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와 감독 퍼시 애들론이 참여한 <바그다드 카페>의 코멘터리는 청자에 따라 호오가 분명하게 엇갈릴 법하다. 애들론이 촬영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할라치면 제게브레히트가 잽싸게 화제를 가로채 삼천포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절반 정도는 화면과 관련이 있지만 나머지는 자신의 인생 철학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이를테면 ‘예전엔 배역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좀 알겠어. 그런 것들을 초월해서 세상의 음과 양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어’ 라든가 ‘안 되는 것은 안 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장면에서 떠오른 관념적인 영감에 대해 몇 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작품에 대해 날카로운 해석을 던져주기도 한다. 잭 팔란스를 두고 촬영장에서 ‘당신 안엔 여자가 있어요’라고 말해 노배우를 기겁하게 했던 일화는 배역에 앞서 그 안의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노련한 연기자답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청자라면 조금 실망하겠지만, 삭막한 사막 위의 카페에 온기를 불어넣었던 야스민이라는 영화 속 인물과 무슨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제게브레히트의 괄괄함은 묘하게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연기 역시 인생의 연장이라고 믿는 한 배우의 철학에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십 몇 년 동안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또 보아왔던 골수팬들이라면 DVD에 수록된 주연 배우와 감독의 육성 해설은 틀림없이 그 자체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