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단기간에 인기 시트콤으로 부상한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
2000-04-04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나, 웃고 있니?

4월, 드디어 봄이 왔다. 봄비도 내렸고 조금만 있으면 꽃들도 사방천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하지만 우울하다. 변화없는 일상의 초라함이 풍성한 자연 앞에 더욱 극명해지는 것도 ‘우울’하고, 유행따라 시작한 주식이 하한가 치는 것도 ‘우울’하다. 이도저도 모르는 철부지였다면 꽃구경에 신났을 텐데, 세상만사 쓴맛을 조금 알아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30대 사나이들의 솔직한 우정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는 이제 겨우 8회분을 방영했지만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는 분명한 타깃과 11시라는 시간대 등 틈새 공략으로 평균 시청률 20%, 점유율 33%의(AC닐슨 집계)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첫 녹화 날부터 오랫동안 일했던 팀 같았다는 천운의 팀워크와 <남자 셋 여자 셋>을 이끈 송창의 PD의 연출, 생활 자체가 ‘코미디’인 정웅인, 박상면, 윤다훈의 입담은 앞으로의 상한가도 점쳐볼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친구>의 미덕은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다는 데 있다. 흔히 ‘목숨처럼’ 강하다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한 부풀린 믿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00만원에 당첨된 복권 때문에 의가 갈리고 예쁜 여자만 보면 덮어놓고 싸운다. 하지만 이내 우르르 모여서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히히덕거린다. 가볍게 갈라지지만 쉽게 붕괴되지 않는 우정, 그래서 <세친구>의 우정은 <모래시계>의 태수와 우석의 운명적인 우정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것이다.

‘우울하게’ 왜 이래?

녹화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의정이 자꾸 NG를 낸다. 여기저기서 일제히 터지는 말, “이거 ‘우울하게’ 왜 이래?” 또한 박상면을 가르켜 “넌 참 ‘우울’한 외모에 ‘우울’한 학벌을 가진 불쌍한 놈이야”라고 말한다. 이미 이들 사이에서는 이 말은 무슨 유행어처럼 통하고 있었다. ‘우울하다’, 흔히 비애의 의미로 쓰이는 이말은 이렇게 <세친구>를 통해 재치있게 재해석되어진다. 코믹한 상황에 붙여씀으로써 우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판 웃음으로 전복시키려는 반전의 미학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페이소스가 깔려 있는 <세친구>표 웃음은 가벼운 말장난을 떠나 우리의 여섯 번째 감성을 신나게 두드려준다.

허나 이런 재치있는 말솜씨에 비해 <세친구>의 상황은 프로그램의 정통성이나 권위 등의 자존심 따위는 예전에 엿바꿔 먹은 듯 보인다. 왕가슴을 자랑하는 엉뚱한 간호사라든지 병원이라는 무대는 자칫 <순풍 산부인과>에서 따왔다는 오해를 살 요지가 있고 <허준>의 전광렬이 사이비 한의사로 나온다던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왠지 첩보스런 분위기를 풍기던 송영창을 스스로를 국정원 요원이라고 착각하는 정신이상자로 등장시키는 것 등은 새로운 캐릭터 창출이라기보다 타 작품에서 어렵게 만든 캐릭터를 쉽게 비틀어 내놓은 것 같아 그 깊이가 의심되기도 한다.

남자들은 좋겠~네!

(세 친구? 사실은 네 친구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죽이는 궁합을 자랑해온 송창의 PD와 연기자들의 놀라운 팀워크야말로 10회도 안 된 <세친구>를 인기 시트콤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3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연령 차이는 나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친구들이다.)

‘남자들은 볼 프로그램이 없다’며 과거 스포츠 중계나 기웃거리던 남자 시청자들이 요사이 부쩍 늘어난 성인 대상 프로그램에 TV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TV 소외계층의 구제 차원에서, 이홍렬쇼의 <유부클럽>에 이은 <세친구>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어디 남자들 뿐이랴.‘깨물어 주고 싶어’하며 ‘기집애’처럼 웃는 조성모식의 예쁜 남자들에 식상한 여성들까지도, 이‘터프’한 세 남자와의 데이트가 싫지 않은듯 보인다. 바야흐로 어른들은 4월의 ‘우울’을 잠시나마 잊고사는 것이다.

송창의 PD 인터뷰

“강한 사나이의 세계가 좋다”

장수 시트콤의 원조격인 <남자 셋 여자 셋>을 오랫동안 연출했던 송창의 PD는 감히 시트콤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자 셋이 빠진 남자 셋과 대학생이 아닌 30대의 이야기를 시작한 지도 벌써 두달째다.

-성적인 농담들이 자주 오가는 등 ‘성인 시트콤’이라고 부를 만하다. 표현의 수위는 어느 정도로 잡고 있나.

=그간 이른바 물도 먹어보고 제지도 많이 받다보니 여기까지라고 딱히 말할 순 없지만 체감하는 수위가 있다. 아슬아슬 경계를 넘지 않는 상식선까지만 표현될 것이다.

-전작 <남자 셋 여자 셋> 경우 후반부로 가면서 유난히 드라마나 영화 패러디가 잦았다. <세 친구>에서도 패러디를 선보일 것인가.

=그때는 소재 고갈이 원인이었다. 이야기거리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다보니 기존 이야기 틀에 많이 의존했다. <세 친구>는 아직 시작이고 그 정도 상태까지가 이르면 그만둬야 하지 않나? 또한 패러디 같은 형식은 저녁 7시 시간대 20대들이 좋아하는 편이지 11시대 30대 이상의 성인들에 적합한 틀은 아니다.

-세 친구 중에 그 흔한 샐러리맨이 하나없다.

=사실 샐러리맨을 꼭 넣고 싶었다. 그게 더 리얼리티가 있는 설정이니까. 초기에 윤다훈을 여행사 직원으로 설정했는데 아침에 출근해 버리고 나면 세 친구가 만날 시간과 공간이 한정적이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가 없었다. 극 전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순풍 산부인과>의 김병욱 PD는 자신이 그리는 섬세한 남성과는 다르게 <세 친구>의 강한 남성상의 표출은 PD의 영향인 것 같다고 하더라. 어떤가.

=그럴 것이다. 난 남자들의 세계가 좋다. 간지럽지 않고 강한 남자들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다. 영화도 마피아 나오거나 조직이 나오는 사나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가 좋다. <대부>류의 무거움을 좋아한다.


출연진 인터뷰

“상황에서 오는 웃음이 반갑다” _박상면 인터뷰

<넘버.3>의 ‘재떨이’였던 그가 더욱 가깝게 대중과 호흡한 것은 <왕초>의 ‘하마’였을 것이다. 방송중인 <나쁜 친구들>과 병행하는 촬영 탓인지 피곤이 엿보였지만 타고난 낙천주의로 이겨내고 있었다. 누나 역인 반효정의 ‘부티크’에서 이름뿐인 영업실장을 맡고 있다.

-코미디 연기, 어렵지 않나.

=코미디 연기가 체질인 것 같다. 작가들이나 연출을 신뢰하며 부담없이 임하는 편이다.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를 하진 않는다. ‘재떨이’할 때도 내가 웃긴 것이 아니라 상황이 웃겼던 것 아닌가? 단순한 애드립이나 과장된 몸짓보다는 상황에서 오는 웃음이 반갑다.

-극중 캐릭터와 닮았나.

=그대로 나라고 보면 된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극중에서보다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웃음)

“선동렬 공에 홈런치고 싶다” _정웅인 인터뷰

조성모 뮤직비디오 <TO HEAVEN>에 살짝 얼굴을 비추었던 그는 TV에서 ‘감잡았어’를 유행시키고 <은실이> <국희>, 영화 <조용한 가족> <북경반점> <반칙왕>으로 이어지면서 정극과 희극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세 친구>에서는 결벽증 있는 반듯한 정신병원 원장을 맡고 있다.

-영화와 TV를 병행하고 있다. 매체 사이를 오가는 어려움은 없나.

=영화는 캐릭터를 놓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비해 TV는 캐릭터를 매순간 잡아나가는 데 신경쓴다. TV는 촉박하고 긴장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즉흥성과 순발력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좋은 장이 된다.

-성인 대상 시트콤이다. 다르게 임하는 자세가 있나.

=타깃층이 분명한 만큼 오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웃긴 말하고 오버해서 점수 올리기보다는 선동렬 정도 되는 공에 홈런치고 싶다.

“두려움은 없다” _윤다훈 인터뷰

긴 암흑기 끝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타고난 유머감각이 연기와 손을 잡기 시작한 지난해 말 이후 인생 최대의 ‘하이라이트’를 맞고 있는 그는 바람기 있고 입심좋은 헬스클럽 매니저다.

-아이디어에도 참여하나.

=직접 참여하는 편은 아니지만 작가나 연출이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일상이 그냥 소재가 된다. 가령 내가 술자리에서 머리에 고무장갑을 쓰고 놀았다하니까 바로 다음 대본에서 고무장갑을 뒤집어써야 했을 정도다.

-그간 코미디보다는 정극을 더 많이 했다. 시트콤 출연이 코미디 배우로 굳어질까하는 두려움은 없나.

=그런 건 없다. 자신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 잘 웃는 반면 눈물도 많다. 감정선을 따라가는 멜로의 연기력도, 웃음의 순간을 감지할 수 있는 감도 있다고 확신한다. 연기력과 감의 문제다. 그걸 잃지 않는다면 두려움은 없다.

사진 이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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