떤 일들은 마무리하고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으세요?

이창동ㅣ 많죠. 근데, 문화에 관한 건 답이 금방 안 나오거든요. 어쨌든 일단락짓자고 생각했던 것들이 몇개 있었죠. 일단 지방문화들을 지금 상태에서 묶어두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지방문화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키려면 일단 돈이 필요하거든요. 연간 1천억원 정도는 있어야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겠는데, 지역에선 주로 건물 짓고 길 닦고 이런 데 돈을 써요. 막판에 그 재원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썼죠.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있어요. 한국사회의 문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의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해요. 한국의 학교교육엔 예술교육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술을 안 배우고는 창의성은 고사하고 대체, 무슨, 사회성이랄까, 인간으로서 능력을 못 갖춘다고. 하지만 교육부가 있기 때문에 문광부에서 하기 참 어렵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틀은 만들어야겠다, 뭐 그런 거죠. 그런 것들에 일단 열쇠는 꽂았다고 생각해요.

조선희ㅣ 새 장관이 이어서 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창동ㅣ 다 나와 있어요, 전화번호부에. (웃음)

조선희ㅣ 후임자가 불쏘시개 하지 않을까요?

이창동ㅣ 지금 정동채 장관께서도 그 틀 위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수행해가느냐의 인식이 굉장히 강한 분이에요. 그 틀을 제가 만든 게 아니고, 문광부 직원들과 현장사람들까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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