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누아르의 새 별들 [4] - 숀 펜
2000-04-1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세상의 악취를 맡아볼래?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성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모르는 척 눈감아버리는 타협? 아니면 지배하는 자들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진입하려는 욕망? 이 두 가지 선택을 모두 거부한다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을 날겠다는 피터팬의 순진무구한 꿈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에 대한 환멸 때문에 자신의 키를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고정시킨 <양철북>의 난쟁이, 절망하는 오스카에 가깝다. 세살 때 계단에서 굴러떨어짐으로써 스스로 성장을 포기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른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던 오스카. 젊은 시절, 난폭하기로 이름 높았던 숀 펜(39)의 거친 기질이나 기존의 질서를 거스르면서 나가는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 오스카를 연상시킨다. 숀 펜은 피터팬처럼 아버지들의 세계를 떠나버리지 않는다. 그는 오스카처럼 알 것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버지의 땅, 미국을 응시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 권력과 이해관계, 소비와 순응이 엉키면서 돌아가는 그곳에서 고집스러운 숀 펜은 뒤틀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어쩌면, 뒤틀린 것은 우리의 시선일지 모른다.

아버지의 폭력과 아들의 보복이 충돌하는 <폐쇄구역>은 26살의 앳된 숀 펜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젊은 세대의 타락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묻는 영화다. 자신의 친구들을 살해한 범죄자 아버지를 차마 직접 응징하지 못하고 법정 증언대에 선 숀 펜의 눈은 텅 비어 있다. “그는 우리 아버지예요”라고 말하며 멍해지는 숀 펜. 그는 한때 동경했던 아버지의 폭력을 더이상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불안하게 떨리는 그 눈동자 앞에서 미국의 자유와 평등은 설 자리가 없다. 뉴욕 빈민가에서 자멸로 향해 가는 <헬스 키친>. 그 영화에서도 숀 펜의 갸름하게 튀어나온 턱과 심술궂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그늘없는 금발 미소년들이 구현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헛수작으로 주저앉힌다. 누군가에게 빛이 쏠리면 다른 사람의 그림자는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그늘 속에 웅크린 숀 펜은 빛의 허상을 안다. 조롱에 찬 그의 얼굴은 비열한 기질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항상 범죄와 가까웠던 숀 펜은 서른다섯이 되어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살인자로 정착했다.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했으면서도 뉘우치는 기색이라고는 없는 <데드맨 워킹>의 매튜는 자신의 목숨만큼은 너무도 아까워 한다. 숀 펜은 조금도 동정할 값어치가 없는 인간으로 그를 재현하면서도 한 사람의 생명이 또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인지를 침착하게 묻는다. 오랜 친구를 팔아넘기는 <칼리토>의 변호사 데이비드에게서도 숀 펜은 비천한 근성과 함께 살기 위한 몸부림을 건져낸다. 올리버 스톤의 느와르 <유턴>에 이르면, 숀 펜은 물고물리는 욕망의 사슬에 묶여 선과 악의 경계마저 잃어버린다. 달아오른 사막의 열기에 사로잡힌 그는 동정과 배신을 동시에 자행한다. 한가지 성질로 인간을 정의할 수 있다는 착각을 깨뜨리는 것이다.

숀펜에게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 개인의 경험 뒤에 숨은 사회적 구조를 폭로하는 숀 펜. 어두운 곳에 서서 희미한 반사광을 되쏘아내는 숀 펜은 사람 사는 세상의 구석구석을 들쑤신다. 준비가 된 관객이라면 그 성난 몸짓이 불러내는 세상의 악취를 기꺼이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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