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독점인터뷰[6] 돌아온 이창동 감독,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었다
2004-12-14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정리 : 박혜명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조선희 l 이창동 선배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애정있고 낙관적인 데가 있어요. 김영호가 고통받고 망가지는 것도 그 사람에게 어떤 맑은 심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홍종두도 그렇고. 지금까지는 굉장히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즐겨왔지만 결국은 밝고 낙관적인 영화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창동 l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낙관하지. 인간에 대해. 한국사회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거라고 봐요. 사람들 하나하나의 내면은 뭔가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어떤 어두운 걸 통과해야 해요. 어둠을 통해서 빛을 본다고 할까. 그게 예술체험의 과정이랄까. 아까 분열을 말했는데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에 분열을 갖고 있다고 봐요. 영화감독도 굉장히 많은 다중인격적인 게 있어야 돼. 그러니 분열을 받아들이세요. (웃음) 나는 장관도 내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속에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실제 경험해보니까 약간 심하더라.

조선희 l 이창동 감독처럼 결벽증적인 작가를 문광부 장관으로 끌어갈 수 있는 게 우리 시대가 재밌는 점이에요. 삼대에 덕이 쌓여야 집안에 뭐가 된다고, 김영삼부터 진보정권의 시작으로 본다면 김대중하고 노무현까지 삼대가 쌓여서 이렇게 권력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다 캐스팅된 것 아니겠어요?

이창동 l 내가 안에 들어가보니까 이 정부의 구성원들이, 정권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성향이 많더라고. 권력을 싫어하는 것. 근데 바깥에서는 그렇게 안 보지. 자기들 눈으로 보니까. 어쨌든 우리 사회가 변화해가는 중요한 징표랄까. 권력에 대한 생각까지도 바뀐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조선희 l 장관 한번 하면 평생 연금 나오나요?

이창동 l 안 나와요. 연금이 없어졌어.

조선희 l 정말? 나는 이제 이창동 감독이 노났는 줄 알았는데. 언제 없어졌어요?

이창동 l 글쎄. 국민의 정부 땐가. 품위 유지비조차 안 나와요.

조선희 l 하지만 영상원 교수 월급이 있잖아요. 공무원 월급이지만.

이창동 l 그걸로 적자 면하고 살기는 어렵지.

조선희 l 그러면 작품이라도 빨리 찍어야 할 텐데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올까요. 내년쯤?

이창동 l 모르겠어요. 사실은 소설을 쓰고 있거든. 몰라, 끝냈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절반도 안 됐는데.

조선희 l 영화로 만들 걸 소설로 쓰는 거예요?

이창동 l 그건 아니고. 공무원 생활하면서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언어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은 언어가 가진 환기력을 수단으로 삼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걸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근데 너무 오랫동안 안 해서 다 까먹었어요.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과거에도 잘 못썼지만. 거의 실어증 환자가 말 배우는 수준이야. 시네마서비스에서 알면 화낼 텐데. 계약금 받아먹고 말이야.

조선희 l 어쩔 수 없이 이창동 감독이 문자세대라는 게 아닐까요.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또 영화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고.

“한국 영화산업의 비만이 우려된다”

인터뷰가 끝나고 동석했던 기자가 한국 영화계의 몇 가지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 대목은 인터뷰 흐름과 끊어지는 관계로 따로 정리한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여유가 생긴 뒤에 본 한국영화는.

=몇개 봤다. <살인의 추억>도 나중에 봤고, <범죄의 재구성>도 나중에. <올드보이>도 나중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나중에. 그 밖에 본 영화가 더러 있고. 영화 잘 만들었데. 정말로. (웃음)

-나라 안팎에서 다들 한국 영화산업이 잘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지.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모두가 잘 나가는 것처럼. 상당히 힘도 있고. 근데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안에 문제도 많다. 위험한 요인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하는 비유로 성인병이랄까. 비만 때문에 생기는.

-시네마서비스와 CJ의 양강체제가 무너진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한 것인가.

=걱정스럽다. 꼭 영화계가 아니더라도 독점 또는 독점에 유사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건 위험하다. 결국은 내적 경쟁력을 떨어뜨리니까. 근데 영화계는 다른 산업과 달리 훨씬 심각하다. 다른 산업과 달라서 영화는 투자, 제작, 배급, 극장까지 한줄로 엮여 있고, 제작된 상품을 유통시키는 게 아니라 배급 또는 마케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게 영화산업의 특징이다. 그래서 영화산업의 독점적 요소는 굉장히 심각할 수 있다.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

-스크린쿼터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그 문제는 나오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정리했는데(쿼터가 한-미투자협정(BIT 등)과 직접 연관성이 없으며 주체적 정책 판단에 의해서만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쿼터 이외의 종합적인 영화산업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것,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라고 판단되면 쿼터제를 회복하는 연동제 방식), 그 이상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 내부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고, 더구나 이것이 협상의 대상이어서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좋지 않다.

-그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영화계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가능할 수 있다. 그중에 연동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미리부터 안 된다고 못 박을 필요는 없다.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영화계의 협상 당사자들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웃음)

-감독이 영화의 지분 일부를 가지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크게 봐서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변화과정이라고 본다. 우리 제작 시스템이 독특하다. 자연적으로 형성됐다기보다는 특별한 사정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이를테면 원래의 전통적인 산업기반은 미국 직배로 무너졌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들어오고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다. 어쨌든 여러 요인이 축적돼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일단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용을 좀 줄이고 제작과정의 허수를 없애기 위한 변화과정으로 보고 있다. 투자사가 아주 큰 규모로 회사를 운영하고, 제작사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돈은 모두 투자사로부터 온다. 그 구조에 뭔가 낭비적인 게 많다. 제작 시스템을 더 콤팩트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감독들이 스스로 제작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음, 굉장히 많은 걸 생략하고 말해서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디지털 등 제작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신작의 형식에 이전과 다른 어떤 변화를 줄 여지는.

=크게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기껏 고민하는 게 장사가 안 되는 영화일수록 제작비를 낮춰야 한다는 게 기본적 고민이다. 테크놀로지는 나도 고민은 한다. 디지털이 좋아서가 아니라 표현방식에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알다시피 뭘 찍을지도 모르는데 방법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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