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떤 꼬리표로도 환원될 수 없다”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호명하고, 클론처럼 닮은 두 노인이 시상식 무대로 올라갔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은, 백발이 얹힌 몸을 허리까지 굽혀 젊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의좋게 트로피를 나눠 잡은 채 짧고 겸손한 수상소감을 남긴 두 노감독들은, 그러나 포토콜 때 네팔을 번쩍 들며 좋아라 함박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수상자 기자회견 때 사회자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자는 당신들이 처음이 아니냐”고 물을 만도 했다. 처음 탔대도 저렇게 좋아할 순 없어 보였다.
그것이 그들의 영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했다. 스무살 남자아이 브루노와 열여덟살 여자아이 소니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이 지미를 데려다놓고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영화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기름기 하나 없고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제5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된 그들은 가식과 억지를 부리지 않는 그들의 영화만큼 투명한 시네아스트들이었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장 피에르 다르덴) 전작 <아들>을 만들 때, 세랭(<아들>의 배경 도시)의 한 거리에서 며칠간 촬영한 적이 있다. 거기서 어떤 여자아이가 유모차를 밀고 오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됐다. 유모차 안에서는 아기가 자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약간 이상한 방식으로 유모차를 밀고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아기를 내다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계속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거기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다는, 하지만 적어도 가끔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있어야 할 그 사람, 아기의 아버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들어낸다면, 그 사람은 (가족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만들 때 두 사람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뤽 다르덴) 우리는 현실을 복제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내다버리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아이의 불법 매매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아이>에서 브루노는 아이를 팔았다가 곧바로 되산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가 어떻게 아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또는 맺지 못하는가였다. 브루노는 아이가 눈에 뵈지도 않고(관심 밖에 있고) 말 그대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에 대한 소니아의 큰 사랑이 그에게 아이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데 충분할 것인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린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지도했는가.
=(장 피에르 다르덴) <아이> 때의 리허설이 이전 어떤 영화보다도 많았다. 촬영은 9월 중순부터 했지만 제레미(제레미 레니에, 브루노 역)와 데보라(데보라 프랑수아, 소니아 역)에게 8월부터 시간을 비워놓으라고 했다. 리허설은 스탭없이 두 배우만 데리고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리허설이었고, 그대로 촬영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신 하나하나를 완전히 결정하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브루노와 소니아가 우리 앞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이 자유를 얻은 것이었고, 우린 거기에 의지해 연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공동 작업을 하는가.
=(뤽 다르덴)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줄거리 전체에 관한 구도를 만든다. 내가 시나리오의 초고를 써서 장 피에르에게 넘기면 그가 수정을 하거나 다른 제안을 한다. 2고부터는 둘이 함께 써나간다. 현장에서는 한명이 촬영감독, 카메라맨, 녹음기사, 배우들과 연출을 하고, 다른 한명은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그 다음에는 자리를 바꾼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소감은.
=(장 뤽 다르덴) 만족한다. 이 상은 영화에 주어진 것이다. <약속> 때부터 함께해온 스탭들과 이 영화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해낸 두 배우의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회문제에 관한 영화, 라는 길을 계속 따라가면서 그 이면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영화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이 우려되는가.
=(장 뤽 다르덴) 어떤 꼬리표든 꼬리표는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형식에 안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그러기를 바란다. 꼬리표가 때로는 유용하다. 기자들이 써먹기에 좋고 도서관에서 분류를 하거나 파일철을 만들 때 그렇다. 영화는 어떤 꼬리표로도 환원될 수 없다. 나는 영화가 언제나 꼬리표를 넘어서기를 바란다.