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 <밀양>, 회수를 건너 <선샤인 스트리트>로
조선희ㅣ 차기작에 대해서 얘기들이 벌써 나오던데요. 강우석 감독이 돈 대기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벌써 시나리오가 나왔다고도 하고. 어떤 기사 보니까 제목이 <선샤인 스트리트>인데 40대 여자 이야기다,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난무하던데….
이창동ㅣ (웃음) 내가 공무원 되기 전에 좀 생각하던 게 있었어요. 제목이 <밀양>, 경남 밀양. 영어로 하면 ‘secret sunshine’이에요. 실제론 빽빽하다는 밀(密)자인데, 햇볕이 좋단 말이지. 거기 강가에 서 있으면 햇볕이 좋다는 느낌이 들거든. 제목이 <밀양>이 뭐냐고 해서 ‘시크릿 선샤인’ 하면 영어제목은 괜찮다고 농담처럼 했는데 그걸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가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걸 ‘선샤인 스트리트’로 잘못 들은 거고, 누구는 ‘선샤인 불리바드’라고도 그러고.
조선희ㅣ 그럼 그걸 영화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이창동ㅣ 아직 윤곽만 있죠. 근데, 한 가지 맘에 걸리는 게 있는데, 너무 대중성이 없다고 그럴까. 뭐 언제는 대중성이 있었나 그러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언제나 장사에 신경썼어요. 장사에 신경썼다는 말뜻 그대로이기도 하고, 대중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엔 좀 위험해. 그래서 그냥 한구석에 놓아두고 있죠.
조선희ㅣ 새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 그게 될 가능성이 많은 거네요.
이창동ㅣ 그럴지도 모르죠.
조선희ㅣ 근데 왜 밀양이에요?
이창동ㅣ 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 한국사회의 아주 전형적인 소도시가 거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어디가 돼도 상관은 없죠. 그냥, 밀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거죠. 그럼 전형적인 소도시란 어떤 거냐. 일단, 환경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해요. 과거에는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이미 사라졌어요. 품위도 없어졌고. 굉장히 속물화돼 있어요. 대도시보다 살기만 불편할 뿐 시골이 주는 편안함이라든가 여유라든가 그런 건 없죠. 그래서 왜 이런 곳에 사는지 모르는 그런 도시, 그런 소도시가 필요했던 거예요. 영어 이름도 좋고. (웃음)
조선희ㅣ 한문 이름도 좋고. 밀양에 사신 적 있어요?
이창동ㅣ 옛날에 몇번의 추억이 있죠.
조선희ㅣ 너무 흥행성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 최소한의 멜로도 안 나온다는 거예요?
이창동ㅣ 멜로 아니에요. (웃음) <오아시스> 멜로, <초록물고기> 멜로, <박하사탕>도 멜로예요. 멜로 감독이잖아. 이번엔 멜로가 아니에요. 멜로의 구조가 아니에요. ‘nothing happen’이 문제죠.
조선희ㅣ 근데 제가 <박하사탕> 시놉을 보고는 ‘야,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겠다 그러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오아시스>도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하고 전과자 얘길 누가 보려고 하겠어, 그랬거든요. 하지만 결국 소재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관객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 이창동 방식의 이야기를 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창동ㅣ 일단 대중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말은 접수하기가 어렵고, 대중과 수준은 연결이 안 되는 말이에요. 어쨌든 세 영화가 다 대중적 이야기구조가 있어요. 그건 의도적이었고, 아주 쉽게 소통할 생각은 없었지만, 까다로운 방식으로 소통을 해보자, 마치 장애물 경기를 하는 것같이. 장애물을 많이 만들지만 넘어올 걸 예상하고 만들죠. 장애물 넘는 희열을 생각하면서. 근데 이번 경우는 그런 구조가 없는 거 같아. 그래서 해보고 싶어요, 사실은. 영화에 대한 질문을 내 나름대로 해온 편인데, 좀 다른 방식의 질문을 하고 싶은 거죠.
조선희ㅣ 주인공이 여럿인가요?
이창동ㅣ 으응, 한 사람 이야기예요. 여자인데. 윤곽밖에 없기 때문에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이 아주 심하게 고통받아요. 정신적 고통. 그럴 때 그의 삶을 무엇이 구원해주느냐, 하는 질문이죠. 영화가 그것을, 그 질문을 드러낼 수 있나? 뭐 그런 거예요. 우리 삶이 그렇듯이, 특별할 것도, 어디 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 공간, 그런 삶의 조건에서,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해답은 있나? 뭐 그런 이야기죠. (웃음)
조선희ㅣ 그 얘기는 진짜 소설적이란 생각이 드는데, 누구 얘기론 그걸 소설로 먼저 쓴다는 말도 있대요.
이창동ㅣ 그런 소설이 있어요. 원작이.
조선희ㅣ 원작이 뭐죠?
이창동ㅣ 이야기 안 할래요. 아직 작가한테 판권 얘길 안 한 상태라.
조선희ㅣ 국내 소설이에요, 외국 소설이에요?
이창동ㅣ 국내 소설인데, 소설은 좀 달라요. 이야기의 아주 기본적 얼개만 그 소설에 있다는 거죠.
조선희ㅣ 이스트필름에서 만들게 되나요?
이창동ㅣ 아마도.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조선희ㅣ 거기에 강우석 감독이 돈을 댄다, 그런 거로군요.
이창동ㅣ 계약금 받았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근데, 걱정이 돼서 돈을 못 쓰겠더라고. 돌려줄 때가 되면 돌려줘야 하니까.
조선희ㅣ 이 영화는 좀 부담스럽다 그러시는데, 제일 걱정되는 게 뭐예요? 관객이 안 봐주는 것, 투자자들한테 손해 끼치는 것, 이스트필름이 망하는 것. 어떤 거예요?
이창동ㅣ 이스트필름은 안 망해요. 이미 망했기 때문에. (웃음) 한국 영화제작 시스템이 영화가 손해 봐도 제작자는 안 망하잖아요.
조선희ㅣ 투자자들이 떠안죠. 근데, 제작사는 능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 손상을 입겠죠.
이창동ㅣ 영화가 망하면 날 욕하지 제작자를 욕하겠어요? 그러니까 대중과의 교감이라는 것과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게 별개가 아니에요. 한 덩어리로 얽혀 있어요.
조선희ㅣ 이 영화 말고 의중에 두고 있는 다른 하나는 뭐예요?
이창동ㅣ 뭐가 하나 있긴 있는데 얘기 안 할래. 아웃되기 전에 사고 한번 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