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친근하지만 너무 익숙한 설정, <엘렉트라>
2005-01-18
글 : 박은영
분가한 엘렉트라, 몸은 덜 쓰고 생각은 많이 한다.

시력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과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어둠의 전사의 활약상 <데어데블>에서 ‘슈퍼히어로의 여자’ 엘렉트라의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빨간 가죽 코르셋과 바지 차림으로, 삼지창 모양의 단검을 휘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밤마다 ‘데어데블’로 변신한다는 것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 그 ‘데어데블’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너무 늦게 알았다. 영화의 채도를 높이기 위해 곁들인 여성 조연치고는, 감정의 깊이와 재능의 무게가 남달랐던 것. <데어데블>의 말미에 암시된 것처럼 엘렉트라는 살아났다. <데어데블> 속편 제작이 요원해진 반면, 그 ‘외전’인 <엘렉트라>는 제때 돌아와 주었다.

<엘렉트라>는 ‘부활’을 기점으로, 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데어데블>의 흔적은 전편에서 기사회생한 엘렉트라의 기본 캐릭터 정도. 삶과 죽음까지 다스리는 키마쿠레 무술의 달인 스틱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엘렉트라(제니퍼 가너)는 더욱 막강한 무공의 소유자로 거듭난다. 문제는 그녀의 분노와 복수심. “폭력과 고통은 알지만, 도는 모른다”며 스틱의 조직에서 추방된 엘렉트라는 청부살인자로 일하던 중, 마크와 에비 부녀를 만나면서, 키리기(윌 윤 리)가 이끄는 범죄조직 핸드와 맞서게 된다. 에비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엘렉트라는 절체절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마블 코믹스 가문의 또 다른 자손인 <엘렉트라>는 엘렉트라의 살인청부업자로서의 삶을 다룬 <엘렉트라: 암살자>, 그녀가 부활하는 과정을 그린 <엘렉트라 되살아나다>를 비롯, 엘렉트라가 직간접적으로 언급된 시리즈들을 아울러 스토리를 구성했다. <엘렉트라>는 모태였던 영화 <데어데블>과의 친연성이 별로 없는 대신, 죽음의 문턱을 넘은 어두운 캐릭터라는 점에서는 <크로우>를, 초인적인 무공을 지닌 고수들이 착한 팀과 나쁜 팀으로 편을 갈라 싸운다는 구도는 <엑스맨>을 닮아 있다. 친근하지만 너무 익숙한 설정. 결정적으로 <엘렉트라>는 세상을 평정할 절대 고수 여전사의 전설과 엘렉트라의 불우한 과거를 겹쳐놓고 ‘신비’와 ‘감성’을 덧칠하면서부터 길을 잃었다. 액션을 즐기자니 시간이 느리게 가고, 감정을 따라가자니 인물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볼거리는 개인기에 따른 액션. <엘리아스>나 <데어데블> 시절보다 더 많은 근육이 붙은 제니퍼 가너의 몸놀림은 유연하고 날렵하지만, 하이라이트라고 꼽을 만한 액션이 드문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키마구레의 수도자 키리기, 돌보다 강한 근육의 스톤, 몸에 새긴 맹수 문신을 살려내는 타투, 숨결과 손길로 독을 뿜는 타이포이드 등 악당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한데, 여기서 촌스러운 질문. 어두운 무술을 구사하는 악당들이 모두 유색인종인 건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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