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뻥쟁이들의 영화
늦은 밤 집으로 들어온 엄마가 배가 고프다며 뭔가를 먹고 있다. 입에 국수 자락을 문 채로 고개를 돌리는 엄마의 얼굴이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기괴하다. 순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아들, 그뒤를 플래시맨처럼 달려 쫓아가는 엄마. 다행이다. 꿈이었다. <다섯은 너무 많아>의 첫 장면은 소년 동규의 꿈에서 시작된다. 그에게 엄마는 낯설고 공포스런 존재다. 피를 나눴다는 이유로 무조건 희생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가족의 굴레가 그에겐 답답하다. 뛰쳐나왔지만, 아직 홀로 설 수 없는 그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가출 청소년, 불법 체류자, 파산한 자영업자, 처녀 가장 등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 대안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다. 가출한 동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 업소를 단속하는 ‘환파라치’가 되기로 한다. 인근 도시락집을 타깃으로 정한 그는 점원 시내와 승강이를 벌이다 그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다. 몇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옌볜 처녀 영희의 딱한 사정을 접한 시내는 그를 거두기로 하는데, 파산한 영희의 고용주까지 시내의 자취방으로 흘러들면서, 네 남녀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다.
안슬기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다섯은 너무 많아>는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고 기대는 연대드라마”다. 동규 역의 배우 유형근은 다른 표현으로 “착한 뻥쟁이들의 영화”라고 소개한다. 자기 자신의 가치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아니 박탈당한 이들이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보듬는 이야기. 사회의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자칫 무겁고 어두워질 수 있지만, 감독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발랄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엄마가 기괴하게 등장하는 꿈이나 적들에게 복수하는 에피소드처럼 톤이 튀는 판타지 요소들이 아니더라도, 영화는 그 자체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현실 속의 판타지이고 성인들의 동화다. 실제로 이런 공동체가 어디 있을까마는 이런 가족 판타지의 위무가 필요할 만큼 각박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안슬기 감독 인터뷰
“학교에선 감독, 밖에선 선생으로 통한다”
-학교 교사이면서 벌써 여러 편의 중·단편을 만들었고, 이제 장편 데뷔도 했다.
=극장으로 교외 지도 나가던 아버지 따라다니다 영화에 빠졌다. 아버지 권유로 수학 교사가 됐지만, 이런저런 영화제작 학교에 다니다 1999년부터 영화란 걸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교사라서 어려운 건 없다. 영화제작반 애들이 모니터도 해주고, 동료 교사들도 많이 양해해준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에선 ‘안 감독’으로, 밖에선 ‘안 선생’으로 불린다.
-추운 겨울에 달동네에서 시간에 쫓기며 촬영했다고 들었다.
=1월에 20일 동안 촬영했다. 초반에 윗집에서 불나고, 아랫집에 이사 들어오고 해서 스탭들이 나서서 돕기도 했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추운데 잠도 못 자고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좁은 자취방이 주무대라서 힘든 점도 있었다. 주연 넷에 조연 둘까지 가세한 장면은 우리끼리 몹신(군중신)이라고 불렀다.
-대안가족 이야기면서, 마이너리티 이야기다.
=그렇다. 주인공들의 적이 되는 이들도 메이저는 아니다. 마이너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반대편에 선 이들은 이재에 밝아서 남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을 응징하고 싶었달까.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꾸린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동규의 성장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가족에서의 그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혁명적 대안가족은 아닌 셈이다. 혈연 관계가 없는 이들과 함께 가족의 형태로 살면서,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안착한 것이다. 고지식하게 말하면, 나는 가족의 구심점인 시내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고, 그래서 각자의 길을 가게 했다. 관계에 대한 믿음은 간직한 채로.
-엄마에 대한 꿈이나 복수장면은 판타지의 느낌이 두드러진다.
=꿈은 영화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라 스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겨두었다. 나랑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 생경함을 형상화한 것이고, 동규의 가출 원인이기도 한다. 복수도 워낙 튀는 사건이기 때문에 유치해 보이더라도 재미나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이 제너레이션>에 사채업자로 출연했다. 그 장면을 이 영화에 음향으로 삽입했던데.
=나도 출연 좀 해보려고 그랬다. (웃음) 사실 캐스팅이 안 돼 직접 출연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장편 연출이 처음이라 부담스러웠다. 극장장면이 필요한데, 마땅히 넣을 영화가 없어서 친분이 있는 노동석 감독에게 양해를 구했다.
-영진위 제작지원작이지만 독립적으로 장편을 제작하기가 수월치 않았을 텐데.
=영진위에서 1900만원을 받았고, 나머지 제작비는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 덕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조달했다. 자금이 넉넉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워낙 소박한 영화이기도 하고, 연기연출이나 세팅을 고려하면 디지털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어차피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에 매체가 무엇이든 다 똑같이 힘든 일 같다. 장편이라서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배급 통로가 다양하지 못해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