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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존 포드 드라마의 절정, <분노의 포도>
2005-02-25

서부영화의 대가로 알려진 존 포드는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도 일가견이 있다(그에게 네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들은 서부영화가 아니다). <분노의 포도>는 <밀고자>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마지막 함성>에 이르는 존 포드 드라마의 정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과 한발과 지주와 은행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고향 오클라호마를 등지게 된 조우드 일가가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서 겪는 고난의 기록이다(존 스타인벡은 원작에서 ‘배고픔과 공포는 분노를 낳는다’고 써놓았다). 중심인물인 톰 역의 헨리 폰다는 포드의 전작들에서 맡았던 다소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 갓 출소한 범죄자로 등장한다. 형무소에서 사회와 가족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가족을 떠나야 하는 그는 포드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포드의 <황야의 결투>와 <분노의 포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주인공, 공동체, 무도회가 나란히 등장하지만, 와이어트 어프와 톰 조우드 역을 맡은 헨리 폰다의 모습이 상이한 것처럼 결말에 이어질 그들의 삶 또한 같지 않을 것임이 짐작된다. 톰은 고통을 겪고 사회와 부딪히면서도 현실과 사회와 인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데, 이상향의 상실이라는 낭만적 정서가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바뀌는 동안 성난 얼굴로 마주한 아들을 감싸는 건 어머니의 존재다.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구약성서에 비유되곤 한다. 굳이 포도와 핍박받는 자들의 이주를 대지 않더라도, 아기를 사산한 톰의 누이가 죽어가는 낯선 노인에게 젖을 물리는 소설의 결말은 구원에 대한 믿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포드의 <분노의 포도>에서 실의에 찬 남편과 가족을 이끌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톰의 어머니는 더이상 적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에 대한 의지가 넘친다. ‘딱 다물어진 그녀의 입술은 신비스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고 스타인벡이 마지막에 썼듯이 포드의 영화는 어머니의 미소로 끝맺는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내 어머니의 미소>를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젠 알 것 같다. ‘어머니의 미소’는 생명에 대한 약속이었다. 톰의 어머니는 말했다. “남자는 깡충깡충 뛰면서 살지만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흘러가는 물줄기 같아요. 우리의 삶은 계속돼요”라고. 여기에 그렉 톨렌드가 <폭풍의 언덕>과 <시민 케인> 사이에 창조한 영상은 영화의 가치를 더한다. 인간의 눈 깊숙이 자리한 영혼을 들여다본 그의 카메라는 DVD에서도 충실히 재현되고 있다.

글: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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